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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Oct 12. 2023

얼마나 오래 살려고...

오해를 좀 풀어보자

커피는 먹어요?

어느날 아침 회사사람이 내 머그잔을 보며 그건 무슨 약초내린 물이냐고 물었다. 상식적으로 노동자가 마시는 검은색 투명액체가 커피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싶지만 그냥 건조하게 커피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가 '커피도 먹냐'며 신기해하는 반응을 보여 당황스러웠다.   이 질문의 포커스는 컵속의 액체가 아니라 그걸 마시는 '나'였다.  회사에서 돌리는 간식거리 대부분 유제품이나 계란이 들어 있어 거절하는데  그 모습이 채식하는 사람 보다는 몸에 해가 되는것은 입에도 안대는 건강주의자라고 보였나 보다. 그래서 고카페인 음료인 커피도 당연히 안 마실 거라 여긴 것이다.  

 

고백하자면 커피를 끊으려 했던적이 있긴 있다. 하지만 그건 커피가 몸에 나빠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높은 탄소발자국때문도 아니다. 국내산 보리차보다는 탄소배출량이 높지만 아몬드, 호두도 캘리포니아에서 사다먹으면서 커피만 유별나게 못견딜 이유도 없다. 그보다는 커피에 끌려다니는 모습이 싫어서였다.  

커피 속 카페인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해서 집중력을 높이고 경기력(체력)을 상승시키며 기분좋게 만들어 준다.  물론 커피를 그냥 습관처럼 마시고 특별한 효과를 못느끼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건 난 카페인의 '약빨'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축축 처지고 움직여지지 않을때 한모금의 카페인은 하루종일 나눠 쓰라고 할당된 일일에너지를 바로 땡겨온다. 그 덕에 밥안먹고도 5k를 뛰고 출근이 가능하다. 


그냥 계속 마시면 되겠지 싶지만 모두 약은 부작용이 있듯이 카페인이 가불한 하루 에너지를 오전에 다 써버리면 결국 오후가 무기력해지고 밤에 숙면하기도 어려워진다. 마치 커피가  좀비상태인 나를 살린것 같지만 알고보니 나를 좀비로 만든건 어제의 커피이고 오늘의 커피는 내일의 나를 좀비로 만들고 있었다. 


이런 의존성을 깨닫고 나서는 가능하면 안먹고 살고싶어 3번정도 커피중단을 시도했다. 가장 길게는 1년 반정도 커피없는 삶을 살았는데 결국 지금의 나는 그냥 마시고 있다. 무언가에 실패했다는 것은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건강에 이상은 못 느끼겠다. 

 커피를 특수 목적으로 쓴다는 점 말고는 커피가 건강에 좋다 나쁘다 단정하거나 마시라 말라 설득하지않는다. 다만 아직 커피에 빠지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 있다면 커피 맛을 알기전에 어서 도망가라고 알려주고 싶다.


밀가루는 먹어요?

완전채식한다고 밝히면 바로 듣게되는 질문 중 탑 3에 드는것이 '밀가루는 먹느냐'이다. 좀 의외라고 생각했던건 밀은 멍게처럼 식물인지 동물인지 해깔릴는 것도 없는 누가봐도 명백한 식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확실한 식물성이지만 완전채식이 아닌 것도 있긴있다.  예를 들면 흰설탕은 표백하는 공정에서 동물의 뼈(골탄)가 사용되고 와인과 맥주의 일부는 부유물을 제거하는데 생선부레(Isinglass)나 젤라틴(돼지껍지, 뼈)을 사용하기 때문에 완전채식의 조건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밀가루는 밀풀(grass)의 종자를 수확해 빻은 것으로 표백할일도 필터로 거를 일도 없다. 

