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직업의 성격상 많은 이들의 글씨체를 본다.
그러다보니 글씨체만으로 그 사람을 가늠하는 버릇이 생겼다. 힘을 주어 눌러 쓴 글씨에서는 강한 의지가, 작은 글씨는 꼼꼼함이, 여성의 글씨가 큼직하고 동글동글하면 호탕함이 느껴진다. 초등학생 수준의 어린 글씨체를 구사하는 청년을 보면 괜시리 귀여워 보이고, 세련된 명필을 보면 평범해보였던 사람이 뭔가 달라보인다.
그래,, 다 좋다. 각자의 개성과 다양한 사연을 담은 듯한 모든 글씨는 악필이건,졸필이건 알아볼 수만 있으면 다 좋다. 그런데 가장 반갑지 않은 글씨체가 있다.
아주 힘겹게 적는 본인의 이름과 서명, 주소와 연락처. 때로는 눈이 안보인다며, 손이 떨린다며, 대신 써달라는 요구를 받을 때면 슬며시 짜증이 나기도 하는, 가장 반갑지 않은 글씨체는 바로 노인의 글씨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글씨가 다 거기서 거기듯이, 노인의 글씨는 죄다 비슷비슷하다.
침침한 눈, 떨리는 손, 부쩍 감소된 자신감 등의 여러가지 요인의 합작품은 어쩌면 한 획도 곧이 내려오는 법이 없이 꿈틀거리는 실지렁이들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우편물이 도착해 있었다.
한국에서 온 서류 봉투의 앞면의 송장을 확인하는 순간, 그동안 직장에서 많이 봐왔지만 결코 반갑지 않은 글씨체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평소에 괄시하던 그 글씨체로 우리집 주소가 쓰여 있었고 글씨의 장본인은 놀랍게도 우리 어머님이다.
내가 기억하는 다소 작은 크기의 야무지고 깔끔하던 그녀의 글씨체는 이제 너무 많이 늙어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우체국 필경대에서 수전증을 억누르면서 한 자 한 자 힘겹게 써내려가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자 울컥하고 목구멍이 뻐근하게 아파온다. 내가 아는 그녀답지 않게 군데군데 틀려서 고친 알파벳들이 웬지 슬퍼보였다.
해외운송요금과 봉투의 중량 등을 적어놓은 '멀쩡한' 우체국 직원의 글씨와 대조되는, 꿈틀거리는 흐릿한 그녀의 필체는 영락없는 노인의 글씨였다. 내가 직장에서 그랬듯이, 그도 운송장을 한참 동안 뜸을 들여 쓰는 그녀가 답답했을까?
나는 이제 일터에서 그들의 글씨를 홀대하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의 필체는 상어에게 다 뜯어먹히고 뼈만 남은, 산티아고 노인이 사투 끝에 겨우 잡은 청새치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긴 세월을 열심히 살아온 그들의 손에서 이제는 기운이 다했음을 글씨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신에 이제는 청하지도 않은 인삿말을 건네야겠다.
" 잘 써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힘겹게 걸어온 생에 대한 헌사이자 펜을 쥔 주름진 손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힘을 내주기를 바라는 나의 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