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미러
엄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혹시 엄마에게 문제가 생겼나 싶었죠. 급하게 접속 종료를 시도했지만 이미 동기화가 끝난 상태라 자동 저장을 위한 로딩이 필요했어요. 발을 동동 구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죠. 동기화를 거쳐 프로그래밍이 끝난 접속자들은 저마다 포탈을 통해 구현되고 있었지만 엄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저는 다시 프런트 데스크로 향했어요.
"안타깝지만 다른 접속자의 신상정보는 조회할 수 없습니다."
"알아요. 하지만 찾는 분이 연세도 있으시고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세요. 어떻게 저를 좀 도와줄 수 없을까요."
"그렇군요. 상심이 크시겠어요. 모든 접속자들의 동기화 시간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동기화를 위해서는 개인의 경험, 성격, 교육, 그리고 기억의 축적 등을 고려해 최적화되기 때문에 찾는 분께서 혹시 연세가 있으시다면 약 오분에서 십 분 정도 더 기다려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후에도 접속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접속자의 약물 주입 단계 방법이나 초기 시스템 설정에서 확인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프로그래밍된 프런트 로봇 직원의 기계적인 대답에 저는 그저 한숨만 나왔어요. 하지만 다행히 뒤를 돌아봤는데 엄마가 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미소가 만개한 얼굴로요.
"시아야. 여기까지 예고르가 데려다줬어. 엄마 꿈이 너무 생생해."
다행히 엄마는 저를 기억하고 있었어요. 예고르라는 이름을 한참 동안이나 생각했죠. 아빠였어요. 엄마의 동기화 화면에는 아빠가 나왔나 봐요. 엄마는 아빠와 한참 동안 어느 예쁜 섬마을의 해안가를 따라 걸었고 대화를 나누었데요. 엄마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는 표정으로 아빠가 섬으로 올 거라고 말했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엄마를 안아주었죠. 저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물었어요.
"혹시 여기에는 섬 같은 곳도 있을까요?”
저희는 로봇 직원의 안내에 따라 게이트로 향했어요. 엄마는 다시 한번 말했어요.
"시아야, 나 지금 꿈을 꾸는 거지? 너무 생생해. 여기 너무 아름다워."
저는 그저 미소로 지었어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죠. 사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거든요.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더 헷갈렸나 봐요. 엄마는 직전에 있던 교통사고 역시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어요.아무렴 상관없었어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엄마가 행복해 했으니까요.
드림 클럽은 국제공항의 몇 배나 되는 높이와 크기였어요. 거대한 창문 밖으로 웅장한 도심이 보였고 더 너머에는 눈부신 햇빛 아래 숲, 바다 등 완벽한 생태계가 보였죠. 엄마는 이 상황에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았어요. 그저 꿈을 즐기는 듯 보였어요.
직원의 안내를 받은 곳은 드림랜드는 여러 섬들 중 한 곳이었어요. 드림 클럽의 드림랜드는 하나만 존재하는 섬이 아니었어요. 사용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게 설계된 섬들이었죠. 드림랜드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선착장에 가야 했어요. 선착장은 드림 클럽의 메인 프런트 홀을 기준으로 남쪽 해안에 위치해 있었죠. 엄마와 저는 드림 클럽에서 운영하는 실내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했어요. 그렇게 10분쯤을 이동해서 선착장에 도착했죠. 선착장에는 짭짤한 바다 냄새, 눅눅한 바닷바람, 갈매기 때, 그리고 불규칙한 파도까지 모든 게 완벽한 바다처럼 구현되어 있었어요. 환각을 보는 것 같았죠. 눈앞에 펼쳐진 이 모든 것들이 프로그래밍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어요. 바다 너머에는 수많은 드림랜드들이 보였어요. 사람들이 몰리고 클럽들이 즐비한 축제의 섬, 휴양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섬, 고요하고 느낌 있는 크고 작은 섬 등등 다양한 드림랜드는 사용자들의 입맛에 맞게 눈앞에 펼쳐져 있었죠. 섬으로 이동하는 방식 역시 섬들이 가진 특징에 따라 달랐어요. 파티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크루즈와 비행기는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축제를 즐기는 섬으로 향했어요. 고급 요트에는 연인들이 탑승했고 휴양지로 향하고 있었어요.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과 홀로 여행을 즐기러 온 사람들은 작은 개인 보트 등을 이용해 비교적 조용한 섬으로 이동했죠.
저는 엄마의 왼쪽 팔꿈치를 들어 올려 선착장 매표소 스캐너에 일련번호를 스캔했어요. 선착장의 무인 매표소는 빨간 등대가 랜드마크처럼 보이는 '기억의 섬'이라는 곳을 추천하더군요. 저는 스크린 앞에 생겨난 그 ‘기억의 섬’이라는 옵션을 한참동안 뚫어져라 쳐다봤죠. 어디인가 낯이 익었거든요. 게다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앞에 보이는 드림랜드에는 ‘기억의 섬’과 같이 생긴 곳은 보이지 않았어요. 어쨌든 엄마는 주저 없이 기억의 섬을 선택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 앞에는 초록색의 이끼가 더덕더덕 붙어있는 작고 귀여운 무인 어선 하나가 도착했어요. 저희는 그 배에 탑승했죠. 다른 여객선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접속자들은 대게 휴양지나 축제를 즐기는 용도로 드림랜드에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거든요. 하지만 엄마가 꿈꾸는 드림랜드는 조금 달랐어요. 우리가 배에 탑승하자마자 바다 저 멀리에서는 프로그래밍이 시작되고 있었어요. 마치 신이 바다 한가운데에 즉석으로 섬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죠.
