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는 따뜻함
'일하러 가기 싫다.'
일요일 오후 4시쯤 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각이다. 차가운 공기 속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하고도 좀 더 이른 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너무하다.
그래서 드는 생각,
내 직업이 나랑 안 맞나?
사실 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를 거쳐 알바 때까지, 하는 건 별로 없었지만 나름 즐겁게 다녔기 때문에 '가기 싫다'라는 느낌이 낯설다. 직장에도 권태기가 온다고 한다. 1, 3, 5, 7년 홀수 연차가 되면 다들 그렇단다. 차라리 딱 3년 차여서 그런 거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직장에 만족하면서 다니는지 궁금하다. 신입사원들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약 54%가 만족하면서 다닌다는 결과가 나왔다. 진짜일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난 3년 동안 일하면서 일 자체에서 행복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 얼마 전, 한 배우의 인터뷰를 읽다가 그분의 직업만족도가 100%란 사실을 알 수 있었고, 한 친구에게선 월급만 좀 올려주면 이 정도로 만족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내가 만족할지 모르는 사람인지, 이 직장이 나랑 맞지 않은 건지, 둘 다인지 매번 딜레마다.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곳은 딱 2군데이다. 내 일기장과 내 가족. 일기장은 나만 보니 (이런 곳에 글을 써도 보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므로) 걱정할 게 없다. 그렇지만 혼자 고민하기엔 답답해서 자꾸만 가족들에게 내 고민을 던져 곤란하게 만든다.
맛있는 거 잘 먹고 있다가 '그런데 말이야, 나 그만둘까?', 실컷 TV 잘 보고 있다가 '엄마, 아빠는 직업 만족도가 얼마였어? 난 너무 낮은 거 같은데...'라든가. 내 주변에 이런 애가 있으면 피곤해서 잘 안 볼 것 같은데 엄마, 아빠 앞에선 진상이 된다. 퇴사, 이직 얘기도 한두 번이지, 세 번째부터 엄마는 지금 나와서 뭐 해 먹고살려고 하냐고, 너랑은 그 직업이 딱이라고.
지친 엄마는 네가 직장을 나와도 나이 많은 내가 도와줄 수 없다고 단호박 시전을 했다. 마지막 말은 꿈을 찾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현실적인 충격이 좀 됐다. 도움 받을 생각은 절대 없었는데, 내가 무너지면 가족들의 부담거리와 걱정거리가 될 것 같아서.
엄마, 아빠에게 내 미래를 물어보는걸 그만할 때가 됐다. 두 분 입장에서는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앞으로는 혼자 고민할 거라는 다짐 앞에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갔다. 우리 아빠는 친척들 사이에서 유명한 딸바보로 나를 오냐오냐 해주는 편이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겐 더 잘 보이고 싶다고 나도 아빠 앞에선 대책 없이 일하러 가기 싫은 떼쟁이가 되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을 할 순 없었다. 내가 힘들긴 했나 보다.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고,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직장을 나와도 괜찮겠냐는 말에 아빠는 흔쾌히 '바로 나와. 뭘 해도 먹고는 산다.' 했다. 아빠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밖으로 질러주는 경향이 있다. 엎드려서 절 받기라고 해도 좋았다. 그런데, 퇴직, 이직을 입에 달고 사는 나는 사실 자신이 없다. 엄마, 아빠의 조언을 바랐던 건 나를 붙잡아 둘 핑계로 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못 믿겠다. 직장을 나가서 100만 원은 벌 수 있을지,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지치지 않을지 두렵다. 나도 나를 못 믿는데
'아빠는 나를 믿어?'
'믿지! 너는 뭘 해도 잘할 거야.'
아빠는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고 믿나 보다. 사실은 일하고 집에 와서 넷플릭스 보다가 휴대폰 만지다가 늦게 자는 게 일상인데. 꿈은 크지만 게으른, 가장 불행한 유형인 나도 우리 아빠한테만은 뭘 해도 잘할 것 같은 딸이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나 다음으로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나를 믿는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이때 알았다. 우리 아빠가 나를 믿는다는데 내가 못 해낼 게 뭐람!
그래도 아직 내가 나를 못 믿어서 바로 나가자! 는 못하겠다. 대신 내가 진짜 뭘 하고 싶은지 꼬박 몇 달을 고민한 결과 직장 3년 차에 꿈이 생겼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보답할 수 있게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도, 넌 잘하고 있다는, 뭘 해도 잘할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