결국 밀가루에 대한 질문도 커피와 마찬가지로 건강관련 이슈였다. 이것도 저것도 안먹는 식사를 하니 밀가루같이 건강에 해로운(?) 것도 안먹을 거라 예상하는 것이다.  실제 밀가루를 잘 안먹거나 아예 밀 단백질을 안먹는 글루텐프리를 선언한 채식인이 드물지 않다. 식물성인데 채식인도 외면하는 건 슬픈 상황이다.   


밀을 건조해 겉피를 깍아내고 가루화한 밀가루는 대량생산과 저장이 용이해 값이 싸고 요리하기도 편해 가성비 높은 칼로리원이다. 예전 625전쟁 직후엔 국수, 수제비, 우동, 빵으로 배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지만 지금처럼 음식이 남아돌때는 영양과 건강도 중요해져서 식이섬유, 영양소도 없는 전분덩어리인 밀가루는 하급식재료가 되었다.  심지어 공장가공식품, 즉 정크 푸드(빵, 과자, 피자 ....)의 핵심재료라는 범죄자 이미지도 붙었다. 


내가 지난 한달동안 먹은것을 되짚어 보니 진짜 밀가루 음식이 안 떠오르긴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일부러 밀가루를 피한적은 없다.  일반빵은 유제품 혹은 계란이 섞여 있어서 수제비나 칼국수도 국물이 멸치나 고기로 우려서 커트 당한 것이지 밀가루가 있어서는 아니다.  


 나에게 밀은 쌀이나 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아직도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이 일반빵은 안먹지만 쌀빵이나 통밀빵은 먹는다는 사람들인데 쌀빵이기 때문에 크게 다를거라 믿고 있다. 내가 보기에 빵의 부정적이미지 혹은 영향은 밀가루의 '밀'이 아니라 '가루'측면에서 나온다. 어떤 재료이든 가루화하는 것은 고도 정제이고 가공식품화되었을때 소화, 흡수가 빠르다. 또한 우리가 거부하기 힘든 '맛있는 맛'을 내기 쉽다. 아무리 현미가루나 통밀가루가 밀가루보다 섬유질이나 영양분이 더 있다고 해도 그 양은 '미량'이고 그 차이가 완성품(빵)의 특징을 크게 바꾸지 않는다. 일반식빵 3장먹는게 과하면 쌀식빵 3장도 과한것이다. 

소세지를 물에 행궈서 나쁜 성분이 다 빠져나갔다고 안심하는 것이나 통밀빵, 쌀빵이 건강빵이라고 여기는 것 모두 비슷한 정신승리다.

 설탕은 나쁘지만 사탕수수는 죄가 없는것처럼 밀가루 먹을 일은 없어도 밀을 싫어하지 않는다. 


이건 채소인데 왜 안먹어요?

내가 동료들과 샐러드 바에 갔을때 생양파와 갈릭플레이크가 있는 부분을 남겼다. 그걸 보더니 바로 '왜 남기냐'는 지적이 들어왔다. 채식하는 사람이 왜 채소를 남기냐는 책망이 담긴 표정이었다.  '완식'하지 못해 음쓰를 남긴건 아쉽지만 이런 지적은 웬지 억울하다. 채식하는 사람은 모든 채소를 다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고기 먹는 사람도 양고기 혹은 돼지고기 싫다하면 존중해주는 왜 생양파, 마늘 싫어하는 채식인은 편식쟁이가 되는걸까.  심지어 마늘, 양파는 야채(vegetable)라기보다 양념(spice)에 가까운데 말이다.

TMI스럽지만 난 음식에서 생양파, 생부추, 생마늘이 들어 있으면 다 골라내고 익혀져 있으면 좀 먹기는 하지만 많이 먹지는 않는다.  향이 쎈 향신채소들은 내가 소화를 잘 못하고 그래서인지 맛있게 느껴지질 않는다. 집밥에서 이런 취향을 어필하니 모친은 "마늘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 하신다. 마늘없이 요리하는 것을 생각도 안해보신 어른이라 마늘 안먹으면 큰일나는 줄 아신다.   

