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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May 24. 2024

맘모스의 원죄

착한 맘모스는 없다

 

Disclaimer!
채식이라면 모두 먹을수록 건강해진다고 믿으신다면 이 글이 다소 자극적일 수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불쾌하거나 정신건강에 해로울것 같다면 그냥 지나가시는게 좋겠습니다.

 


 

자연식만 먹을거 같은 이미지가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고상한 이미지 같아서 굳이  부정하지 않았더니 나도 모르게 가공식을 몰래 먹고 있었. 하지만 디저트 사랑(중독)을 커밍아웃 해버리고 나니 편해졌다. 빵집 탐색하는게 취미라는 걸 감출 필요가 없어져 말이다.


 주로 두꺼운 크림과 크럼블이 얽혀 한껏 달달한 빵이 내 취향이다. 여기에는 타르트나 도너츠, 앙금빵, 크림빵류가 있는데  그 중 왕중왕은 아무래도 맘모스빵이다.    


이제는 편의점에서도 장인급 크림빵나오는 편한 세상이 되었다지만 나에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식물성 재료만으 극락가는 맛빵과 과자를 만드는 건 내가 봐도 참 어려운 미션이다.  당연히 집 근처에 그런 빵집은 없고 아는 곳들은 대부분 왕복두시간 거리에다 메뉴가 다양하지 않아  맨날 '내가 먹을 빵만 없지' 하며 불평했다.

그런데  몸자랑, 돈자랑의 배틀 그라운드라고 여겼던 인스타가 온갖 수제 베이커리의 맛자랑 공간이란 걸 뒤늦게 알게됬다. 인기 채식빵집들이 주로 인스타를 기반으로 최신 메뉴를 공개하고 택배주문을 받고 있었다. 광활한 채식 디저트빵 마켓이 눈 앞에 펼쳐졌고 그 속엔 디저트빵의 대마왕격인  맘모스 빵도  있었다.

알고보니 채식 디저트빵집은 셀수 없이 많았다는...

채식 맘모스 빵 맛집이라니. 너무 흥분해서 오프라인 판매공지가 나자 직접매장을 방문해 사왔다. 베이커리 이름처럼 맘모스에 홀린 채식인에게 천사가 미소짓는 듯 했다.

 

채식 맘모스라니...

하지만 오늘은 이 가게의 빵맛을 리뷰 하려고 온건 아니다. 그보다는 비건빵을 바라보는 일반적 시선과 그에 대한 내 느낌에 관해서다. 채식과 디저트 그리고 건강식품, 이 세가지가 엮이면 재미난 풍경이 펼쳐진다.

 

시작을 맘모스 빵으로 했으니 우선 맘모스빵의 정체와 채식 맘모스에 대해 얘기해 보자

   

맘모스빵이란 무엇인가

아무리 찾아봐도 맘모스라는 이름의 빵을 즐기는 나라는 없는 걸로 보아 맘모스 빵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빵인거 같다.

맘모스라하면 선사 시대를 거쳐 역사 시대 초기까지 살았던 코끼리의 일종으로 영어로는 매머드(Mammoth)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식 발음, 만모스(マンモス)에 먼저 노출되어 맘모스가 더 친숙하다.

멸종한 맘모스

맘모스의 정확한 크기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지금의 코키리보다는 훨씬 클거라고 추정한다. 그래서 뭔가 거대한 것들은 매머드급이라 나보다.


그러니 맘모스라는 이름의 빵은 일단 거대하다.  그렇다고 그냥 크기만 한것은 아니다. 팥이나 완두앙금을 품은 넙적한 소보로빵 두 개를 크림과 잼으로 발라 합체해 버렸다.


맘모스빵의 기본구조

 단품으로도 파는 단팥빵, 완두앙금빵, 소보로빵, 크림빵, 젤리빵이 하나로 합체되었으니 사실 매머드보다 키메라에 가깝다. (Chimera- 염소머리, 사자몸통, 뱀꼬리를 가진 신화속 동물)

요즘엔 맘모스 속에 앙금,  크림, 잼, 그리고 소보로에  다양한 변화를 주어 맛집마다 개성이 드러난다.


맘모스의 탄생배경이 허기를 달래는 목적이었다해도 식사빵이 될순 없다. 분명 한국의 대표 단빵들이 뭉쳐진 맘모스는 한입만 베어물어도 혈당이 용솟음치는 육중한 디저트빵이다.


 맘모스빵이 채식이 되는 비법은 아마도 우유나 버터대신 두유에 식용류나 코코넛오일 등을 사용하는 것 같다. 그리고 베이커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원물재료(고구마, 흑임자, 호박)을 기발하게 믹스매치 한다.  

이번에 먹은 채식 맘모스빵 역시 내 기억 속의 맘모스빵처럼  달달 고소하며 크리미한  맛으로 중추신경을 현란하게 자극하였다. (너무 맛있다는 )


장난삼아 챗GPT에게 맘모스빵을 부탁하니 이런 이미지를 던진다.

