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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세기소년 Sep 08. 2021

Dream Club #6

김치 미러



 "이제 구면인 거죠."


 남자에게 말을 걸었어요. 그는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오른 듯 보였어요. 순간 후회가 들었죠.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랐거든요. 그는 다행히 제 인사를 받아주었죠. 반쯤 풀려 충혈된 그의 눈은 어딘가 슬퍼 보였죠. 그는 저에게 질문 하나를 했어요.  



 “뭐 때문에 여기에 왔어요?”

 "그러게요. 어쩌다보니. 그쪽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대화는 묘하게 잘 흘러갔어요. 물론 완벽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흐름이 끊이지 않는 그런 대화는 아니었어요. 적당한 간격과 어색함도 있었죠.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저희는 그저 이 공간의 어마 무시한 크기나 높이, 변태적일 정도로 정교한 프로그래밍, 프런트 데스크 직원의 괴이한 말투와 생김새, 그리고 누가 봐도 가정이 있지만 외도나 불륜을 즐기러 온듯한 이곳 접속자들에 대한 흉을 보며 시간을 보냈어요. 좋았어요. 과거나 관계 따위에 엮이지 않고 완전히 현재에 충실한 대화만을 하고 있었죠. 이상하게 그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일종의 연민을 느꼈어요. 그는 적어도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단발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보이지 않았거든요.


 눈앞에서 해가 저물고 노을이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일출과 일몰은 눈에 확연히 드러날 만큼 빠르게 움직였어요. 프로그래밍된 태양이 접속자들에게 시각적인 효과를 제공하는 것이었죠. 프로그래밍된 해 질 녘의 저녁노을은 이질감 없이 아름다웠어요. 아이러니했어요. 현실에서 매일 마주하는 풍경인데 말이죠. 그토록 아름답거나 신비하다고 느끼지 않았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있었죠.


 우리는 실내로 자리를 옮겼어요. 라운지 중앙에 위치한 바였죠. 결이 살아있는 고급진 원목 테이블위로 은은하게 붉은색과 파란색 조명이 어우러져 있었어요.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그는 저를 레드라고 불렀어요. 제가 앉은자리에서 저를 향해 비추는 조명이 붉은 조명이었거든요. 그 별명이 어딘가 느끼하거나 민망하게 느껴질 법도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그 남자만이 가진 매력이었죠. 새롭고 좋았어요. 누군가에게 기존에 내가 아닌 새로운 명칭, 어떠한 색으로 인식되는 거요. 파란 조명이 비추는 그에게는 블루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저는 그날 엄마를 보러 섬에 가지 않았어요. 드림 클럽에 접속한 뒤로 처음이었죠.


 다음날, 처음으로 회사에 지각을 했어요. 미리 서버 접속 종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깊게 잠에 들었나 봐요. 혼자 산 뒤로 이렇게 깊은 숙면을 취한 적이 있나 싶었어요. 눈을 뜬 순간부터 출근하고, 업무를 보고, 동료들과 섞여 점심을 먹고, 또 퇴근길에서까지 계속 블루가 떠올랐어요. 그저 그와 다음 약속도 정하지 않은 체 헤어졌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죠. 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귀에 약물을 주입했어요. 그렇게 바로 잠에 들었죠.


 저는 접속 포탈 라운지에서 블루가 접속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바보 같은 짓이었죠. 하루에도 수천 명의 접속자들이 드나드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블루를 찾아냈어요. 우연을 가장하지도 않았죠. 그냥 접속을 마친 그의 앞에 나타났죠.


 "올 때까지 기다렸어."


 블루는 제 말에 꽤나 당황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어요. 그 이후로 계속해서 그와 함께했어요. 우리는 아주 각별한 단짝 친구 같았죠. 행복했어요. 돈에 허덕이거나, 시간에 쫓기거나, 관계에 얽매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었죠. 그와 좋은 곳에 놀러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파티에 놀러 다니며 술도 먹었어요. 보통 날씨는 맑았고 이따금씩 정확한 기상일보와 함께 적당한 비도 내렸어요. 블루와 함께하는 매일 밤 꿈속의 활동들이 어느새 저에게는 일상이 되어 있었죠. 저는 점점 그가 친구 이상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느덧 기억의 섬에 방문하지 않은지 수 개월을 지나치고 있었어요. 이제는 현실 속 병상에서 멍하니 뜬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는 엄마의 얼굴이 더 익숙해져 갔죠. 제가 엄마를 위해 하는 일이라곤 주기적으로 귀에 드림 캡슐을 주입해주는 것이었죠.


