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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푸른 Jan 20. 2020

Episode 02. 낯선 곳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01.08. Wed.)

한국을 떠나 여행하는 것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며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여행사를 통해서 간다고 해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낯선 나라로 떠나니 앞으로 여행할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가 혼자 하는 여행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익숙했던 한국을 떠나 어딘지 모를 하늘을 날고 있다. 불이 꺼진 기내에서는 모두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 나도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책을 꺼내 들었다. 책에 빠져들어 한참 열심히 읽고 있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내 왼쪽 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이 내게 말을 건넸다. 내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여자애가 혼자 비행기에 타고 낯선 나라로 날아가고 있으니 그럴만했다. 나이가 몇 살이냐는 것에서 시작하여 여행을 하게 된 계기, 내가 홈스쿨링을 했던 경험까지 처음 보는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행기에서 만난 사람이 내가 갖고 있던 불안감을 사그라들게 해 주었다. 불안해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직접 부딪혀보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선 나라로 떠나는 도중에 만난 낯선 사람은 나의 못난 모습을 보게 했다. 겉모습만 보고 온갖 편견과 감정으로 혼탁해진 나의 기준으로 한 사람을 결정했다. 내가 이렇게나 성급한 사람이었다니.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다고 해서 그의 성격과 내면까지 그러하리라고 판단을 내렸다. 왼편에 앉아 있는 중년 여성에 대해 그러한 판단을 내렸다.


내가 이야기를 나눈 여성은 따뜻하며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는 분이었다. 나의 판단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또한 나와 공통점도 있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작품을 나는 책으로, 이 분은 영화로 접했던 것이다. 낯선 사람을 친근하게 만드는 작품의 힘에 놀랐다.


여행길이 두렵지만은 않았다. 기대되기 시작했다. 처음 본 사람과의 대화는 <여행의 이유>라는 작품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했다.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바로 옆에 그러한 사람이 앉아 있던 것이다.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며 경험한다는 작가의 말.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몫을 내어주고 그것이 땅을 기름지게 하여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을 만들어서 온갖 동식물이 건강히 자라 모두에게 기쁨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자연의 순환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명력이 넘치는 세상의 모습이란 바로 자연이 순환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순수한 마음으로 건네고 주고받는 환대와 신뢰로 가득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여행하며 나는 어떤 환대와 신뢰를 만나고, 내가 어떻게 기꺼이 그것들을 줄 수 있을까. 앞으로의 여행길이 점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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