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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래 Jan 09. 2024

끼워주는 사람

마음에 남는 따뜻함 2

무리에서 환영받는 방법 첫 번째, 적어도 보통 또는 보통 이상의 능력치를 가진다. 두 번째, ESFJ에 버금가는 사교성을 가진다. 세 번째,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엮인 주변인이 있다.


아쉽게도 내가 끼고 싶었던 배드민턴 사회에서 내가 환영받을 순 없을 것 같았다. 3가지 다 탈락이었기 때문에. 


헬조선이라 불리는 곳에서 2n년간 mbti 대문자 I로 살아오면서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터득했었다. 남은 것은 보통 또는 보통 이상의 능력치를 가지는 것.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그것만이 나의 살 길임을 알고 노력했다. 다행히 정적인 활동에는 꽤나 소질이 있었던 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노력해도 안 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체육(을 비롯한 몸 쓰는 모든 것들)! 


중고등학교 때는 수행평가 재시(험)의 연속, 친구들이 담 넘어갈 때도 혼자 안절부절못하다 결국 선생님께 걸리고, 가족들과 볼링, 배드민턴으로 내기할 때도 60대 부모님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만년 꼴등이다.


진짜 문제는 내가 체육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거다. 오히려 좋아한다. 지독한 짝사랑이다.


이 짝사랑을 쌍방향으로 만들어보고자 2024 목표 중 하나로 '배드민턴 배워서 대회 참여해 보기'를 잡았다. 그래도 배드민턴은 가족들, 친구들과 종종 쳐봤으니 심리적 장벽이 좀 낮았다.


지역 스포츠 센터에 등록을 하고 첫 수업을 들으러 갔다. 왜 다들 친해 보이고, 다들 잘하는지! 도착한 지 5분 만에 기가 푹 죽었다. 먼저 말 걸기도 쉽지 않았지만 용기 내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강습받고 배드민턴 치고 있으면 되나요?"

"네 맞아요! 처음 오셨어요?"

다행히 다들 친절했다.  

하지만 다들 짝이 있는 모양이다. 2:2로 맞춰서 게임하러 갈 때 머쓱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라도 그랬을 것이기 때문에 괜찮았다. 하필 홀수라 쭉 혼자 있었지만, 정말 괜찮았다! 아니다, 사실 머쓱 민망 집에 가고 싶다 콜라보였다. 이럴 때 또 소심한 나와 만나게 된다. 오랜만이네.. 그만 만났으면 좋겠다.


그때, 혼자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한 분이 다가와주셨다. 내가 가진 채는 쓰면 위험할 것 같다고 본인의 채를 빌려주시고, 같이 치자고도 해주셨다. 강습이 끝나고 다시 혼자가 된 나에게 어디까지 배웠냐며, 힘을 많이 주고 쳐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마지막 갈 때는 혼자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먼저 같이 치길 부탁해 보라는 조언도 해주셨다. 


신년 목표를 향해 첫발을 뗐는데 바로 거둘 뻔했다. 난 아직 덜 성장했나, 새로운 장르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무린가 땅굴로 들어가려는 찰나 손을 뻗어 밝은 현실로 이끌어주셔서 참 감사했다. 

무리에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을 몇 번 겪으면 아예 회피해 버리고 말았다. 앞으로는 안 그러고 싶었는데 그분 덕분에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의 이 손길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큰 용기가 되는지 아마 그분은 잘 모르시겠지.


"선생님 덕분에 잘 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문장 한마디에 담지 못할 감사한 마음이었다. 


사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도 큰 용기이다. 나도 겪어봤으니까. 나의 호의가 부담이 될까 신경 쓰이고 어느 정도 선까지 도와줘야 하나 고민될 때도 있으니까. 


선의로 베푼 일이라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좀 덜 생각해야겠다. 내가 겪은 따뜻함이 새로운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따뜻함으로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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