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빨간 등대는 선명해졌어요. 드림랜드는 마치 우리가 섬에 닿는 거리에 비례해 선명히 보이는 것처럼 최대한 자연스러운 원근적인 시각효과를 유도했죠. 마치 거리에 의해 선명해지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켰어요. 하지만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섬은 실시간으로 설계되고 있었어요. 자동 프로그래밍 시스템은 먼저 섬의 전반적인 골격과 등대를 만들고 방파제, 울타리, 섬의 모양, 그리고 아기자기한 마을들을 눈앞에서 그려내고 있었죠. 마치 그림 동화나 게임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섬 마을의 구색이 잡힐 때쯤 천천히 색이 입혀지기 시작했어요. 빨간 등대, 이끼가 낀 방파제, 물에 젖은 자갈, 하얀 지붕, 그리고 푸른 하늘을 칠했어요. 심지어는 갈매기마저 그려내고 있었죠. 문득 소름이 돋았어요. 눈앞에 있는 섬의 풍경은 대학교 시절, 엄마가 그려서 보내준 그림 중 하나였거든요. 그 그림 역시 "기억의 섬"이라는 제목이었던걸로 기억했죠. 저는 그 당시에도 그 그림을 꽤나 좋아했을 거예요. 물론 엄마에게 그대로 돌려보냈지만, 드림 클럽은 접속자의 묻혀진 기억과 추억모두 끄집어내고 있었어요. 눈앞에 나타난 고요한 섬마을의 풍경에 엄마와 저는 한동안 시선을 빼았겼어요.
섬에 도착하자 엄마는 등대를 향해 달려갔어요. 거기에는 아빠가 새긴 글귀가 적혀있었거든요. 카자흐스탄어로 “사랑해” 라는 뜻이었죠.
"Сүйемін"
저희는 마을 구석구석을 누볐어요. 엄마는 모든 것들을 보고 기억해내려 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해가 지고서야 아차 싶었죠. 엄마와 시간을 보내느라 회사에 출근하는 시간을 깜빡했던 거죠. 엄마는 그때까지도 하얀 방파제에 걸터앉아 바다에 걸려있는 노을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저는 엄마 옆에 다가가 앉았죠.
"엄마."
"누구세요?"
엄마는 그새 저를 기억하지 못했어요. 저는 순간 장난기가 돌았죠.
"어머, 죄송해요. 제가 착각했나 봐요. 저희 엄마랑 엄청 닮았어요."
"그래요? 전 아직 애도 없는걸요? 아! 쉿, 사실 여기 있어요."
엄마는 자기 배를 가리키며 까르르 웃었어요.
"그렇네요? 축하드려요. 여기서 태어난 아가는 정말 좋겠다. 여기 너무 예쁘지 않아요?"
"맞아요. 너무 예뻐요."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누구를 좀 기다리고 있어요. 아가씨는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요. 기다리는 사람이 혹시 아이 아빠인가요?”
"맞아요."
엄마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는 그 순간 어쩌면 엄마에게 있어 이 섬이 최선의 공간이겠다는 생각 했어요. 엄마와 인사를 하고 배를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가 포탈에서 접속을 종료했어요. 마음 한편이 무거웠습니다.
한동안 이런 생활이 계속되었어요. 엄마는 간헐적으로 저를 딸로 인식했지만 그 빈도수는 점점 눈에 띄게 낮아졌죠. 그럴때마다 저는 엄마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어요. 엄마가 기억의 섬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어느새 두 명이나 늘었죠.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꿈에서 엄마를 만났어요. 엄마 역시 그림을 좋아했어요. 저는 매일같이 드림 클럽에 접속해 기억의 섬으로 갔어요. 엄마에게 그림을 알려주었어요. 그리고 함께 그림을 그렸죠. 마치 어릴 적 제가 엄마에게 그림을 배웠던 것처럼 말이에요. 의외의 것들이 발견되기 시작했어요. 치매를 앓는 화가의 표현력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어요. 그림은 더 간결하고 순수해졌죠. 엄마는 정말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나 봐요. 늘 저에게 늘 색다른 색채와 영감을 주었죠. 어린 시절 왜 그토록 엄마가 제 그림을 좋아했는지 반대로 이해가 가더군요. 우리는 많이 행복했어요. 바다를 맡고, 등대에 기대고, 바다를 등지고, 바람을 맞고, 심지어 방파제에 부딪히고 으깨지는 파도소리들까지 섬의 모든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냈어요. 그렇게 한바탕 그림을 그리고 나면 어느덧 출근시간이 다가오곤 했죠. 전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음식이나 캔버스를 사러 육지에 갔다 온다고 거짓말했어요. 돌아갈 핑계가 없었거든요. 엄마는 제가 섬을 빠져나올 때마다 아쉬워했지만 기다려주었어요.
