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May 28. 2024

[슬픈 카페의 노래]-카슨 매켈러스

사랑을 상실해서 아픈 그대에게

레몬즙으로 쓴 비밀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다. 봉투 안에 든 백지를 불 위에 가져가 댄다. 종이에 서서히 갈색 글자가 나타나는 순간, 편지는 화르르 불타오른다. 삶이 편지라면 사랑은 곧 사라질 글씨와도 같다. 불붙는 순간, 인생마저 불사르는 몹쓸 사랑이다.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에서 카슨 매켈러스는 레몬즙으로 쓴 메시지를 ‘한 인간의 영혼 속에 써진 글’에, 불을 위스키에 비유했다. 아밀리아가 카페에서 팔던 음료는 술이 아니었다. 영혼을 따뜻하게 데우며 생 이면의 진실에 눈뜨게 하는 마법의 음료였다.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 표지와 저자 카슨 매켈러스

   선량하고 아름다운 숙녀가 보잘것없는 남성에게 푹 빠진다.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갖춘 남성이 형편없는 아가씨를 쫓아다닌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불가해함이 사랑이 지닌 본질이다. 시인 도로시 파커는 말했다.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면 마음 편하겠지만, 사랑이 지닌 신비는 사라진다고. 소설은 세 남녀가 그리는 기이한 삼각관계를 다룬다. 마을 최고의 미남 마빈은 선머슴 같은 소녀 아밀리아에게 푹 빠진다. 아밀리아가 사랑한 남자는 추한 몰골의 꼽추 라이먼이다. 그러나 라이먼은 아밀리아를 사랑하는 마빈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사랑은 인종과 나이, 때로는 성별마저도 뛰어넘는다. 사랑받는 사람은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 아이, 아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간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밀리아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마을 최고의 부자이며 소설의 배경인 카페를 소유한 여성이다. ‘키가 큰 데다가 골격이나 근육도 마치 남자’ 같은 아밀리아는 기묘한 매력을 지녔다. 사팔뜨기이긴 하지만 제법 잘생긴 그녀를 따르던 남성도 많았다. 재주도 많고 돈도 잘 버는 그녀가 능숙하지 않은 단 하나의 분야는 인간관계였다. 사람들은 물건과는 달라서 ‘순식간에 더 쓸모 있고 이윤이 나게끔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따뜻한 면은 있다. 정식으로 의학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약초와 다양한 처방을 포함한 자신만의 비법으로 사람들을 치료한다. 아밀리아는 그녀가 지닌 여성성에 익숙하지 않다. 첫날밤에 남편을 쫓아내는가 하면 남자처럼 근육을 단련하며 과시한다. 때로는 주먹을 휘두르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1950년대 미국 남부의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아멜리아로서는 성(性) 정체성에 관한 담론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남성은 물론 같은 여성을 사랑한 경험도 없다. 

     

그런 아밀리아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상대는 볼품없는 떠돌이 라이먼이다. 마을에서 가장 매력적인 남성 마빈과 결혼한 전력이 있는 아밀리아가 아닌가. 아밀리아의 마음 깊숙이 숨겨진 취약하고 세심한 결을 건드린 이는 돈이 많거나 잘생긴 남성이 아니라 폐병을 앓는 곱사등이였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 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 -본문 49쪽     


저자의 말에 따르면 모든 사랑은 짝사랑이다. 굳건한 영혼의 소유자 아밀리아의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보이는 사람 역시 ‘늪지에 핀 독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밀리아와 라이먼처럼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은 드물다. 두 사람은 외모와 재산, 건강 상태 등 모든 면에서 너무나 다르다. 대화하는 방식과 소재 역시 다르기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독백의 나열과 다름없다. 아밀리아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고 라이먼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만 관심 있다. 게다가 라이먼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이간질하며 싸움을 부추기는 말썽꾸러기다. 그러나 라이먼에게도 한 조각의 매력은 있다. ‘자기 자신과 세상의 모든 것들 사이에 즉각적으로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재능’이다. 어린아이 같은 라이먼의 개성에는 유치하고 이기적인 면 역시 포함되어 있다. 그런 단점마저 넉넉하게 포용할 정도로 그에 대한 아밀리아의 사랑은 융숭 깊다.      

라이먼이 등장하며 마을에는 카페의 시대가 열렸다. 아밀리아가 소유한 작은 가게는 흥겨운 카페로 바뀌었다. 테이블마다 식탁보와 종이 냅킨이 놓이고 토요일 밤은 손님들로 흥청거린다. 마을 사람들에게 카페는 무료하고 힘겨운 일상과는 동떨어진 환상적인 공간이다. 주민들이 카페에서 소비하는 것은 우아한 분위기와 품격이다. 규칙을 강요하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카페의 문화를 이해한다. 그들이 카페를 소중히 하는 이유에는 ‘모종의 자부심’이 숨어있다. ‘새로운 자부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이란 결국 값어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고통스러운 삶을 감내하게 해주는 동력이 문화와 예술이라면, 마을 사람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장소는 카페였다.      

