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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문 Jul 24. 2019

고마운 아이들

  태호는 누나가 셋인데 막내 누나와 나이 차이가 6,7살 정도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들이 태호의 아버지를 보면 대부분 할아버지시냐고 이야기할 정도로 늦둥이다. 소를 키웠던 집안은 형편이 좋지 않았다. 

  태호는 그림을 무척 잘 그렸다. 한 번도 누구에게 제대로 배운 적 없이 다섯 살 때부터 혼자 그렸다고 한다. 미술 선생님이 태호의 그림을 보고서 어떤 아이냐고 담임교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태호는 그림을 배우고 싶었지만 태호 부모님은 태호에게 무슨 그림이냐며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태호는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글쓰기 실력이 많이 늘었다. 약간은 더듬거리는 말투로 재미있는 말을 자주 했다. 힘이 좋고 운동을 좋아해서 나와 종종 공을 차고 농구공을 던졌다. 태호는 나에게 ‘축구는 초등학생 수준, 농구는 중학생 수준’이라며 놀렸다. 

  감정 조절을 잘하지 못해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 혼이 나기도 했던 아이. 그런 태호가 학교를 졸업한 그해 11월 어느 날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교실에 가니까 태호는 거대한 곰처럼 커진 모습으로 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했더니 태호는 약간 툴툴거리면서 ‘아이 참 왜 이렇게 늦게 와요’라고 말하며 빼빼로를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갔다.  나를 한 시간 정도 기다렸나 보다.

  서현이는 교과 학습, 운동, 피아노, 글쓰기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무엇이든지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이해가 빠르며 응용력과 집중력이 훌륭했다. 웃는 모습이 무척이 밝고 환했으며 친절한 성격이어서 친구들과 후배들이 좋아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부모의 영향을 받아 역사와 사회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고 즐겨 이야기했다. 

  서현이는 중학교에 가서도 내게 종종 연락했다. 잘 지내시냐고 안부를 물어주었고, 아빠와 다투고 밖으로 나왔다며 늦은 시간에 전화한 적도 있었다. 나와 공부했던 마인드맵 책을 물어보았고 교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진지하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서현이는 중학교 2학년 때 나를 찾아와서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시험 성적은 괜찮지만 학교에서 하루 종일 칠판을 바라보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거칠고 무례하며 성적인 발언을 일삼는 남학생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 현재 담임선생님은 좋지만 어렵고 싫은 선생님도 있다…….’ 고민이 많아 보이기에 ‘고등학교는 대안학교도 있으니 한 번 생각해 봐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이후 서현이는 대안학교에 관한 책을 찾아보고, 그곳에서 진행하는 캠프에도 참여했다. 얼마 전에 나에게 전화해서 밝은 목소리로 ‘대안학교를 가기로 거의 결정했다.’라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거칠고 투박한 태호도, 영리하고 맑은 서현이도 졸업하고 찾아 주면 반갑고 고맙다. 고학년을 주로 맡다 보면 이처럼 청소년으로 훌쩍 자라난 제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진다. 이오덕 선생님의 책 제목인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라는 문장도 떠오른다. 훌쩍 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과거의 학생과 교사 사이를 지나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처럼 느껴진다. 초등학교에서 고학년을 만나고 싶은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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