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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세기소년 Sep 21. 2022

Dream Club #9 최종화

김치 미러


 조오진은 진행 요원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사회자는 진행요원들을 향해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올렸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한 체 숨을 헐떡이는 오진을 응시했다. 이어서 사회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두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조오진 씨의 일상과 무관한 세상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게다가 이건 심해미 씨의 선택이었죠. 존중해주시죠.”


 “해미는 죽음을 원하지 않았어. 너희들이 죽음으로 몰아간거야.”


 그의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진실을 마주하는 오진은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사회자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보였다. 그건 마치 조오진을 향한 조롱 같기도 했고, 분노를 억제하기 위한 웃음 같기도 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오진 씨가 드림 클럽에 접속하지 않았다면, 시아 씨는 아마 어머니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이건 조오진 씨 책임이 아닙니다. 조오진 씨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 테고요. 정시아 씨 역시 선택을 했던 겁니다. 이유야 어찌 됐건 결론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인 정유정 씨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을 포기한 셈이 됐으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심해미 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롯이 모두 자신을 위한 선택을 했습니다. 당신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아내만의 선택을 존중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이시죠.”


 “뭐라고?”


  사회자는 시선을 돌려 다시 객석을 향해 소리쳤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와 함께 슬슬 간담회의 마무리를 지어볼까 합니다. 모두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조오진 씨도요.]


 객석이 다시 어두워졌고 홀로그램은 또 한 번 강한 빛줄기를 쏘아 올렸다. 빛줄기들은 오진과 오진의 아내 해미를 그려냈고, 이어서 드림 클럽 베타 테스트 간담회의 마지막 이야기가 사회자에 의해 묘사되고 있었다.


 [드림클럽에서는 현실보다 더 쉽게, 그리고 더 많은 도파민을 얻게 됩니다. 모든 참가자들의 드림 캡슐이 각기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 이유 중 하나이죠. 드림 캡슐은 단순히 개인이 설정해 놓은 데이터와 일련 정보를 통해 구분해 추적하는 용도가 아니었습니다. 접속자들의 감정과 기억, 그 외 심리적인 상태를 모두 반영한 적정량의 도파민 억제제가 각자 맞춤화된 상태였죠. 조오진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양의 도파민을 필요로 하는 상태였던 아내 심해미씨의 드림 클럽을 이용해 접속을 했고, 아내는 다른 사람과의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교감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쾌락을 조오진 당신이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느끼는 절망이나 슬픔도 잠시, 그는 당시 아내의 몸으로부터 느꼈던 강한 자극과 색다른 도파민에 중독 되고 말았죠. 여러 자극의 충돌을 일으킨 당신의 뇌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욕망에 지배가 되었겠죠. 물론 저희 드림 클럽 연구진조차 예상치 못한 범위의 부작용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조오진은 계속해서 그날만을 떠올렸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그리고는 미각까지, 자기 자신도 모른체 그의 뇌는 그날의쾌락만을 떠올리고 또 갈망하고 했죠.]


 홀로그램은 도파민에 중독되어 마치 마약 중독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오진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즉, 한 개의 뇌에 사용되어야 할 나노 로봇의 일련번호에 또 다른 기억 정보와 데이터가 충돌하면서 시스템과 실제 도파민 수용체에 과부하가 발생한 겁니다. 예상치 못한 나노봇과 뇌세포, 그리고 신체 조직 데이터간의 기능 고장을 유발했죠. 나노 봇은 계속해서 조오진의 뇌 속에서 도파민 생성을 유도했습니다. 극단적인 쾌락을 경험한 조오진의 뇌 속 도파민 수용체는 일정 한계치를 넘어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됐죠. 그렇게 조오진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 강한 도파민 중독에 빠져버립니다. 일상에서의 작은 쾌락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거죠. 뇌는 망가졌고 그의 일상은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기억력은 점차 감퇴했죠. 조오진은 어느새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었고 방 안에 갇혀 폐인과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부부는 이미 그날 이후로 별거 중인 상태였죠.