난 매일 밥상에 오르는 식재료에 약효니 항암성분이니 붙여서 추켜세우는 것이 불편하다. 티비만 틀면 종편에서 '약이되는 밥상'을 주제로 너도나도 약성이 좋은 식재료를 선정한다. 이들이 방송한것을 1~2년치 다 모으면 대부분의 야채, 과일이 다 포함되지 않을까 상상한 적이 있다. 신선한 농산물이 골고루 다양하게 식탁에 오르면 그 자체가 병을 유발하지 않는 밥상인데 왜 매번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호들갑을 떠는지. 

약은 아픈사람을 치료하는 특수목적이 있고 밥은 살아가는 에너지와 재미를 주는 목적이 있다. 상식선에서 신선하게 준비한 밥을 맛있게 먹으면 병(암 포함)은 안 생긴다. 마늘, 양파가 없어도 내 밥에서 발암을 유발한 요인이 없으니 크게 불안하지 않다. 앞으로도 밥은 내가 먹고 기분좋아지는 것들로만 골라먹을 것이다.  



오래살고 싶어하다는건 정말 오해

커피를 약다린 물이라고 오해하던 '그'는 비록 내가 커피는 마시지만 엄청 유별나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는지 "거참 얼마나 오래살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요."라며 독백인지 대화인지 불분명한 대사를 쳤다.


그 울림이 있는 말을 듣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한 사람이 무엇을 먹느냐는건 그 사람의 건강, 사고, 철학 모든 것을 보여준다. 내눈으로 보는 내 식생활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한 양의 식재료를 경험하고 있지만 그의 눈에 비춰진 나는 이것도 저것도 먹지 않는 사람이다.  VR이 개발되어도 그가 굳이 내 24시간을 경험하고 인식을 바꿔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장수에 목을 맨 사람"이라는 오해는 풀고 싶었다.


내 까다로운 식생활(?)의 부작용으로 평균보다는 오래 살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다. '자만'이라기보다 그냥 통계과 근거를 통한 합리적인 추정이다. 하지만 오래살기위해 지금의 식생활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도 친구도 다 죽고나서 나혼자 오래 사는게 재밌을까? 게다가 우리 육신은 유한해서 오래살수록 낡고 헤질 수 밖에 없다. 걸음거리는 느려지고 인지기능은 조금씩 떨어지고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일상이 유지가 되는 날도 결국 도래할 것이다. 즉 장수는 현대인에 내재된 피하지 못하는 리스크이다. 


같이 샐러드바에서 점심을 먹던 또 다른 '그' 가 내 샐러드 볼을 보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난 내가 먹고 싶은 것 맘껏 먹고  딱 5년만 일찍 죽을 생각이야"

그 말에 난 '이 사람도 자기편한대로만 생각하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고령화 시대에 내가 원할때 죽을 수 있는건  축복이다. 지금도 수많은 요양원에서 스스로가 누군지모른채  침대에 손이 묶여 주는 밥을 먹고 기저귀를 차고있는 치매 노인들이  있다. 젊을 때는 마치 내 수명 5년 줄어드는 것은 쾌락의 대가로 버릴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 몸을 축내는 쾌락으로 내가 교환해야 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생각할 수 없는 신체에 갖힌 5년이다. 운이 나쁘면 10년이 되기도 한다. 

결론은 과자를 먹는다고 밀가루를 먹는다고 바로 수명이 짧아진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오래 살려고 고기를 안먹고  가공식품을 안먹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나를 위생적으로 관리하고 날카로운 정신을 유지하고 싶다. 그래서 가공식으로 얻는 쾌락을 과도하게 추구하지 않으려 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가급적 많이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튼 웃자고 하는 농담에  침대에 묶인 치매노인이 있다는 둥 장수가 리스크네 하며 분위기 살벌하게 할 필요가 없다. 얼마나 오래 살려고 라는 그의 독백에는  "한 백살정도 살려구요"라며 가볍게 응수 하며 남은 커피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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