 저는 점점 블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집착했어요. 그도 점점 천천히, 저를 연인처럼 대해주었거든요. 확신이 들지 않아도, 헷갈려도 좋았어요. 그렇게 우리는 생각보다 늦게 잠자리를 함께하게 됐죠. 관계를 갖는 도중 블루는 저를 세게 밀쳐냈어요. 그리고 그는 저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죠. 미안하다 하면서요. 저는 상관없다고 말했어요. 사실은 아니었지만 말이죠. 그때 저는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될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나봐요요. 그에게 부담을 주기도 싫었죠.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물론 지금 저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날 블루는 그렇게 황급히 혼자 섬을 빠져나왔어요. "미안해"라는 한마디를 남겼죠. 섬에 홀로 남겨진 제 꼴이 마치 젊은 시절의, 혹은 지금 꿈속에 남겨진 엄마 같았어요. 저는 그제야 엄마가 떠오르더군요. 왜 그랬을까요.


 잠에서 깨자마자 병원을 찾아갔어요. 마침 간병인도 휴무인 데다 엄마에게 드림 캡슐을 주입해야 하는 날이었거든요. 병실에 도착해 문을 열었는데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엄마의 병상 앞에 앉아있었어요. 굳이 더 묘사하거나 설명하지 않을게요. 저는 그의 문드러진 얼굴을 보자마자 소름이 끼쳤어요. 그는 당황해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저를 위해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더니 손짓으로 안심하라는 듯한 사인을 보내왔어요. 그리고 그는 천천히 명함을 건넸죠.


 "진작 찾아뵀어야 했는데 인사가 늦었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테디라고 합니다. 환자분의 담당의 분께 드림클럽 캡슐을 건넨 장본인입니다.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직접 찾아뵈었습니다. 저는 지금 어머님과 따님이 이용하고 계신 드림 클럽 서비스의 개발자이자 대표입니다. 당황스러우시겠지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몇가지 소식을 전해드리려 왔습니다."  


 테디는 자신을 소개하고 조심스럽게 엄마의 상태를 묻더군요. 그는 젠틀하고 침착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었죠. 테디는 엄마 상태와 전에 발생한 모든 사건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요. 그는 미리 저에게 양해를 구했죠. 드림 클럽 서버를 구축한 경영자로서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는 말을 전하면서요. 테디는 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제가 어느정도 경계심을 풀자 테디는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어요.

 

 "드림 캡슐을 처음 개발했을 때, 저는 흥분을 뒤로한 채 심한석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바로 시아씨의 어머님을 담당했던 나이 지긋한 그 의사 양반이었죠. 조금은 고지식해 보여도 심 선생님 제가 아는 어떤 의사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고귀함을 그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신 분이었기에 그분의 눈에는 제가 만든 이 기술이 달가워 보이지 않았죠. 변태스럽고, 비인간적이며,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을 초래할 것이라며 저를 강하게 쫓아내며 질타했어요."


 "그런데 왜 그 의사 선생님을 찾았죠?"


 "인정받고 싶었으니까요.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고 권위 있는 신경외과 의사로부터  기술을 인정받고 싶었어요. 한때 심한 박사 역시 루시드 드림을 이용한 의료기술에 상당한 집착이 있었거든요. 물론 제가 만든 드림클럽과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달랐다니요?"


 "박사님은 온전한 연구와 치료 목적에 의의를 두었어요. 시아씨의 어머님과 같은 식물인간, 치매, 전신마비나 뇌전증 등과 같은  손상 환자들의 중추신경계에서 확실한 원인을 파악해 치료하고 회복시키려 했죠. 반면에 저는 그 목적자체부터 조금은 달랐습니다. 생리적인 것들을 바꾸려들지 않았죠. 그건 결코 인간 따위에서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현실을 먼저 수용했죠. 대신,  안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생명 프로그래밍의 만남이라고나 할까요. 현실이 가혹한 인간들을 위한  다른 현실이었어요. 그리고 인간들을 하나둘씩 연결했죠. 정말 고독한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가치는 분명 있었습니다. 뭐랄까요, 마치 무형  태초의 공간에서 창조적 임무를 받은 조물주나 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죠."


 테디는 본인의 이야기에 심취한 듯 보였습니다.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비장해 보였죠.


 "드림 클럽은 오롯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정말 그 목적이 전부죠. 뻔한 말이지만 인간은 누구나 본인 그 자체로도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드림 클럽 내에서는 외형, 성격, 신체 상태 그리고 유전자 등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반영시킵니다. 접속자는 절대 그것들을 임의로 조작하고 변형시킬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서 사랑을 하고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 말이 너무 길었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위로를 드려야 할 입장인데 말이죠."


