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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운찬 Jan 24. 2020

시스템이 짝을 찾아주는 세상

시스템의 연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 미러]의 '시스템의 연인' 편을 보았다. 시스템의 연인이란 남녀가 짝을 만나는 데 있어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관여해 가장 잘 맞는 짝을 찾아주는 걸 말한다. 이를 위해 시스템은 두 남녀의 모든 것들, 예를들어 만남의 장소, 음식의 메뉴, 이동 수단, 숙박 장소까지 모두 정해준다. 심지어 만나는 기간까지도!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둘 다 시스템을 처음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그 둘은 서로의 만남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시스템에게 묻는다. 그리고 시스템은 그 둘이 12시간짜리 인연임을 알려준다. 12시간이 지나 그들은 결국 헤어지고 다시 다른 인연들과 이어진다. 그런데 정작 시스템이 정해주는 9개월짜리, 1년짜리 인연보다 12시간짜리 인연이 더 마음에 드는 것은 왜일까? 그 둘은 결국 시스템을 거부하기로 한다...


시스템이 짝을 찾아주는 세상, 이는 공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해보았을 상상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어떻게 연애를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연애를 끝내야 할지 직접 선택할 필요가 없다. 시스템이 힘든 선택들을 모두 알아서 처리해준다. 게다가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을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해주니 이 얼마나 편한가?


"시스템이 생기기 전에는 힘들었겠어요"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사람을 사귀어야 하고 짝을 찾아야 하잖아요"
"결정 장애가 왔겠죠. 선택할 게 너무 많아서 결정을 못 하는 거요"
"설계해 주면 훨씬 간단하잖아요"
블랙 미러_시스템의 연인 中


두구두구두구... 두 분의 매칭 점수는요~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 자유를 얻는 방법은 바로 세상을 최적화하면 된다.


최근에 어떤 비즈니스 유튜버가 한 말이다. 세상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최적화를 하면 거기서 생겨나는 편익의 일부가 내게 되돌아 온다라는 의미이다. 크게 공감하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편익을 제공하면서 나 또한 그에 걸맞은 이익을 얻는 것.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최적화'는 '행복'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책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업 혁명, 그리고 과학 혁명을 거쳐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기술과 편의성은 놀랍도록 개선되었지만 실제 우리 사피엔스들의 행복도는 나아지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오히려 더 불행해진 측면도 있다.


시스템을 따르기만 하면 짝을 만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는 마음이 헷갈릴 필요도 없고, 선택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헤어짐의 고통도 느낄 필요가 없다. 관계에 대한 비효율이 철저히 제거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최적화가 실질적인 행복을 가져오진 않는다. 사람 기계부품처럼 모양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와 맞는 부품을 만나 잘 맞물려 돌아가겠지만, 실제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버드 교육대학원 개개인학 연구소를 맡아 이끌고 있는 토드 로즈는 '개개인성'을 언급하며 모든 사람은 들쭉날쭉성의 원칙과 맥락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를 곧 사람과 사람 관계로 적용해보자면 완벽하게 딱 맞는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 된다. 결국 시스템이 짝지어주는 인연은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며, 실질적인 최적화도 이루어주지 못한다. 이런 거짓 최적화에 우리가 현혹되어 모든 권한을 시스템에 내맡긴다면 우리는 그 이전보다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바로 '나'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내 삶에 '나'는 어디에 있지?


우리는 때때로 선택으로부터 도망치 싶을 때가 있다. 또는 선택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상대와 관계를 시작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관계를 끝내는 것은,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선택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의 의지와 권한을 타인에게 넘겨주어선 안된다. '선택의 고통' 또한 결국 내 삶과 행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성장의 필연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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