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마음먹은 대로 다 될 거 같았다. 나이를 먹고, 책임이 늘면서 인생사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하나, 둘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아이와 관련된 일들이 그랬다. 나의 감정을 한 번씩 무너뜨리는 건 아이의 아토피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심하게 올라와서 아이가 힘들어하면 대신 가려워해 줄 수도 없는데, 다 엄마인 내 책임 같은 기분이 나를 한 없이 우울하게 했다. 군것질이 하고 싶은 아이에게 화가 나고, 원하는데 단호하게 대하기가 어려워서 사줬다가 밤새 간지러워 잠을 설치면 나에게 또 화가 났다. 왜 내 아이에게 이런 피부병이 생겼을까? 답 없는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속상해서 눈물이 흘렀다.
내 감정과 상황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던 때, 지옥 같은 기분에서 빠져나오고자 안간힘을 쓰며 몸부림치던 것이 춤이었다.
그 무렵 나는 복근 있는 몸을 만든다는 목표로 1분도 버티기 쉽지 않은 플랭크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통해 강렬하게 느꼈던 3가지는 아래와 같다.
1. 10초가 길다. 1분은 정말 길다. 즉, 짧은 시간 무시하지 말고 집중하자.
2. 버티고자 하면 버틸 수 있다.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
3. 안될 거야, 못하겠어하는 순간, 정말 포기하게 되므로 안 되겠어라는 생각은 떠올리지도 말자.
10초부터 시작해서 매일매일 조금씩 초 단위로 시간을 늘리면서 버텨냈다. 지금은 매일 5분씩 하고 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단시간에 땀이 쭉 솟는 플랭크는 짧고 굵은 묘한 쾌감과 마침내 '해냈다'라는 성취감이 있다. 그래서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조금만 더, 10초만 더, 5초만 더 해보자고' 버틸 수 있었다.
10초에서 5분이라는 시간에 도달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게 주어진 외부의 환경과 상황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내 몸은 그나마나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 몸은 물론 기분도 편안한 것처럼 몸은 감정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몸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은 감정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사실을 몸으로 깨우치면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왜 나만! 원망스럽고 복잡했던 생각이 꽤 명쾌해졌다.
내 몸으로 하는 것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몸과 감정은 내 마음대로
내가 운동을 하고 춤을 추는 이유다. 자신의 몸과 감정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면, 살면서 수시로 만나게 되는 어려운 상황을 남 탓, 세상 탓하지 않고 지혜롭게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과정 중에서 맛보는 성취감과 즐거움은 덤이다.
물론 몸을 이해하고 극복해나가는 것 또한 어렵다. 어려운 이유는 해보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동작을 작은 단위로 자르고 반복해서 몸으로 익힌다면, 점점 익숙해지는 동작이 하나, 둘 축적되다가 결국 원하는 대로 되리라는 희망이 생긴다.
삶도 또한 순간순간 언제나 처음이고, 살아보지 않아서 어렵다. 쉽지 않지만 나의 몸과 감정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어려움은 극복하고 크고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춤에 대한 글을 쓰고 사람들의 반응과 댓글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직업 댄서로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 춤을 추며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도 소수이고, 춤을 추고 싶지만 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도 많다는 것을. 이는 곧 춤을 춘다는 건 꽤 큰 용기를 내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운동을 하면 몸과 마음, 정신이 회복된다. 춤은 음악과 표현도 포함되니 감성까지 회복되므로, 춤을 추고 싶은 욕망이 솟는다면, 자신을 위해 춤 추는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And when you get the choice to sit it out or dance
I hope you dance
I hope you dance
만약 그대가 주저앉던지 춤추던지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당신이 춤추기를 바라요.
Lee Ann Womack의 I Hope You Dance 노래 가사처럼 할머니가 되어서도 원한다면 언제든 춤추기를 주저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내 몸과 감정은 내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근사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