엄마는 저에게 예고르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어요. 덕분에 아빠에 대해서 알게 되었죠. 엄마가 치매를 앓기 전에는 한 번도 아빠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어느 날은 아빠의 뒷모습을 그려 저에게 보여줬어요. 저는 너무 반가웠어요. 그 그림을 또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엄마가 저에게 물었어요.
“아가씨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니요. 아쉽게도 없네요.”
“왜요? 이렇게 예쁜데 총각들이 안 달려드나?”
“그러게요, 맨날 엄마만 기다리다가 노처녀로 죽어버리겠네요.”
“그런 말 하지 마요! 그러면, 그러지 말고 나가서 남자도 만나고 좀 그래요.”
“그럴까요? 그런데 그러다가 엄마가 저만 기다리면 어떡해요.”
“괜찮아요. 시아씨 어머님 오시면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어머니는 나랑 또 그림 그리고 놀면 되지. 안 그래요?”
어느덧 출근 시간이 되었고 여느 때처럼 엄마와 작별인사를 했어요. 엄마는 또 한 번 밝은 표정으로 내일은 섬에 오지 말고 남자를 만나러 가라며 농담을 건넸죠. 섬 밖을 빠져나와 선착장에 도착했어요. 새로운 인연을 찾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바다를 거닐고 있더군요. 솔직히 부러웠어요. 문득 저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정말 막연한 생각이었어요. 제가 처한 현실에서는 신경써야될 것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먼저 일을 해야했어요. 그리고 벌고 있는 돈의 대부분은 엄마의 병원비로 쓰고 있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직장 동료들은 저를 부러워했어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드림클럽 베타 테스트 참여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 말이에요. 모두들 제가 환상적이거나 로맨틱한 꿈에 빠져 살아간다고 생각했죠.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어요. 현실에서는 그 누구와도 가까이 지내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꿈에 갇혀서, 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치매에 걸린 엄마를 지켜보는 것이 제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외로웠어요. 마치 예전처럼 말이에요. 그쯤되니 속도 타고 화도 났어요. 사실 엄마도 제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었잖아요? 제게 남은건 또 다시 엄마 뿐이었죠.
그날은 유난히 접속자가 많았어요. 베타테스트 서버 최초로 열리는 사교 파티 때문이었죠. 그 당시 드림클럽 접속화면 광고에서는 초고층의 스카이라운지 파티를 계속해서 홍보거든요. 물론 저와는 상관 없는 행사였지만요. 그날도 리셉션 직원은 저에게 ‘기억의 섬’에 가겠냐고 물었어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 하기는 했지만 제 시선은 어느새 파티를 즐기러온 사람들에게 가 있었죠. 제 안에는 충동적인 호기심과 욕구가 일었습니다. 저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사실 섬이 아닌 다른 곳에 가보고 싶었던 것이었죠.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해본지도 꽤 오래되었거든요. 저는 리셉션 직원에게 다시 돌아갔어요. 스카이라운지 파티에 참석할 수 있냐고 물었죠. 직원은 밝은 얼굴로 가능하다는 대답을 해주었죠.
저는 엘리베이터에서 한 남자를 만났어요. 남자 역시 사연이 있는 얼굴이었죠. 게다가 다른 단체나 커플들과는 다르게 그 남자 역시 혼자였기 때문인지 더 편하게 느껴졌어요. 오랜만에 하는 아니, 어쩌면 처음 해보는 그런 대화였죠. 혹여나 그 사람이 제 말을 무시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생각보다 밝고 위트 있는 사람이었어요. 107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우리는 몇마디 대화를 나누었어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자연스럽게 헤어졌죠. 저는 한껏 기대가 되었어요. 사실 술을 마신 기억도 너무나 오래된 일이었거든요. 입구에 놓여 있던 샹그리아 한 잔을 들고 홀짝거리며 돌아다녔어요. 드림클럽의 전경은 정말 아름다웠거든요.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며 다양한 각도에서 풍경을 즐겼죠. 어딘가 막혀있던 가슴 한편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보고 싶었던 바다 전망을 보고 엄마가 있는 기억의 섬으로 발길을 돌리려던 참이었죠.
바다를 바라보자마자 누군가가 제 시선에 들어왔어요. 제 앞에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었죠.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엄마가 그린 그림속 예고르의 뒷모습과 똑같은 모습이었거든요. 저는 그 자리에 한참 서서 그 남자를 지켜보았어요. 그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그 남자였죠. 운명, 그런 남사스러운거 있잖아요? 저는 그랬어요. 운명같은게 있다면 아마 그건 지금이고, 나에게 온 기회겠지.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말을 걸었어요. 바보 같지만 정말 그건 심장이 터질것 같은 설레임이었죠.
이어서 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