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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Oct 27. 2024

안녕하세요. 사이코패스 겸 정신분열자 이수입니다(10)

보건 선생과 오랜 시간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저는 그녀를 상상했답니다. 남자 혐오가 있지만 활기찬 그녀는 건강미가 넘치는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을 테죠. 헤어스타일은 생머리보다 단발머리가 어울리며, 가끔 반 묶음으로 사과머리를 해 귀여움을 강조할 때도 있을 겁니다. 입술은 두툼한 편이며 오른쪽 눈 밑에는 매력점이 있고, 키는 165cm로 체형은 슬렌더입니다. 아담해 보여 멀리서 보면 귀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가까이에서는 시크하고 도시적인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경계심이 많아 보통 남자들은 그녀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합니다.


이게 제가 상상한 그녀의 외관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그녀처럼 길들여진 동물보다 길들여야 하는 동물을 선호하거든요.


그런데 그녀는 제게 충격적인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새침하고 도도해야 할 그녀가 파괴되어 있었죠. 눈두덩이는 시퍼렇게 멍들었고, 입술은 터져나간 상태였습니다. 코뼈도 골절되었는지 십자 모양으로 붕대를 하고 있었죠. 제가 상상했던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똑똑하고 매력적인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그녀는 남자와 무슨 대화를 했길래 이토록 처참하게 폭행을 당한 걸까요? 저는 이대로 있을 수 없어 그녀를 찾아가기로 했답니다. 그녀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겠지만, 저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하루빨리 재건하고 싶었죠. 겉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택시를 타고 그녀가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때는 저녁 9시. 취침 시간이 1시간 전이었죠. 저는 안내 데스크에서 그녀의 이름을 말하고 안내받은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는 4인 병실에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었죠.


저는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걸어가 허리와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진주희 씨 맞으시죠?”


그녀는 움찔거리며 저를 쳐다보더군요. 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뗐습니다.


“죄송합니다. 놀라실 거 아는데, 염치 불구하고 찾아왔어요. 저는 이수라고 합니다.”


저는 그녀가 한껏 경계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가뜩이나 남자를 혐오하는데, 생판 모르는 남자가 와서 아는 체하니 당연한 반응이었죠. 그래서 저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계속 바닥을 쳐다보는 자세로 있었습니다.


“혹시 판도라의 상자 사이트 운영자 분이세요...?”


그녀가 이윽고 입을 열었습니다.


“맞습니다. 당신이 보내준 메시지와 사진을 보고 찾아오게 됐어요.”
“네? 어떻게요? 제가 어느 병원에 입원했는지 말 안 했잖아요.”
“당신 컴퓨터 IP 주소를 추적해 사는 곳을 알아낸 뒤, 근처 외과 병원은 여기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찾아왔습니다.”
“병실은 어떻게 알아냈는데요?”
“그것도 별로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당신 이메일 주소를 알아낸 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진주희라는 이름을 알아냈어요. 그래서 병원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고 온 거예요.”
“정말 미치셨네요. 제가 지금껏 상담한 사람이 스토커였다니.”


저는 허리를 더욱 숙이며 입을 뗐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보낸 사진을 보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거든요.”
“근데 왜 그런 자세로 말하시는 거예요?”
“파괴된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요. 제 상상 속 세계에서 당신은 제가 아는 여자 중 제일 똑똑하고 매력적인 분이거든요.”
“...이상하신 분이네요.”
“맞습니다. 전 이상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저는 항상 이상한 놈이고, 이상해서 이상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열망이 큰 사람이죠.”

그녀는 한참 동안 제가 해괴하다는 듯이 바라봤습니다. 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자세를 풀지 않았죠.

“이름이... 이수 씨라고 했죠?”


그녀는 한결 경계심을 푼 목소리로 이어 말했습니다.


“저도 이수 씨를 한 번 봤으면 했는데, 이런 모습으로는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아직 저는 주희 씨를 본 게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그녀는 이제 긴장이 풀어졌는지, 제 쪽으로 몸을 돌리곤 입을 열었습니다.

“메시지에 보낸 것처럼, 저 전치 4주 나왔어요. 억울하네요. 10년 전에는 성폭행당하고, 이번에는 폭행당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저한테 털어놓을 수 있나요?”
“네... 그래서 사진도 보내준 건데요...”


그녀가 사건 경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를 성폭행한 것도 모자라 폭행까지 휘두른 범인의 이름은 이준범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성씨인 게 더욱 짜증 나는 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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