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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카소 Oct 03. 2022

비 오는 날, 우산 없을 때 전화해...

남편이 귀가할 시간이 가까워오자 세상이 어둑어둑해지더니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꽤 많은 양의 비, 며칠 전 싸워서 말을 안 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우산 있냐고 전화했다. 없어서 학원 앞에서 비가 좀 수그러들기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지하철 타면 몇 시에 도착하는지 카톡 남겨 두면, 아이랑 우산 챙겨서 시간 맞춰 나가겠다고 했다.


 사이 나는 아이의 머리를 이발하고 씻겼다. 샤워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이 아이 몸을 덮은 거품과 함께 쓸려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튀어나온 나의  마디는 무의식에 남아있는 강렬한 과거 경험이 꿈틀거리느 것과도 같았다.


나 : 엄마 보고 싶다.

아이 : 별나라에 먼저 간 엄마?

나 : 응, 아이야, 있지- 혹시 어디 나갔다가 집에 오려는데 비가 엄청 쏟아져. 근데 우산이 없어. 그러면 언제든 엄마한테 전화해. 엄마가 우산 두 개 챙겨서 네가 있는 곳으로 꼭 갈게! 알았지? 우리 아가 비 맞지 않게 엄마가 갈 테니까 꼭 전화해~

아이 : 알았어. (기분 좋게 웃는다)

나 : 예전에 버스에서 내렸는데 비가 엄청 쏟아지는 거야... 우산이 없는데, 나오라고 전화할 엄마가 없어서 그 비를 다 맞고 집에 갔어... 그날 너무 슬퍼서 엉엉 울다가 잠이 들었어.

아이 : 너무 슬프다... (눈물 핑-)


20대 후반, 고모랑 살 때였다. 야근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렸는데 미친 듯이 비가 쏟아졌다. 버스정류장 바로 앞 단지였음에도 늦은 시간이라 잠들었을 고모를 깨울 수 없었다.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도, 속옷까지 다 젖을 만큼 쏟아지는 그 비를 고스란히 다 맞고 걷는데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은 물 범벅이었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물폭탄을 맞은 듯했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겨우 씻고 누웠는데도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20대 후반에 고아가 된 느낌이었다면 오바였을까...


지금은 아무리 시간이 늦어도 남편에게 우산 좀 갖고 와 달라고 전화할 테지만, 그때는 참 외로웠다. 지금도 때때로 중년 고아의 기분을 느끼곤 하지만... 20대 중반부터 온전해야 할 엄마의 사랑이 영원한 부재중이 되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의 나는 20대의 정서가 멈춘 듯, 미성숙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사랑을 갈구하는 면이 있다. 누군가 나를 애 같이 느낀다면 아마 그 영향일 것이다.


그런데- 30대엔 몰랐는데, 40대가 되고 나니까 엄마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하나, 둘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엄마의 이상하고,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들이었다. 엄마가 없는데 이제 와서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니, 미칠 노릇이다. 이런 정서적인 문제가 뒤엉켜 지난 추석을 보내고 나서는 공황장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 심리 상담이나 어떤 조치가 필요함을  알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다.  해쳐서 들여다볼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 일단은 스스로 다독여보기로 했다.


밖에 빗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니까  눈물이   같다. 배갯니 적시며 엉엉 울던 20대의 내가 생각나서 마음이 아프다.  잊을 수 없는 축축함과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 같이 살아난단


나는, 아이가 비 맞지 않게 해 줘야지...

비올  전화하면, 언제든 우산 2 챙겨서 나갈  있는 엄마가 되어야지... 우리 엄마가 그랬을 행동과 똑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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