 "괜찮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어머님이 계신 섬은 언젠가는 소멸될 겁니다."


 "네?"


 "어머님 개인의 기억을 기반으로 제가 개입해서 설계한 공간이니까요. 본래 사용자의 기억은 절대 드림클럽의 구조물이나 환경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현실만을 반영한다는 저만의 철학이었죠. 개발을 위해 수많은 드림클럽 베타 서비스 참여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연구하지만 절대 그들의 기억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예외였어요. 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운영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입했습니다. 어머님의 기억을 보존시켜 드리고 싶었거든요."


 "왜죠?"


 “그 감정을 잘 알고있거든요.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를 붙들고 살아가는, 뭐 그런 지독한 감정이요. 어쨌든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 어머님께서 유일하게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어느 섬과 한 남자였습니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과 머물렀던 곳이었겠죠."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섬이 없어지다니요? "


 "어쩌면 어머님은 일부러 '기억의 섬'에서 벗어나지 않고 계신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어머님의 기억에 있는 섬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설계하고 그려 드렸을 뿐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섬은 철저히 어머님의 기억에 기반해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어머님의 기억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섬의 일부분이 하나씩 없어질 겁니다. 섬뿐만 아니라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기술로서는 해당 데이터를 다시 복구시킬 수 없을 겁니다."


 "복구시킬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접속 당시부터 뇌손상이 너무 컸습니다. 현실에서 어머님의 뇌간은 당장 언제라도 활동을 멈출 수도 있는 위독한 상태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드림 나노봇도 제 역할을 못하게 되겠죠. 어머님께서는 본인의 상태를 모두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다음은 뇌사상태입니다. 사실상 사망 판정이죠. 시간이 얼마 없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만나 주세요."


 저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가방을 뒤지며 캡슐을 찾았어요. 하지만 캡슐은 없었죠. 드림 클럽에서 엄마를 만나지 않게 된 이후부터는 캡슐을 좀처럼 들고 다니지 않았거든요. 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테디를 쳐다보았어요.


 "다시 찾아뵙지는 않겠습니다. 무거운 소식을 전해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꼭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테디는 그 말을 남기고 조용히 나갔어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캡슐을 꺼내 귀에 주입했죠. 동기화를 거치고 재빠르게 접속해 선착장으로 향했어요. 섬에 가까워지자 빨간 등대가 보였죠. 섬의 크기는 어느새 반 토막이 나있더군요. 엄마의 기억이 줄어들고 있었던거죠. 빨간 등대 주위로는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다만 엄마가 그린 그림들은 빨랫줄과 집게에 걸려있었어요. 바닷 바람에 그림들이 살랑거리고 있었죠. 모두 엄마가 현실에서 그려냈던 그림들이었어요. 불에 타버렸던 그림들을 전부 다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섬에 도착해 등대를 끼고돌며 엄마를 찾았어요. 엄마는 등대에 등을 기대 두 다리를 끌어모은 상태로 다소곳이 앉아 있었죠. 그리고는 저를 발견하고 지긋이 올려다보았어요. 해맑데 웃으며 저를 한참이나 응시했어요. 이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제 뺨을 어루만졌죠.     


 "엄마, 나 알아보겠어?"

 "그럼."

 "엄마 언제부터..."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빨랫줄에 걸려 있는 그림들로 향했어요. 저를 보며 따라오라고 손짓했죠. 여전히 밝고 고상한 표정으로요. 그림을 하나 하나씩 가리켰어요.


 "여기 봐봐."

 "나네."

 "응. 너 네 살 때였나. 파란 물감 자꾸 먹으려고 해서 엄마가 겁줬잖아."

 "파란 물감 안에 새끼 괴물들이 산다고."

 "맞아. 그래서 파란 물감을 먹게 되면 내 뱃속에서 새끼 괴물들이 자라 언젠가 배를 뚫고 튀어나올 거라고 했어.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잔인해."

 "그렇지. 근데 효과는 엄청 좋았어. 내가 엄마 말 진짜 안 들었잖아."


 엄마는 아빠의 뒷모습이 담긴 그림도 가리켰어요.  


 "이거 기억나?"

 "당연하지. 나 초등학교 1학년 때. 내가 좋아했던 그림이었잖아."

 "너 그날 엄청 울었어."

 "엄마도 너 학교 보내고 울었어."

 "엄마도 보고 싶었구나."

 "맞아. 아빠가 보고 싶었거든."

 "엄마, 나 근데 최근에 어떤 사람을 만났어. 그 사진이랑 뒷모습이 똑같은 사람이었어."

