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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리 Mar 04. 2021

줄서기의 마음

출퇴근은 1시간 반, 경기도민은 줄을 선다.


거주는 경기. 직장은 서울. 출퇴근이 원정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들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은 다양하다. 빨간 버스, 지하철, 기차까지.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는 연구원들이다.


그리고 어떤 교통수단에 몸을 구겨 넣든, 시도를 넘나들어 매일 출근과 퇴근을 하는 자들에게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바로, ‘줄서기’다.

패딩을 여미는 손이 꽝꽝 얼어버리는 겨울에는 줄서기가 특히 힘이 든다. 한숨인지 입김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숨이 마스크 밖으로 삐죽거린다. 6시 반, 하늘이 회색 옷을 입는 시간. 보도블록 아래 갈린 숫자를 확인한다. 줄서기를 하러 가는 사람들의 필수 역량인 ‘숫자 세기’를 해본다. 줄이 길다. 하나, 둘, 셋, 나는 30번째다. 사실 이 시간에는 30번대의 번호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익숙한 얼굴들이 스친다. 매일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는 나의 줄서기 동료들이다. 물론 그들과 나는 말을 나눠본 적도 없지만, 나는 그들의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1550번 사람’이라는 걸. 우리는 같은 버스에 몸을 실은지 어연 4개월이 다 되어간다. 가끔 그가 보이지 않을 때면, 나는 그들의 안부마저 생각한다.


‘앞 차를 탔나? 야근을 하나?’


물론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한다. 줄을 설 때는 나 역시 매우 분주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시간을 들여 생각할 수 없다. 습관적인 숫자세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몇 번의 버스를 보내야만 앉을 수 있는지 계산한다. 아마도 두 대의 버스를 보내게 될 것 같다. 높은 건물 숲 사이를 빠져나가려는 바쁜 사람들이 그나마 한가하게 핸드폰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 줄서기를 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아이템은 핸드폰과 이어폰이다. 번호를 부여받고 줄을 선 다음, 가방을 뒤적거릴 때 이어폰이 없거나 20% 남은 핸드폰 배터리를 볼 때면 울적해지기 마련이다. 이 경우,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버스에 머리를 파묻고 잠에 빠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길을 언제고 붐빈다. 톨게이트에 다가가기 전까지는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하루 중 가장 많은 불빛이 놓인 도로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버스는 찔끔찔끔 바퀴를 굴린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두 대의 버스를 보낸 자들에게 주어지는 전용 차선에 들어서면 해방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늘어진 승용차들 사이로 달려가는 만원 버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추월의 기분이다.


내일의 줄서기는 조금 수월했으면 좋겠다. 매일의 줄서기가 다르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팔짱을 낀 채로 쪽잠에 빠졌다. 핸드폰 배터리도 충분하고, 이어폰도 있지만 그러기로 했다. 긴 하루가 끝을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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