 그리고 마침내 조오진은 마지막까지 힘겹게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슺니다. 쉽게 말해 뇌가 폭주했죠. 그날 새벽, 오진은 발정기가 찾아온 짐승과도 같은 상태로 아내에게 향했죠. 조오진이 아내의 집에 접근했을 때, 해미는 드림 클럽에 접속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오진은 침실에서 아내의 드림 캡슐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귓속에 또 한번 주입했죠. 다시 한번 동시 접속이 진행되었습니다. 조오진은 아내의 의식에서 마치 숙주처럼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접속을 하고 있던 아내 역시 자신의 상태가 이상함을 감지했습니다. 점점 모든 사고와 행동에 이상이 생겼고, 비정상적으로 심박수가 뛰기 시작했죠. 급기야 자신을 제어하지 못했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습니다. 눈앞의 모든 이성에게 다가가 모든 이들의 육체를 탐하고 뒤섞었죠.


 그녀는 꿈 안에서 강제로 드림클럽 접속을 종료시켰습니다. 눈앞에는 쾌락에 젖은 표정으로 렘수면 상태에 빠져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죠. 심해미 씨는 이내 공포감에 휩싸였습니다. 곧바로 방안에 있는 드림 클럽 통신망 공유기를 차단시켰죠. 이어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얼마뒤 네트워크 연결이 끊어진 조오진 역시 잠에서 깼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홀로그램이 다음 상황을 그려내고 있었다. 침대에서 아내 위에 올라타 있는 조오진의 모습이었다. 그는 빨갛게 충혈된 눈을 뜨고 완전히 미친 상태로 심해미의 목을 힘껏 조르고 있었다. 관객들은 경악했다.


 [잠에서 깬 조오진은 정상이 아닌 상태였죠. 그는 아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미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했죠. 그의 뇌는 단순한 쾌락 추구를 넘어섰습니다광기를 보이고 있었죠. 조오진은 완전히 지배된 상태였습니다. 모든 통제력을 잃은 그는 자신의 쾌락을 빼앗은 눈앞의 상대를 아내로 인식하지 못했죠. 얼굴과 신체를 수차례 무참히 가격했습니다. 이어서 목을 움켜잡고 조르고 또 짓눌렀죠. 숨을 쉬지 않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렇게 경찰이 출동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드림클럽 통신망 공유기는 다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오진은 아주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은체 잠이 들어 있었죠. 자신의 아내와 나란히 누운체로. 조오진 그 자리에서 바로 살인범으로 체포됐습니다. 하지만 죄값도 치루지 못한 체 그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뇌사 상태에 빠져 사실상 사망판정을 선고 받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결코 세상에 새어나가지 않았습니다. 그건 테디의 회사에 투자한 큰 손들 때문이었죠. 투자자들, 기업, 그리고 국가와 정부도 사건이 새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죠. 이 사건은 조용히 묻혔습니다. 동시에 테디는 말로 형용하기 힘든 분노와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해미를 사망에 이르게한 것이 본인의 몫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떨쳐낼 수 없었죠. 그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으려 했습니다.


 먼저 조오진을 향한 복수였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를 준비했습니다. 테디는 드림 클럽에 남아있는 데이터를 이용해 조오진의 기억과 뇌 세포를 전부 복제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뇌에서 아내를 살해한 기억만 분리시켜 놓았죠. 따라서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조오진의 마지막 기억은 아내를 죽인 자신의 모습은 없습니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아내의 외도일겁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진실을 알게 되었죠. 테디는 조오진을 이 자리에서 제대로 심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죗값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사회자는 입을 파르르 떨며 가쁘게 숨을 한번 몰아 쉬었고, 진행을 이어갔다.


 [조오진 씨, 기억하세요. 당신은 아내 심해미 씨를 수차례 무차별 폭행하고 목을 졸라 질식시켜 살해했습니다. 이건 당신의 나머지 기억입니다.]


 "아…아악!"


[당신의 뇌는 앞으로 드림 클럽에서만 의식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당신은 드림 클럽에서만 존재할 수 있죠. 저희는 당신을 드림 클럽 공간 속에 가두었습니다.]


 조오진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댔고 괴로운 듯 머리를 움켜쥐고 온 몸을 비틀었다. 그쯤, 관객들은 패닉에 빠졌다. 사회자는 자신의 기억에 괴로워하는 조오진에게 강하고 거친 어조로 소리쳤다. 동시에 그의 목소리는 강한 분노에 차 있었다.


 [이제 기억이 날거야. 조오진. 당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 최선을 다해서 당신의 기억을 적나라하게 복원시켜 줄게. 그게 네가 여기에 있는 이유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오진은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홀로그램 속 해미의 모습을 멍하니 응시하며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사회자는 다시 관객들을 향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제 알다시피 당신의 신체는 더 이상 없습니다. 당신은 그저 어느 한 가상 공간에서 늘 깨어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죽였다는 기억만을 지닌 체 말이죠.] 


