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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띠야’와 ‘토스타다 콘 토마테’

by 그린망고

순례길 초반 아침 메뉴는 늘 또르띠야였다.

또르띠야(Tortilla)는 달걀에 감자, 양파, 햄 등을 넣고 케이크처럼 두툼하게 구워 낸 스페인식 오믈렛이다.


아침 시간에 바르(Bar)에서 선택할 수 있는 메뉴는 또르띠야와 보카디요(Bocadillo, 스페인식 바게트 샌드위치) 정도다. 바게트 샌드위치라고 해 봐야 옵션은 치즈와 하몽이 전부다. 스페인의 바게트는 이가 부실한 나에게는 통으로 잡고 뜯기엔 무리가 있었다. 가죽을 씹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늘 또르띠야로 아침 허기를 달랬다. 또르띠야를 주문하면 포크를 일자로 세워 또르띠야의 중앙에 꽂은 채로 서빙하는 곳이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수저를 꽂은 젯밥이 떠올라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처음 먹어 본 또르띠야는 맛있었다. 하루의 첫 끼니이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달걀이다. 달걀이야 어떤 식으로 조리하던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는 맛을 내긴 힘들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다 보면 물리게 마련이다.


나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김밥을 좋아한다. 초등학교(실은, 국민학교)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에게 점심으로 김밥을 싸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일하는 여성인 엄마에게 매일 아침 셋이나 되는 자식들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건 꽤나 성가신 일이었을 것이다.

웬일로 엄마는 흔쾌히 김밥을 싸 주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도시락 안에는 김밥이 들어 있었다.


대체 무슨 심산인지. 열 달이나 귀하게 품어 세상에 내놓은 막내딸에게

“너, 한번 질리도록 먹어봐라. 그래야 다신 싸 달란 말 안 하지.”

설마 뭐 이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그 후로 한동안은 김밥을 멀리하게 되었다.


또르띠야가 나에게 ‘그때의 김밥’처럼 느껴질 무렵 신박한 메뉴와 조우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신박’이란 표현이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나에겐 그랬다.


그것은 바로


“토스타다 콘 토마테(Tostada con Tomate)”.


영어로는 ‘Toast with Tomato’. ‘토마토를 곁들인 토스트’ 정도로 번역하면 적당할 것이다.


구운 바게트 슬라이스에 굵게 다진 토마토, 올리브 오일, 소금. 이것이 토스타다 콘 토마테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다.


먼저 바게트에 올리브 오일을 고루 뿌린 후, 그 위에 다진 토마토를 가득 올린다. 토마토는 덩어리가 씹힐 정도의 크기로 다져 나온다. 브루스케타의 토핑으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잘다. (말하고 보니 좀 어정쩡한 설명이지만, 실제로 어정쩡한 크기로 나온다.) 어떤 바르는 토마토를 완전히 갈아서 페스토처럼 주는 곳도 있는데, 확실히 씹히는 맛이 좀 있는 편이 훨씬 맛있다. 마지막으로 소금을 짭짤하게 치면 완성이다. 여기서 ‘짭짤하게'가 포인트다. 싱거우면 맛이 덜하다.


“겨우 이걸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이라고? “

실망스러울 수 있다. 이해한다.

그러나 직접 먹어 보면 손뼉이 절로 날 것이다.

“어머, 이 맛이야!”하고


"이렇게 단순한 조합으로 이토록 완벽한 맛의 조화를 이뤄내다니!"


토마토 토스트의 세계로 나를 인도해 준 일본 친구 아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아키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스페인의 눈부신 햇살이 광배로 보일 지경이었다. 순례길 위에선 가끔 천사를 만난다더니.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아침 토스타다 콘 토마테를 먹었다. 희한하게 질리지가 않았다. 심지어 한국에 돌아와서까지도 줄기차게 만들어 먹고 있다. 토마토를 청키 하게 갈기 위한 수동 그라인더도 들여놓았다. 가끔은 허브나 치즈 따위를 올려가며 변화를 모색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오리지널이 가장 깔끔하고 맛있다.




‘또르띠야’와 ‘토스타다 콘 토마테’는 내 순례길 추억의 편린이다. 문득 순례길이 그리워지는 날엔 나는 토마토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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