챗GPT가 생각하는 맘모스

미국태생인 챗GPT가 그린 맘모스빵은 어딘가 많이 어설프지만 팥앙금빵 두개를 합쳐 크림을 두른 핵심은  살렸다.



맛있으면서도 다이어트에 도움되는 비건디저트?

 최상의 비건 맘모스빵을 찾아 이리저리 검색하면서 정말 다양한 채식 디저트 베이커리 사이트를 들락거렸고 빵메뉴와 후기를  정독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명하다는 채식 베이커리샵에 달리는 칭찬들에 공통적 특징들이 보였다.

종합하면 다른 비건빵은 맛이 없는데 다이어트를 위해서 먹어 준다는 말인듯도 하고...


 대부분 맛있다는 말 뒤에 건강한 빵 혹은 착한 쿠키 뭐 이런 평가가 빠지지 않고 달려있다.  어떻게 채식 디저트는 다른 일반 빵, 도넛 쿠키들이  듣지 못하는 건강 칭찬을 넘치게 받을까.  

 

 요즘 유행하는 비정제 재료인 통밀가루, 코코넛 설탕, 원당 혹은 유기농재료들을 써서 그런가?  


밀알은 영양성분과 섬유질이 있는 겨, 씨눈인 배아, 그리고 전분인 배유로 구성되어 있다. 통밀가루에는 밀겨와 배아가 남아있지만 이를 더 정제한 흰밀가루는 겨와 씨눈이 다 벗겨지고 배유만 남는다.  

그래서 백밀가루에 비해 통밀가루는 좀 거칠고 맛이 떨어지지만 밀겨와 씨눈의 좋은 성분을 먹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기대감이 너무 크면 성분의 함량을 보고 실망할 수 있다.  


통밀과 밀가루 각각 100그람을 비교할때 단백질과 섬유질의 구성비 차이는 1~3% 내외이고 아연, 마그네슘의 미네랄 함유량도 미미하다.  통밀 100%인 캄파뉴빵이라도 미네랄이나 섬유질을 보충하려고 먹지는 않는데 단지 크림을 감싸는 빵피에 통밀가루가 좀 섞어서 건강해진다는 건 과하다.


말나온 김에 비건 빵의 건강 키워드 중 몇 개를 좀 짚어보자.

비건 디저트가 자랑하는 건강의 이유

#쌀가루: 과연 쌀가루가 밀가루 보다 '더'건강한가? 글루텐은 일부 민감한 사람빼고는 건강에 이상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 살찐다고 쌀밥도 안먹는 현대인들이 정제한 백미를 더 가공한 쌀가루에 왜 이리 열광하는가.

#현미유:  일반 식용유는 건강을 위한다면 피해야하는 대표적인 가공식재료(SOS)다. 압착유(올리브유, 참기름, 코코넛오일)가 그나마 낫다고 해도 적당히 먹어야한다. 디저트빵의 버터함량만큼 오일이 들어갔다면 절대 다이어트에 도움 안될거다.

#비정제사탕수수: 원당이 비정제라고 가공을 안한게 아니다. 원당도  사탕수수 즙을 짜고 걸러 수분을 날리는데 많은 가공을  거친다.  2%미만의 미네랄이 효과가 있다한들 97% 설탕성분의 효과가 더 크고 빠를거다.  

#지구건강 : 건강 요소에서 동의하는 것은 오로지 지구건강 뿐이다. 공장식 축산을 하지 않거나 공정무역을 거친 재료를 적정가격에 쓸때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지구는 건강해 질 것이다. 내 정신은 건강해지겠지만 몸 건강은 글쎄요.  


맘모스빵의 죄는 무엇인가

세계보건기구 (WHO)는 건강은 "질병이나 불펼한 것이 없으며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특정 음식이 '건강하다'고 하려면 혈압, 당뇨같은 병을 유발하지 않고 적어도 먹고 싶은 만큼 먹었을때 체중이 크게 증가하지 않아야한다.  그래서 주로 걱정없이 먹어도 되는것을 건강한 음식이라한다.  


디저트를 만드는 주재료는 가공된 가루(밀가루나 흰설탕)는 전분 혹은 당분일 뿐이라 만성병을 유발하는 유해성분을 꼽을 수 없다. 감기를 일으키는 감기바이러스 같은 물질이 아니라는 .    

도너츠나 크림빵을 건강한 음식이라 하지 않는 것은 정제가공 재료가 내는 치명적인 맛 때문에 적당히 먹을 수 없어서다. 한마디로  너무 맛있다는 것이 해로움의 시작이다.   

디저트의 죄는 너무 맛있다는 것


 건강한 재료라 알려진 통밀, 쌀가루, 원당도  밀가루나 설탕과 마찬가지로 가공식재료이며  '분식'(粉食)을 만들때 쓴.(粉, 가루 분) 아무리 미량의 유익성분이 있다해도 디저트 과식에 어떤 '해독작용'을 해줄 순 없다. 두개의 가공식 중 뭐가 더 건강한가를 따질때는 재료의 미미한 차이보다 과식을 유발하는 맛이 있냐 없냐가 더 중요하다. 즉 비슷한 칼로리의 일반 디저트보다 비건 디저트가 건강하려면  한입먹고 포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좀 별로?)이어야 다.


