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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골 Feb 11. 2020

루체른에서 만난 진돗시바견

루체른역
루체른강
보랏빛 야경

루체른 중앙역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6시가 되어서 해가 지고 있었는데, 덕분에 내리자마자 루체른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리자마자 예쁜 역 게이트 뒤로 핑크빛 하늘이 펼쳐졌고, 그 게이트를 넘어가자 바로 도시 전체에 흐르는 강이 보였다. 우리는 내리자마자 쉼 없이 셔터를 누르면서 예쁜 도시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 노력했다. 특히 아주 작은 마을에서 첫 이틀을 보낸 후라 이렇게 스위스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덕분에 처음으로 우리 나잇대의 친구들도 보았다. 스위스도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국가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어리바리해 보이는 어린 남자애들이 다 군복을 입고 버거킹 앞에 줄을 서 있었다. 뭔가 반가웠다. OECD 37개 회원국 중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13곳이라고 한다.      


그렇게 이동한 루체른의 숙소는 한국 교포분의 가정집이었는데, 진구라는 이름의 개를 키우는 집이었다. 사실 우리는 진구의 사진을 보고 바로 숙소를 예약했었다. 진돗개를 키우는 집이라니! 여행 중의 가장 활기찬 하룻밤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역시 진구가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주었고, 우리보다 한 살 어린 딸이 우리를 맡아주었다. 한국어는 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영어를 잘해서 함께 진구랑 놀면서 많은 대화를 했다. 그 친구는 우리가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니까 엄청나게 부러워했다. 런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도시라면서. 알고 보니 런던을 가본 적은 하루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더욱 우리를 부러워했던 거 같다. 이 친구 엄청난 해리포터 덕후에 록 밴드의 팬이었는데, 우리가 해리포터 스튜디오도 곧 갈 거라고 하니까 그건 자기 인생의 꿈이라고 말했다. 너무 부러워해서 그건 괜히 말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덕분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사실 나 자신도 항상 동경하고 바라던 일이라는 게 상기된 시간이었다.      


기다려

진구는 사실 그냥 진돗개가 아니라 반은 진돗개고 반은 시바견이었다. 어쩐지 정면 얼굴이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냥 너무 예쁘고 너무 순해서 자기 전까지 계속 조금이라도 관심을 끌어보려고 옆에서 발악했다. 계속 쿠션 위에 누워있던 진구는 매우 고양이 같았다. 물을 싫어해서 목욕을 시킬 때마다 곧 죽을 것처럼 싫어한다고 하고, 산책하러 갈 때마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고 했다. 어떻게 개가 산책을 싫어할 수 있지?! 너무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진구가 우리랑 안 놀아주니까 미안했는지 딸이 육포까지 꺼내 들고 와서 진구랑 놀 수 있게 해주었다. 독일어로 “기다려” “먹어”까지 성공했다.


이 날 밤은 진구와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방에 들어가는 발걸음도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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