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미러
8.
유가족들은 민우가 기다리고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민우는 재빨리 김대리가 알려준 매뉴얼을 상기시켰다. 합의 매뉴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 유가족의 도발에 응하지 않을 것, 그리고 불필요한 동정은 절대 금하는 것 등이었다. 먼저 민우가 유가족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무슨 낯짝으로 우리를 불러내는 거죠? 당신네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그래, 그렇게 자신이 있어? 돈이면 다됩니까? 그래서 얼마줄건데?"
추피현의 아버지가 흥분을 못참고 큰소리 쳤다. 그의 표정이 당장이라도 민우를 들이받을것만 같았다. 민우는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김대리의 예상대로였다. 유가족들은 몹시 흥분한 상태였고 민우는 애써 미소를 참으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합의금은 저희 쪽에서 제시하는 금액에 맞추셔야 합니다.” 민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게 얼마죠?” 유가족의 어머니가 물었다.
“당사에서 인도적인 사항을 고려해 드릴수 있는 금액은 200만 원입니다.”
“아니... 6억 원에서 어떻게 그런 금액이 나오는 거예요?” 피추현의 엄마가 절규하듯 되물었다.
“마인드 키트 결과 통지서 보시면 알 수 있듯이...”
“키트고 나발이고, 당신네들 처음부터 계획한 거지? 이게 어디서 사기를 쳐?” 피추현의 아버지는 몹시 흥분해 당장이라도 민우에게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떻게 우리 추현이 동창이라면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에요? 우리 추현이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누나 역시 민우에게 소리 질렀다.
“저는 추현이 동창이기 전에 보험사 직원입니다. 지금은 업무차 나온 거고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가 달리 할 말이 없네요. 아, 그리고 뭐 하나 말씀드리자면... 뒤질만했으니깐 뒤졌죠. 아버님.” 민우가 마음에 있는 말을 그만 못참고 내뱉고 말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실실 웃어댔다. 민우는 더 이상 웃음을 찾기가 힘들었다.
“뭐? 이런 X새끼가!” 피추현의 아버지는 이성을 잃고야 말았다. 자신의 온몸의 힘을 실어 민우의 뺨을 가격했고 민우는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유가족들은 소리지르며 흥분한 아버지를 뜯어말렸다. 카페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경찰이 출동한 후에야 상황은 종료됐다.
다민우는 지친몸을 끌고 지하철을 탔다. 아직 두 뺨이 얼얼했다. 눈꺼풀에는 시퍼런 피멍이 들었고 입술에는 두꺼운 피딱지가 앉아 있았다. 그는 오늘 겪었던 상황들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흥분해 자신을 덮치고 때리고 결국 무릎을 꿇는 피추현의 유가족들. 민우는 분노와 무기력함에 찬 유가족들의 표정들을 하나하나 까먹지 않기위해 머리속에 각인하고 되새김질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악마의 죽음이 아주 볼품없는 개죽음이 되었다. 또, 그 악마를 만들어낸 유가족들에게는 큰 고통을 남겨주었다는 생각에 그는 스스로 벅차올랐다. 눈에서는 눈물이 새어 나왔다. 동시에 큰소리 내어 웃었다. 29년 그의 인생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강력하고 뜨거운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지하철의 승객들은 그를 미친 사람처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민우는 그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았다. 민우는 그 시선을 다 받고 더 즐겼다. 오히려 사람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보였다. 곧 지하철이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이내 붉은 노을이 드리운 고요한 한강을 마주했고 민우의 빨갛게 달아오른 양 뺨 위로 눈물과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민우는 집에 돌아와 마인드 키트를 켰다. 그리고 자신을 스캔했다.
공황 4.5 PF 불안 3.5 PF 폭력성 2.7 PF...
모든 것이 정상 범위내 수치로 좋아져 있었다.
결국 며칠 뒤 저녁 유가족들은 합의에 응했다. 그 다음날 민우가 사무실로 출근했을 때, 부장과 김대리, 그리고 직원들은 뜨거운 박수로 그를 맞이해 주었다. 민우는 머쓱했다.
“오늘 퇴근하고 술 한잔 해야지.” 부장이 민우에 다가가 말했다.
9.
한껏 회식자리가 무르익었고 직원들은 하나둘씩 회식장소를 빠져나갔다. 민우 역시 피곤한 마음에 집에 가고 싶었지만 어느덧 남은 사람은 부장과 김대리 둘 뿐이었다.
“잘했어 민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잘해봐. 내가믿고 있을게.” 부장이 한껏 술에 취해 민우를 다독였다. 민우는 힘겹게 부장을 부축이고 있았다. 김대리와 민우는 택시를 잡아 부장을 바래다 주었다. 김대리와 단 둘이 남는게 싫었던 민우는 이미 상당히 피로했고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다.
