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포르투갈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익숙한 일상을 벗어던지고 자신을 찾아 떠난 주인공처럼 나도 떠나고 싶었다. '포르투갈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특별한 여행사를 발견했다.'여기트래블'이라는 여행사였다. 특별하다고 느낀 이유는 여행사의 콘셉트 때문이었다.
여기트래블은 20~35세 연령대의 사람들만 여행을 신청할 수 있다. 2005년부터 박민성 대표가 유럽 미니밴 여행을 시작하면서 여기 트래블이 생겨났다. 여행사 콘셉트처럼 스태프가 20~30대의 젊은 사람들이다. 여기트래블은 유럽 미니밴 여행을 시작으로 인도, 미서부, 스페인 남부 등을 돌았으며 2019년 1월에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으로 여행사로서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여행사가 마음에 든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이 끝나고 나서 같이 여행한 사람들끼리 따로 모임을 만들어 관계를 이어 나간다는 것이었다. 같은 나이 때의 사람들로 조를 편성하여 다니다 보니 여행하면서 친해지고 그 후로도 연락을 이어갔다. 또 다른 이유는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신청한 여행 상품인 '포르투갈 스페인 스페셜'의 상세 일정표를 확인해 보니 가우디 관광이나 알암브라 궁전 관람 등을 제외하고는 조끼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나의 마음에 쏙 드는 여행사를 만났다. '착한여행'이라는 여행사를 통하여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갔다 온 후 같이 간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고 연락을 이어간 적이 있는 나로서는 여행 자체가 기대되었다.
'여행이란 지도상의 수많은 "여기"를 찾아 떠나고 연결하는 일'이라는 말. 내가 이번에 갈 "여기"는 나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로 인해 설레는 감정이 든다.
오늘로부터 3일 전인 21일에 떨리는 마음을 안고 여행사 OT에 참석했다. 지하철을 타고 토즈 신촌 아트레온점에 도착했다. 지도 앱으로는 분명 CGV가 있는 건물에 모임 장소가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헤매고 있는데 나랑 똑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 두 명을 발견했다. 혹시 여기트래블 OT를 온 것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두리번거리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영화관으로 가니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같은 건물이 맞는데 모임 장소는 14층에 있었다. OT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여자들 중에 내가 가장 어린것 같았다. 20~30대가 가장 많아 보였다.
처음으로 혼자 가는 여행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나에게는 단비 같은 여행 정보! 기억에서 사라질세라 얼른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간단한 설명이 끝나고 난 후에는 조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속한 조의 나이 때가 가장 어렸다. 나를 제외한 세 명은 2000년생이었다. 모두 대학생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여자 두 명, 남자 두 명. 총 네 명이었다. 다른 조를 보면 원활하게 말이 서로 오가는데 우리 조는 어색함 그 자체였다. 어색함 속에서 침묵을 자처하는 내가 나서서 분위기를 밝게 바꾸려 노력했다. 다행히 한 방을 쓸 사람끼리 여행 준비물은 정했다. 나는 멀티탭을 가져오고 여자분은 드라이기를 준비하기로 했다. 한 조가 된 사람들이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해서 그런지 모르는 게 많았다. 걱정은 되지 않았다. 여행사에서 가이드북을 워낙 꼼꼼히 작성한 덕에 혼자서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화번호를 공유한 뒤 카톡방을 만들었다. 필요한 물건은 카톡으로 말하기로 했다. 우리 조는 이야기를 금방 끝내고 헤어졌다.
순조롭게 흘러가나 싶었는데 일이 생겼다. 같은 조의 남자 중 한 명이 카톡으로 다른 남자 한 명이 불편하다며 나보고 조를 바꿀 생각이 있냐고 물어왔다. 난감했다. 불편함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다. 자신은 다른 조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카톡을 보낸 이 분이 이기적으로 보였다. 자신도 불편함을 느낀다면 다른 사람도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보내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불편한 이유 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에 더욱 의문이 강해졌다. 어느새 내 마음도 바꾸려는 쪽으로 기울어 나중에 가이드님한테 연락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어제 다시 카톡을 보냈다. 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해서 당사자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조를 바꾸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여행사에서 전화가 왔다. 다른 여자 한 분도 조를 바꾸고 싶다 하여 나에게도 그럴 의향이 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고민을 하다가 조를 옮기지 않으면 둘이서 여행을 할 수도 있다고 하여 9조로 바꾸기로 했다. 그 남자가 불편해서가 아니었다. 낯선 남자와 단 둘이 여행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그리 안전하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처음 하는 여행으로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일이 틀어졌다. 조가 바뀐 일은 오히려 잘 된 것일지도 모른다. 대다수가 여성으로, 총 6명인 조와 더욱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가 많은 만큼 의견 충돌도 잦을 수 있지만 낯선 사람과 2주 동안 여행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했다.
유럽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포르투갈, 스페인.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혼자서 떠나는 여행. 앞으로 펼쳐질 여행이 두려우면서도 여행이 주는 기쁨에 젖어 있는 나. 나는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며 바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