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에서 거절 쪽지를 받았을 때 나는 웹코어 축음기 위쪽 벽에 못을 박고, 거절 쪽지에 <행복 교환권>이라고 써서 이 못에 찔러 넣었다.
(중략)
그 못은 꽂혀 있는 거절 쪽지들의 무게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못을 더 큰 것으로 바꾸고 글쓰기를 계속했다.
[유혹하는 글쓰기] 47p
[유혹하는 글쓰기]의 저자 스티븐 킹은 원고를 주기적으로 투고하면서 받은 거절 쪽지들을 버리지 않고 못에 꽂았다. 얼마나 많은 거절을 받았는지 못이 감당을 못해 더 큰 못으로 바꾸면서도 킹은 글쓰기를 계속했다.
나는 살면서 이만큼의 거절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거절 쪽지가 얼마나 많았으면 벽에 박힌 못이 감당을 못한 걸까.. 도저히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두려움
나는 거절과 실패가 두렵다. 살면서 많은 실패를 해왔고 그 과정에서 두려움을 학습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내가 어느 순간 무슨 일이든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적어도 몇 년 전까지는 말이다.
과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공포에 휩싸였을 때, 내가 손을 뻗은 것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읽기, 쓰기를 통해 내 삶과 마주하고 싶었다. '잘' 살아내고 싶었다. 여기서 '잘'이라는 뜻이 당시에는 분명하진 않았지만 그저 웃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름도 웃을'은' 지을'찬'으로 개명했다. 내 삶을 직접 설계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조급함
당시에 내가 했던 가장 큰 실수는 조급함이었다. 무엇이든 빠르게 성과를 내고 싶었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기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하지만 성공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다시 말해, 내가 빠르게 하건, 열심히 하건, 심지어 기깔나게 해도,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거나 심지어는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조금 해보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거 한다고 뭐 되겠어?', '해보니까 나랑 안 맞네...', 당시 내가 많이 했던 생각들이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습관인데 포기가 계속 쌓이면 어느샌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급함을 버리기로 했다. 한 달, 6개월, 1년, 심지어 10년을 해도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면 어떠한가,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면 되는 것을! 그날 하루를 내가 후회 없이 살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 '잘' 사는 게 아닐까. 성공과 실패는 사실 삶에서 큰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글쓰기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내 마음에 드는 글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든 일단 써서 올렸다. 몇 달 동안 매일 썼던 적도 있었다. 이 브런치도 그때 시도한 것 중에 하나다. 운이 좋게도 몇몇 글은 다른 곳에 공유되어 많은 조회수를 얻었지만,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글은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훈련이었다. '작은 실패'를 연습하는 훈련.
작은 실패
나의 '작은 실패'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내 블로그는 많이 읽히지 않는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 퇴사를 했고, 퇴사 후 내가 만든 서비스는 사람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만들다가 포기한 프로젝트도 많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실패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작은 실패'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실패해왔지만 그중에는 종종 안타를 치기도 했다. 나는 5개월 만에 개발자가 되었고, 수백 명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기여를 했고, 그것을 계기로 발표를 했고, 나아가 강의도 만들었다. 이것들은 한 줄의 도미노처럼 이어져있는데 왜냐하면 내가 그 과정을,'작은 실패'들을 즐겼기 때문이다.
실패의 힘
내가 개발자로 취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아무도 보지 않던 내 블로그에 글을 매일 올렸기 때문이다. 처음 커뮤니티를 위해 만든 봇은 치명적인 버그가 많았고 멤버들의 문의가 잇따랐다. 나는 그 문의가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론 기뻤다. 왜냐하면 내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 실패가 쌓이면 쌓일수록 내 문제해결 능력도 높아져갔다. 모르는 건 배웠고, 잘못한 건 고쳤다.실패는 이후 내 발표의 소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의를 만들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실패조차 두려워한다. 실패할까 봐 시도하지 않고, 실패할까 봐 말하지 않는다. 확실한 결과가 보장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을 좀처럼 열지 않는다.
사실 나도 두렵다. 그럼에도 실패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지금까지의 경험들이, 내가 써온 글들이, 그 근거가 되어준다. 실패가 쌓일수록 내 믿음은 커진다. 그래서 계속 도전할 수 있다. 아이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듯, 나도 다시 일어나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그렇다. 실패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스티븐 킹이 바꾼 더 크고 단단한 못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