"제가 택시 잡아드리겠습니다. 대리님." 민우가 선수쳐 말했다.
“너네 집 가서 한잔 더 하자.” 김대리가 민우에게 말했다.
“네?”
민우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역력했지만 하는 수 없이 술에 잔뜩 취한 김대리를 집에 들였다. 김대리는 마치 자기네집 안방 마냥 쇼파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민우에게 라면을 끓여오라 시키더니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홀짝 홀짝 들이켰다.
“피추현이 유가족한테 맞은 거는 합의금 청구했냐?”
“아니요.” 민우가 라면을 끓는 물에 넣으며 대답했다.
“그런 거 다 받아라. 웃기지 않아? 과학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아직도 몸으로 때워 돈 버는 시대야. 인생이 그렇다 민우야, 아주 좆같지?” 김대리가 부엌에 있는 민우를 향해 말했다.
“솔직히 말해도 돼요?” 민우가 보글보글 끓는 물에 스프를 넣으며 말했다.
“뭐가.” 김대리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때 김대리의 시야에 민우의 책장이 눈에 띄었다. 얼핏 봐도 알 수 있듯이 민우의 마인드 키트 결과지 용지였다. 김대리는 순간 호기심이 생겼다.
“계란 풀까요?” 민우가 물었다.
“풀어. 야 넌 계란푸는 것도 솔직해야 되냐?” 김대리는 부엌에 있는 민우의 눈치를 보며 결과지를 집어 올렸다.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지만, 저 학창시절에 많이 맞고 괴롭힘 당했거든요.”
“그래?” 김대리는 민우 몰래 마인드 키트 결과 용지를 펼쳐보았다. QR코드가 보였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민우는 여전히 눈치를 채지 못하는듯 했다.
“네, 그래서 솔직히 대리님이 저 괴롭힐때 속으로 많이 화냈어요.” 민우는 라면에 계란을 풀며 말을 이어갔다.
“야, 이새끼 봐라. 너 술 많이 먹었냐? 너무 솔직한 거 아니야?” 김대리는 재빨리 키트 앱을 켜 민우의 키트 스캔본을 전송하고 진단하기를 눌렀다.
민우의 진단 결과를 확인한 김대리는 온몸에 술기운이 깨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당 수치는 국과수에서 인정하는 살인 범죄자 혹은 사이코패스에게 나타나는 정서 수치였다.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는지 곧장 민우의 집에서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대리는 민우의 수치 결과를 캡쳐했다.
“대리님 뭐 하세요?” 민우가 라면냄비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어? 아니야. 야, 나, 가야겠다. 와이프가 잔소리하네. 늦었다고. 너도 피곤할텐데 쉬어.” 김대리는 황급히 윗 옷을 챙겨 문을 열려했지만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왜 벌써가세요? 라면 먹고 가시지?” 민우는 눈이 휘둥그레져 김대리에게 물었다.
“아니, 그냥 갈게. 이거 문이 왜 안열리지? 문이거 어떻게 하냐?” 김대리는 불안한듯 다급하게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진짜 가시게요? 아, 그거 잠시만요." 민우는 냄비를 거실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는 김대리를 향해 스캔했다.
'-위잉'
“너 뭐하니?”
“……”
“야, 너 이거 문좀… 아.”
“열어봐.”
“문 열어. 문 열어! 시발 또라이 새끼야!” 김대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 민우에게 윽박질렀다.
“김대리님, 키트 결과가..하나만 인상적이에요. 공황 9 PF. 나머지는 정상 범위내 수치. 이건, 일반적 패닉 상태. 이거 우리 회사도, 경찰에서도 자살도 열어두는 그런 수치잖아요. 그렇죠?”
“...뭐?”
“김대리님. 맨날 저한테 장난치면서 저는 이런 장난도 못칩니까? 와서 라면이나 드세요 대리님. 진짜 끝까지 이기적이시네.” 민우가 김대리에게 손짓했다.
"이 개새끼가, 너 지금 뭐라했어!"
민우는 젓가락을 들어 라면을 후후 불며 한입 집어먹고는 김대리를 차분하게 응시했다.
“신기하다. 그, 피추현 키트 결과 있잖아요, 걔도 지금 김대리님이랑 엄청 비슷했어요. 내가 죽여버리기 전에는요.”
10.
쿵-!
남자가 바닥에 누워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하지만 호흡이 옅어진다. 이어서 점점 흐려지는 시야. 얼핏 성인 남자의 실루엣이 들어온다.
장갑을 낀 최민우가 휴대폰을 들고 피로 범벅이 된 피추현을 여러 각도로 열심히 스캔하고 있다. 피추현의 모든 관절이 제마다 어긋나 꺾여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