꿈결 같은 6년의 세월이 흐른다. 평온하던 아밀리아의 일상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아밀리아의 전남편 마빈이 마을에 돌아온 것이다. 아밀리아와 결혼하기 전 마빈은 매력적인 ‘나쁜 남자’였다. ‘대담하고 겁 없고 잔인한’ 마빈을 변화하게 만든 힘은 아밀리아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마빈의 사랑에 돌아온 보답은 냉소와 폭력이었다. 돈과 마음 모두 아밀리아에게 빼앗긴 마빈은 마을을 떠나 범죄자로 전락한다. 애정과 증오는 그 성질만 다를 뿐, 대상에 대한 힘의 증폭과 방향은 같다.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은 어느덧 죽이고 싶은 대상으로 변한다. 마빈의 마음에 남은 상흔에는 시간이 흘러도 결코 딱지가 앉지 않는다. 어이없게도 마빈의 등장은 꼽추의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사랑은 늘 어긋나는 법이다. 마빈에게 라이먼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추물에 불과하다.     

밤새 마을에는 눈이 내린다. 따뜻한 남쪽에 사는 마을 주민들로서는 처음 접하는 흰 세계다. ‘파르스름한 은색’이 감도는 눈은 작고 어두운 마을에 ‘꿈결 같은 고요함’을 선사한다. 눈 덮인 마을에서는 조용하고도 무자비한 음모가 진행된다. 마빈을 집에 들이겠다는 폭탄선언이 라이먼의 입에서 나오고 만다. 세 남녀의 괴상 야릇하고 긴장감 넘치는 동거가 시작된다. 마침내 아밀리아와 마빈에게 결전의 순간이 찾아왔다. 승패가 갈릴 때, 독자들은 사랑이 지닌 잔혹함에 몸서리친다. 비로소 아밀리아는 마빈이 느꼈던 좌절감과 배신감에 관해 알게 된다. 사랑이 끝난 뒤, 누군가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다. 마빈이 그랬듯, 사랑이 지나간 자리를 복수심이란 병든 감정으로 채우기도 한다. 아밀리아는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유폐하기로 마음먹는다. 어쩌면 이런 방식이야말로 지나간 사랑에 대한 완벽한 애도가 아닐까.      


‘이런 이유로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딱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자기 내면에만 머무르게 해야 한다. 자기 속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 강렬하면서 이상야릇하고, 그러면서도 완벽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본문 51쪽     


‘슬픈 카페의 노래’는 스산한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욕망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소설은 슬프고도 아름다우며, 기이하고도 우아하다. 인물들은 각기 다른 결핍에 시달린다. 아밀리아와 라이먼은 신체에 장애가 있다. 마빈의 마음은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들어서 복숭아씨처럼 영원히 딱딱해지고 골이 파’였다. 소설 끝에 등장하는 ‘언젠가는 죽을 열두 명의 인간’은 삶과 인간의 관계를 빗댄 이야기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하는 짧은 액자 소설이기도 하다. 함께 묶인 채 일하는 열두 명의 죄수들은 우리처럼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다. 그러나 그들이 일하는 곳에는 곡괭이 소리, 강렬한 햇살, 땀 냄새만 있지는 않다. 때로 사랑이 찾아오고 때로 함께 구성지게 노래한다. 우리는 열두 명의 죄수처럼 인생이란 수감 생활을 견딘다.      

‘그곳엔 매일 노래가 있다. 누군가 침울한 목소리로 콧노래 비슷하게 한 소절을 시작하면, 마치 질문에 대답하듯 얼마 후 다른 목소리가 어울리고 곧이어 모든 죄수들이 합창을 한다. 노랫소리는 눈부신 황금빛 햇살 속에서 더욱더 우울하게 들리고 그 가락에는 슬픔과 즐거움이 미묘하게 뒤섞여 있다.……(중략)……그러다가 서서히 노랫소리가 잦아들어 한 가닥 외로운 선율만 남게 되면 다시 침묵 속에 거친 숨소리와 태양, 그리고 곡괭이 소리만 남을 따름이다.’ 

-본문 131쪽     


저자 카슨 매켈러스는 1911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태어났다. 피아노를 공부한 그녀는 줄리아드 음대에 진학하려고 뉴욕에 왔다가 등록금을 잃어버리는 사고를 겪는다. 뉴욕대 야간 과정에서 문예 창작을 공부하기로 진로를 바꾸었다. 1936년 단편소설 ’ 천재‘를 발표했다. 1940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으로 미국예술아카데미가 수여하는 메리트상을 수상했다. 작가 지망생 리브스 매컬러스와 결혼했으나,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한다. 50살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뇌졸중, 흉막염, 유방암 등 여러 질병에 시달렸다. 고통 속에서도 창작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금빛 눈의 그림자’, ‘결혼식 멤버’, ‘바늘 없는 시계’ 등의 걸작을 남겼다. 

(장영희 옮김, 열림원, 2014, 원제: The Ballad of the sad cafe)

매거진의 이전글 샤이닝-욘 포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