그런데  통밀, 쌀가루, 코코넛 설탕을 썼다고 맛이 없나. 안타깝지만 유명 채식빵집은 동물성재료를 안쓰고도 좀더 거친 재료를 쓰고도 부드럽고 고상한 맛의  채식 버전 디저트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후기의 맛있다는 찬양이 넘치는 건 분명 나만 그렇게 느끼는게 아니라는걸 알 수 있다.


물론 비건 빵이 입에 안맞는 사람도 있다. 즐겨보는 빵리뷰 채널 빵빵뽀, 뽀니님이 가끔 비건 브레드를  다룬다. 비건 디저트빵도 만족스러우면 긍정 리액션을 해주는데  한번은 "진짜 건강식을 먹는 느낌"이라고 평했다.    

 

비건빵=크린=건강?

순간 나는 '아.. 뽀니님 입맛에 저빵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왜냐면 나는 맛이 없을때 애둘러서 건강식같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모든 음식은 호불호가 갈린다. 비건빵은 너무 뻑뻑하고 빨리 배부르다는 후기가 많다. 아무래도 재료특성상 가벼운 식감내기가  어려워 그런거 같다. 오히려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은 비건 디저트로 절대로 과식할리 없으니 다이어트 식품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다이어트 원칙은 가공이 적은 영양가가 풍부한 자연식 위주의 음식을 위주로 하고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주기적으로 병행하는 것다. 왜 하필 가공도가 높은 '분식' 디저트를 다이어트 목적으로 먹어 어렵게 가려하나.  

만약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고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상으로 디저트를 먹을 수는 있다. 그럴땐 먹고 싶었던 맛을 먹어야 욕구가 해소된다. 그런 소중한 치트데이에 입에 맛지 않는걸 참고 먹다니... 입에 안 맞는데 다이어트에도 별로 도움 안된다면 많이 억울할거 같다.


맘모스빵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그냥 디저트

여기까지 읽으면 마치 채식맘모스나 채식베이커리 전체를  비난하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아니다.  난 일반빵을 안먹으니 채식빵집이 망하면 나도 망한다.  채식빵이 잘되야 나도 맛있게 오래 먹을 수 있다. 


그냥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더 잘되라고 쓴소리 한거다. (오지라퍼) 

요즘 줄서는 디저트 맛집,  도넛과 베이글 성지들 중에 스스로를 건강 디저트라고 포장하는 곳은 못 봤다. 다들 크림을 넘치게 담고 쿠키크럼블까지 후하게 올려  건강이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게  짜릿한 자극을 주려고 안달이다. 어차피 디저트 존재 이유는 맛있게 먹고 기분좋게 기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채식 기반 베이커리들은 맛있게 만들면서 은근히 건강으로 승부보려는 것 같다.

  정제가 덜되고 질좋은 재료를 쓴다는 것은 자랑할만 하다. 하지만 채식디저트도 본질은 디저트이고 디저트는 건강하려고 혹은 뭔가를 되돌리려고 먹는 약이 아니다. 본질을 넘어서 건강식의 이미지를 둘러쓰는 것은 마치 내가 자연식만 하고 가공식을 안하는 척 했던것처럼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적당히 먹는게 제일 어려운 맘모스빵

이 천사가 미소짓는 맘모스빵은 정말 맛있었다. '이건 적당히 즐겨야하는 디저트이다'라는 경계심을 해제시키면 아마도 맘모스 빵 전부 한자리에서 먹어치울지도 모른다. (난 절제가 어려운 사람)

내가 채식맘모스를 먹는 것은 그저 내 삶을 즐기려는 것이지 지구건강을 지키려는 대의가 있거나 일반맘모스보다 내 몸에 '더' 건강하다는걸 입증하려고가 아니다. 

채식 맘모스를 일반 맘모스와 비교해 좋고 나쁨을 따저 뭐 하나.  맘모스는 저당을 쓰든 유기농을 쓰든 동물성재료를 쓰던 간에 에너지 밀도가 높은 가공 디저트인데 말이다. 


내가 채식을 하니 많은 사람이 비건디저트를 맛있게 먹는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살아있는 다른 존재가 불편하지 않으며 행복해지는 순간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그림을 만들려고 없는 효과를 붙여가며 억지로 강매하고 싶지 않다. 

 

나도 건강챙긴다고 평소엔 첨가물이 없고 가공도가 낮은 음식을 깐깐하게 골라 먹는다. 하지만 디저트는 술이나 커피처럼 나를 즐겁게 해주는 기호식품이라 가공식이라도 첨가물이 들어가도 먹는다. 어차피 절제하면서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경계하면서 먹으면서 주변에는 채식이니 걱정할 필요없이 맘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마치 전날 시험공부 열심히 하고 다음날 친구들에게는 공부하나도 안했다고  뻥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디저트는 그저 디저트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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