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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한커피 Dec 02. 2019

콧줄과 홍시

어머님 친구분이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님의 안부를 묻는다

 “띵동”

 저녁을 하려고 쌀을 씻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옆 동에 사는 어머님의 친구 아랑이 할머님이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님의 상태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오래 살았다. 결혼을 하고 바로 이사 왔고, 잠깐 4년을 다른 곳에 살다가 다시 이곳으로 왔으니 17년이 넘었다. 주변 환경이 열악해 개발이 더디되는 곳이라 도시의 삭막함 보다는 시골의 정이 남아있던 곳이었다. 아파트에는 또래의 노인들도 많았다. 어머님은 평생 살던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올라온 뒤 느끼는 향수를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내고 있었다.


 특히 아랑이 할머니, 선우 할머니와 잘 지내셨다. 아침을 드시고 나면 날씨 좋은 날은 손주를 데리고 나와 놀이터에서 한참을 얘기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세분은 목욕탕을 가는 걸 즐겨해서 자주 다녔다. 한번은 근처에 사우나가 생겼다고 다녀오더니 ‘정말 좋았다’고 말해 서로의 자식들이 번갈아 가며 모시고 간적이 있었다. 동네 미용실중 가장 싼 곳을 찾아 함께 가서 뽀글뽀글 파마를 하고 온 날은 누가 누군지 뒷모습을 보고 헷갈린 적도 있었다. 작은 키에 적당히 허리가 굽고, 꽃무늬를 좋아하는 취향까지 비슷한 탓이라고 웃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평소에 잘 먹던 게 생각이 나서 샀어. 건이 할머니한테 갖다 드려”

 아랑이 할머니가 내민 봉지에는 홍시가 들어있었다. 아랑이 할머니는 옥수수, 선우 할머니는 약과, 우리 어머님은 홍시를 좋아했다. 세분이서 우리집에 모여 고스톱을 치거나 드라마를 볼 때 간식으로 이것들을 챙겨드리곤 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가끔 ‘옥수수 할머니’ ‘약과 할머니’로 이름을 대신해 부를 정도였다. 슈퍼에 갔다가 홍시를 보고 우리 어머님 생각에 사왔다고 했다. 오랜 친구가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얼마나 궁금하셨을까.


 고질적인 관절염과 골다공증으로 거동이 힘들어진 어머니에게 치매도 찾아와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만난 아랑이 할머니께 소식을 전했다. ‘결국은 그렇게 됐구나, 어쩔 수 없지...’하며 많이 서운하고 쓸쓸한 표정이었다. 2년 전 선우 할머니가 아들 직장을 따라 대구로 내려갔는데 바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라 더 그랬을 것이다.  


 “우리 어머님은 잘 지내고 계세요. 홍시 드리면 좋아할 거에요”

 아랑이 할머니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어머님이 얼마 전 콧줄을 끼셔서 입으로는 음식을 드시지 못한다. 치매가 더욱 심해져 씹고 삼키는 것을 잘 못하고, 살이 빠져 영양식을 콧줄로 넣어 주기로 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오랜 친구가 요양병원에서 기저귀 차고 하루 종일 누워있고, 입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콧줄 끼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팔순이 넘은 지 몇 년이지만 아직 정정한 아랑이 할머니에게 아픈 소식보다는 “우리 어머니는 잘 지내니 아랑이 할머니도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라고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곳에서나마 죽도 잘 먹고, 간식까지 챙길 정도로 정신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서 인지 돌아가는 아랑이 할머니의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 보였다.


 ‘홍시’처럼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보면 안타깝다. 감, 특히 홍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두가 좋아하는 과일이지만 어머니의 감 사랑을 유별났다. 가을이 되면 하루가 멀다하고 슈퍼에서 홍시를 사왔고, 늦가을에 장만해둔 대봉을 정성들여 익혀 홍시를 만들어 겨울 내내 먹었다. 여름에는 냉동실에 아이스홍시를 넣어두고 한 개씩 꺼내어 먹던 기억도 난다. 어머니와 의견충돌이 있어 냉랭할 때 가끔 부드럽고 달콤한 홍시를 사다가 방에 넣어드리면 금방 풀어지기도 했다.


 이번 주말, 어머님에게 홍시를 가져다 드리지는 못하지만 아랑이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줘야 겠다. 오랜 친구가 걱정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잊혀 졌던 추억이 잠시나마 기억이 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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