  조오진이 다급하게 사회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몸을 떨었다.


 [이제 더 이상 해미는 돌아오지 않아. 없어졌어. 사라졌어. 그러니, 당신은 여기 남아서 영원히 고통스러워해.]


 정적이 흘렀고 사회자의 얼굴이 천천히 변형되어 갔다.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녹아내린 듯 엉겨 붙어있는 눈과 코, 검붉은 피부, 새파란 입술과 앙상하게 말라버린 작은 몸, 테디였다. 만여명의 관중들은 테디를 알아보며 탄성을 자아냈다.


 [이제, 저는 다 끝났군요. 대부분 고통스러운 인생이었어요.


 여러분, 저는 드림 클럽의 본질에 대하여 몇번이고 재고했습니다. 드림 클럽이 과연 모든 인류에게 필요할 기술인가 했을 때, 저는 그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더군요. 사실 갖다 붙일 이유야 많았죠. 숙면에 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누구나 꿈꿔왔던 다른 세계에서, 그것도 동시대에 두 번째 인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그런 하찮은 변명과도 같은 이유들을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공허해졌죠. 저는 늘 이 드림 클럽이라는 공간을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가짜같이 보이는 건 정말 질색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점점, 어느새 저에게 드림 클럽은 현실을 넘어선 진짜 공간, 그리고 일상이 되어 버렸죠.


 현실에 계속 현실을 추가할수록 초현실이 되고 있었죠. 그래서 더 악착같이 이곳에 매달렸어요. 예를 들면, 바다같은거요. 저는 혼자 드림 클럽의 해변들을 거닐곤 했어요. 드림 클럽의 바다는 제가 가장 많은 공을 들였던 부분이었죠. 누나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거든요. 바다의 텁텁한 모래바람, 물과 모래의 촉각, 바다 냄새, 그리고 해변의 잔잔한 소리까지도 놓치지 않았어요. 특히, 그중에서도 모래알을 표현하는 부분은 상당히 까다로웠어요. 모래를 손으로 퍼올렸을 때,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손마디 마디 사이 틈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구현하고 표현해야 했죠, 어디 그뿐만이었을까요, 모래는 흩날려야 해요. 아주 가볍게, 그리고 과하지 않게, 바람의 방향,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흩날리는 모래알맹이들을 통해 바람의 결도 보여줘야 했죠. 말했던것처럼 현실이 아닐수록 더 지나치게 현실 같아야 했으니까요.


 완성이 된 후에, 그 공간에서 모래사장을 혼자 하염없이 거닐었어요. 저는 그 안에서 냄새를 맡았고, 반짝이고 고운 모래알을 한 움큼 손으로 움켜쥐었죠. 완벽했어요. 여긴 완전히 해변가였죠. 그리고 손마디 마디 사이로 계속 모래알들이 새어 나갔어요. 여느 시인의 말마따나 주먹을 세게 쥐면 쥘수록 더 빠져나갔지만 손바닥에는 조금이나마 모래알들이 남아 있었거든요. 하지만 바다에는 바람이 불었고 남은 모래알마저도 날아갔어요. 그것도 제가 만든 바람이었죠.]


 홀로그램이 테디의 회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테디의 손바닥에서는 모래알들이 바람결을 따라 흐트러졌고, 흩날리는 모래알 사이로 저 멀리 해미가 보였다. 테디 역시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그녀를 드림 클럽에서 처음 마주쳤던 순간을 오버랩시켰다.


 [모순이었죠. 저는 그곳에서 제 진짜 모습을 보이지 못했죠. 그리고 또 가면을 썼어요. 누구나 그럴듯한 남자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테디와 알고 지낸 오랜 친구라고 제 자신을 소개했죠.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어요. 저는 그녀가 무엇을 보고 싶어 하고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어요. 변하지 않았더군요. 내 공간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치 우리가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불안해했죠. 언젠가 제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면, 그 옛날 나에게 겁에 질린 그 모습을, 그녀의 두려운 표정을 두 번 다시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심해속 암컷 초롱 아귀를 처음으로 보여준 그날, 그녀가 말했어요. 해미는 알고 있었어요, 저를 알고 있었어요. 제가 누구인지.