 "그랬구나."

 "응. 난 그 사람이 너무 좋았어. 근데 그 사람 가정이 있었대. 그리고 그렇게 끝났어. 그래서 그동안 엄마한테 안 간 거야. 그리고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나고 나서야 엄마 생각이 났어. 그리고 나는 엄마랑 내가 이런 불쌍한 연애사마저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것도 원망했어. 근데 심지어 나는 유부남이야. 로맨틱하지도 않아. 엄청 구리다. 내 인생 그치?"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빨랫줄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따라 계속 걸을뿐이었죠. 오랜만에 보는 그림들이었어요. 엄마는 그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하나하나 기억해낸 모양이었죠.


 "이거는 너 20살 때 자고 있는 모습. '마지막 밤'이라는 제목을 지었을 거야. 네가 대학교 합격하고 홀로 서울 가기 전날, 마지막으로 집에서 자는 모습이었어. 밤마다 저 그림을 봤어. 이후에도 네가 없는 수 많은 밤들 보내면서, 지금 시아가 뭐 하고 있을까, 또 형광등을 키고 자는 건 아닐까, 지금 전화하면 네가 받을까, 뭐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게 다 기억이 났어. 엄마는 있잖아, 사실 아빠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 그래서 늘 아빠 얼굴 하나 제대로 못 그려줬어.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줄곧 기억이 나지 않았거든. 근데 견딜만했어. 정말. 아빠는 시아 너를 남기고 갔잖아. 그래서 괜찮았어. 네가 커서 나를 미워했을 때도 괜찮았어. 적어도 우리 그때는 같이 있었잖아. 그 이후로는 정말 그림을 그리는 것 밖에 할 게 없더라고. 어느새 난 치매에 걸린 노인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사지마저 움직이지 못하지. 그리고 여기에 머물러있어. 여기서는 이상하게 하루 종일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아. 일부러 넘어져도 아프지 않고. 상처도 나지 않아. 날씨는 항상 좋고, 바람도 적당하지. 그게 무서웠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거든."


 붉어진 눈시울로 엄마는 웃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어요.

    

 "그래도 여기는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어. 너의 아빠와 너를 내 뱃속에 품고 시작했던 곳이었으니까. 다시 시작으로 돌아간 것 같았어. 그래서 기억이 돌아올 때마다 너무 무서웠다?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서 계속 그림을 그렸어. 섬은 계속 좁아졌어. 그림을 그리면 자꾸 네가 떠올랐어. 그림으로 기억할 수 있어서 계속 그렸어. 예나 지금이나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으니깐. 그러면서 언젠가 너까지 영영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어. 외로웠어. 그리고 기다렸어. 사랑해. 딸. 점점 섬이 작아져서 무서워. 언젠간 다 사라질 것만 같았어. 나 여기서 나가버리면 안 될 것 같았거든? 네가 오면 참 할 말이 많았는데, 시간도 많았는데 말이야. 어쨌든 우리 딸, 다행이야. 엄마는 딸이 남자도 만나서 사랑에 빠져도 보고, 너무 일만 하지는 않나 걱정했는데 말이야. 괜찮아 딸. 넌 사랑스럽고 사랑받아야 되는 애야. 넌 꼭 그렇게 커야 돼. 엄마가 고집이 세서, 앞뒤가 꽉막힌 노인이 되버려서 미안해. 엄마는 네가 있어서 행복했어. 이제 정말 괜찮아."


 섬의 크기가 계속해서 더 줄어들고 있었어요. 섬의 구조물과 외곽이 앙상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설계된 수식과 코드들이 하늘과 땅 주변에 드러났고 하나씩 삭제되고 있었죠. 마침내 빨간 등대와 저희 둘만 남겨졌어요. 계속해서 눈물을 닦아내며 어떻게든 엄마를 똑바로 쳐다봤어요. 엄마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엄마를 꼭 껴안았어요. 엄마가 말했어요.


 "사랑해."


 엄마는 저에게 안긴 모습 그대로 멈췄어요. 저는 어느새 허공을 끌어안으며 혼자 남았죠. 엄마가 입고 입던 옷, 피부결, 손톱, 눈동자, 머리카락 등의 색이나 질감의 형태들이 사라져 있었어요. 서버의 시스템은 허공에 수를 놓은듯 엄마의 형상만을 띄우고 있었어요.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수많은 푸른색의 점들이 이어진 형태들로 남겨졌죠. 


 같은 시각, 새벽 2시 10분. 엄마는 뇌사 판정을 받고 돌아가셨어요. 현실 세계에서요.]



7화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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