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작가 Jun 22. 2024

14살, 첫사랑

내 치열이 어때서

*이 내용은 글쓴이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14살, 중학교 1학년.


떨리는 마음으로 새 교복을 입고 들어간 교실,

갓 사춘기에 접어들어 비슷비슷한 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남학생이 있었다.


새하얀 얼굴에 반짝이는 두 눈,

앳된 티가 나는 얼굴은

회색 교복 카디건 위에서 더욱 빛이 났다.

당시 유행하던 인소의 남자 주인공 같달까.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유심히 관찰했다.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그 아이는,

남들과는 결이 달랐다.


좀 생긴 중학생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소위 말하는 '노는 무리'와 어울리며

자기 잘난 맛에 살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잘생긴 이 아이는

모범생들과 어울리며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반에서 심하게 왕따를 당하던 아이와도 어울렸다.

체구는 작았지만 말수가 적어 시크하고 무게 있었다.

까불거리는 다른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았다.


내 친구가 3학년 선배에게 빠져있을 때,

나는 이 아이에게 빠져들었고,

나의 첫사랑이었다.

콧뿔소 무리 사이에서 유니콘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만 잘생겨보일리가 없는 법.

도현이는 인기가 정말 많았다.

소심했던 내가 멀리서 지켜만 보았다면,

예쁘고 잘 나가던 여학생들은

도현이의 카디건을 빌려가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런 친구들에게

차갑게 굴며 철벽을 쳤다.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아

이성에 눈을 뜨기 전이었던 그 아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노는 여자애들이 무서웠다고 한다.


그의 철벽은 한편으론 매력적이었으면서도,

한편으론

'쟤는 자기가 잘 생겼다고

저렇게 예쁜 애들이 저 좋다고 해도

저렇게 차갑게 구는구나.

얼마나 예뻐야 성에 차는 걸까?'

라고 생각하게 했고,


그렇다면 평범하기 그지없고

얼굴에 여드름이 난 나에게는

기회조차 없겠구나, 라며 혼자 포기했다.

이 일을 계기로 좋아하던 마음은 미움이 되었다.

이뤄질 가능성 없는 짝사랑을 멈추기 위해

미워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분반 시간에 우연히 그 아이와 짝꿍이 되었다.

도현이는 내 머리 스타일이 신기하다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우와, 서아 넌 어떻게 머리가 이렇게 일자로 생머리야?"

"매직했어."

"어제 병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나 교정 안 해도 될 것 같데."

라는 그의 말에, 나는 활짝 웃으며 내 고른 치열을 자랑하고서는,

회심의 복수를 날렸다.


"그래? 내가 보기에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나의 이 유치한 복수는 도현이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는 아직도 치열에 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잘생겼다는 얘기만 듣던 도현이가

돌직구 펀치를 맞아서인지,

그의 기억 속에 내가 굉장히 강렬하게 자리했다고 한다.


'날 싫어하던 여자애'로.

그리고 13년이 지난 뒤인 아직까지도,

도현이는 중학교 1학년 때 내가 자신을 싫어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로부터 5년 뒤 나는 그의 첫사랑이 되었고,

그 후로도 5년간을 친구로 지내며

서로의 주위를 행성처럼 돌던 우리는

마침내 연인이 되었다.

처음 만난 중학교 1학년으로부터 꼭 10년 뒤.

그 10년간의 엇갈림과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 되는

그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현재 사귄 지 3년이 조금 넘은 우리는 종종 이야기한다.

중학교 1학년의 우리에게

“너네 10년 뒤에 사귈 거야

13년 뒤에는 결혼을 준비하고.“

라고 이야기해 준다면

과연 믿을까?

라고.


그 당시의 나는 대답할 것이다.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내 인생의 한 장르는

첫사랑을 이루는

로맨스일 것이 분명하다고.


<다음 이야기: 수학여행 대소동>


라이킷과 댓글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S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