“많이 외로웠지, 테디.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렇게 숨기지 않아도 돼.”


 저는 한참을 누나 품에 흐느껴 울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낸 따뜻함이었어요. 우리는 해변 주변을 거닐며 산책했고 또 그렇게 좋아했던 마리아나 해구를 본떠 만든 깊고 시커먼 심해를 탐험했어요. 행복했습니다.


 어느날, 그녀는 저에게 평소보다 조금 일찍 접속해 들어왔고 저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왔죠. 이상했지만 저는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와 몸을 섞었고 깊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건 그녀가 아니었죠. 그날 아침, 그녀의 뇌에 접속한 조오진의 의처증, 과대망상, 성적 욕구불만이 만들어낸 조현증세였죠. 그날 저녁 진짜 해미가 접속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저에게 또 한번 그 표정을 지었어요. 옛날 저에게 지어보인 경멸과 공포에 젖은 표정이요.


 결국 모든 것들은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더군요. 다 제 광기였어요. 저는 과거를 그리워했죠. 제가 그리고 있는 현재와 그리고자 했던 미래는 모두 과거의 순간들이었어요. 저는 다시 지독하게 외로웠습니다. 계속 외로웠어요. 필사적으로 외롭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서 만들었잖아요. 해미를 만날 수 있는 공간. 그런데 사실은 저는, 저는 분명 대화를 나누었지만,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요. 누가 이 마음을 알까요. 해미는 죽었어요. 제가 만든 세상을 통해서 말이에요. 저는, 그저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을 지었고 경악했다. 일부는 테디에게 서슴없이 거친 욕을 해댔다. 모든 기자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빠르게 타자를 쳐내려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병에 찌들어 버린 제 볼품없는 신체는 현대 의학으로는 연명이 불가능했죠. 무의미하기도 했고요. 갖가지 수를 다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제 장기들은 기능을 할 수 없었고, 각종 생명 유지장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죠. 해미가 죽은 날, 저 역시 신체로 호흡하는 행위는 포기했습니다. 제 죄값이기도 했죠.


 추가로, 드림 클럽은 오늘부로 제 소유가 아닙니다. 이 간담회가 끝나면 저는 이곳에서 소멸합니다. 말 그대로 제가 정의하는 영원한 소멸이죠. 투자자, 정부, 국가, 여론, 그리고 모든 인간들도 더 이상 저를 막거나 싫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없거든요.


 이제야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지독한 외로움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소멸이었어요. 저는 조금도 우울하지 않습니다. 쉬고 싶습니다. 


 드림클럽은 베타 테스트 간담회를 끝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상용화됩니다. 각종 시스템과 환경적인 업데이트는 앞으로도 수많은 기술자와 투자자들에 의해 지속적인 지원이 될 예정입니다. 접속 유무의 선택은 모두의 자유입니다. 이상으로 간담회를 마치겠습니다. 저는 테디입니다.]


 마지막 말과 함께 강단 위 테디의 형상이 사라져 갔다. 여운이 가시지 않은 사람들은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고, 기자들은 열심히 대중들의 반응을 살피며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둘씩 접속을 종료했다. 결국 사람들은 꽤나 강렬한 영화 한편을 본듯 즐거워했다. 아주 멀쩡한 모습을 하고 마치 극적인 환영에서 벗어나 극장을 빠져나와 일상으로 복귀하는 관객들 같았다. 정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테디베어사 측의 특별 초청 권한으로 드림 클럽에 접속해있던 특파원 및 기자단들 역시 보도를 위해 하나둘씩 접속을 종료했다. 


 단 하나 완벽한 사실은, 현 시간부로 인류는 드림클럽의 세계가 도래했다는 것이었다. 인류 역사의 또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이었다.






어느 연구실 안



 인간의 뇌가 실험관 보존되어 있다. 뇌의 호흡과 통신 그리고 영양을 공급하던 링거들은 연구원들에 의해 하나씩 해체되고 있었다. 링거가 모두 해체되자 뇌를 담은 실험관 병 안의 식염수도 무서운 속도로 빠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덩그러니 쪼그라든 뇌만 남게 되었다. 실험관이 열리고 연구원들은 조심스럽게 뇌를 들어 헝겊으로 감쌌다. 뇌에 남은 수분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한 연구원이 뇌사 날짜, 상세 시간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리고 주인의 이름을 적었다.


“Teddy”
















드림 클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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