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가 휩쓸고 갔다. 지나고 나니 꿈을 꾼것 같이 3년이 삭제되었다. 망각이라는 것은 배움보다 훨씬 편한 일이어서, 여행 여행을 부르짓던 나는 더 이상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그저 귀찮고 복잡한 일처럼 여겨졌달까...
그러다 7년만에 제주여행을 결심했다.
자주 가는 곳이 아닌만큼 제주의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내 모습은 아주 많이 변해있었다.
어쩌면 쉼 없이 살아가다가 삶의 정류장에서 나의 모습을 점검받으러 가는 기분이 들었달까?
교복을 입고 처음 제주도로 떠났던 나, (수학여행)
사회초년생 회사에서 워크샵으로 가던 나(그때 회사에서 가는거라 비지니스 캐쥬얼로 입어야하는줄 알고 혼자 반바지 하나 안챙겨가서 더워서 고생했던 기억)
엄마와 함께한 제주도(효도여행이라 부르고 빡센 스케줄에 엄마를 기진맥진하게 만든 여행)
결혼하고 다음해 남편과 둘이 떠났던 낭만 제주
그리고 이번엔 남편과 아이와 셋이서, 꼭 다섯번째다.
하지만 이번엔 여행하기 전부터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가기 좋은 코스, 비행기안에서 보챌경우를 대비한 간식거리와 즐길거리, 그리고 카시트와 렌트, 아이가 좋아할만한 숙소에 동선, 식당까지
그러한 것들을 고민하자니 여행은 갑자기 짐처럼 무거워졌다.
여행전부터 무척 피로했다. 모바일 체크인, 사전지정, 바이오등록...
처음 보는 말들이 왜이렇게 많은지 검색에 또 검색을 했다.
가면서 비행기에서 김영하의 '오래 준비한 대답'이라는 책을 읽었다. 해외로 살기 위해 나가기 전 수많은 물건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고 했다.
자신의 터전, 집에서는 생활속에서는 나를 제대로 바라 볼 수 없다.
여행지에선, 달랑 짐가방 하나와 함께하는 내모습은 오롯이 현재의 나를 직시할 수 있게 해준다. 번뜩 생각이 났다. 그것이 바로 [내가 여행을 좋아했던 이유]
캐리어 하나를 끌고 떠돌던 나의 시간들이 그리웠다.
드라마속에서 연기를 하며 살다가 시청자가 되어 티비속의 내 모습(삶)을 멀찍이 바라보는 것처럼 멀어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곳에서 오랜만에 화면속의 나를 보았다.
엄마가 된 나는 성숙해졌고, 슬프게도 많이 늙었으며 어째서인지 불안정해 보인다.
그렇다. 나는 늘 조바심을 낸다.
아이가 다칠까봐 늘 '하지마''안돼'를 달고 살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걱정이 많은 편이다. 여행전에는 빠트린 짐이없는지 서너번을 확인하고도 마음이 불안하다. 공항에는 여유있게 출발하더라도 중간에 변수가 생길까? 줄이 길지 않을까 걱정하고 맛집엔 웨이팅이 길테니 '빨리''여유있게' 가야만 한다.
빨리 빨리 남들보다 빨리 가야한다, 그리고 나서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근처 카페, 근처 가볼만한곳을 검색한다. 소요시간을 확인하고 그 곳에서 다음 행선지까지...
왜 나는 흘러가는 대로 되는대로 살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을까?
다시, '오래 준비한 대답'에서, 시냇물처럼 흘러가는대로 살 순 없을까? 라는 말이 나온다.
이거다. 내게도 필요한 삶의 자세다. 흘러가는데로... 오면서 다짐해본다. 최대한 핸드폰 검색도 안하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순간을 즐기기, 무언가를 머릿속에 집어넣는 대신 나의 생각을 많이 깊이 하기.
도착한 제주 공항 전광판에서는 노란 유채꽃을 배경으로 한
All is well 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래, 모든 것은 괜찮다.
중년의 문턱에 선 지금, 어쩌면 그래서 모든 것이 불안정한 나는 내려놓는법을 흘려보내는 법을 배워가야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