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성 없는 사람들 걸러내기
'한 달에 한 번 가족을 위한 요리하기'
요리를 즐겨하지 않는 편이지만, 늘 엄마가 해주는 밥만 먹다가 내가 가족들을 위해서 요리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쯤은 요리라는 걸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올해 초에 세운 계획이다. 한 달에 한 번이라는 부담 없는 일정에 현재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지켜나가고 있다. 만들고 싶은 메뉴가 떠오르면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보는데 그때마다 연관검색어로 따라 나오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백종원'이다. 부대찌개, 진미채볶음, 골뱅이무침 등 키보드를 입력할 때마다 자동 검색되는 그 이름을 보면서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는 종류와 상관없이 모든 요리를 섭렵한 것 같은 그 사람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백종원 레시피'를 위주로 찾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따라하면 못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갈 것 같은 느낌. '믿고 본다'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건가 싶다. 나와 같이 그의 요리 방법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지 백종원 레시피를 타이틀로 건 블로그 글들이 엄청나게 많다. 우리가 백종원의 레시피를 신뢰하는 이유는 뭘까? 방송에서 보여지는 털털하고 유쾌한 이미지, 그의 이름을 내 건 수많은 프랜차이즈 식당, 따라서 만들어봤더니 맛있었던 경험까지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의 요리 방법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은 같다.(설탕은 조금만 넣으면 좋으련만)
인터넷 기사나 댓글들을 볼 때면 우리가 서로를(또는 한 대상을) 얼마나 불신하고 있는지 느낄 때가 많다. 국민과 정부, 소비자와 생산자, 근로자와 고용자와 같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신뢰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각종 매체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비리와 뇌물, 주가조작, 부정입학 등 엘리트 집단과 권력자들에게 정서적으로 배신감을 느낄 만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눈뜨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일단 의심부터 하는 것이 현명한 대체방법인 것처럼 느껴진다. 레이첼 보츠먼의 <신뢰 이동>이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신뢰가 사라지고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도 신뢰를 깨트리는 사건 하나가 한 세대 전체에 상처를 입혀서 이를 치유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영구히 치료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역적 신뢰(모두가 서로를 아는 소규모 지역 공동체)의 시대에서 제도적 신뢰(신뢰가 계약과 법정과 상표 형태로 작동)의 시대를 거쳐 분산적 신뢰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는 분산적 신뢰 시대의 초기 단계에 놓여있다. 신뢰가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의 관계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남는 방을 여행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목적지가 같은 사람과 차량을 공유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저자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아무 의심없이 너무나 쉽고 빠르게 믿어버린다는데 있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더 잘 믿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보편적인 신뢰를 부추기는 방법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특히 탐욕에 사로잡히면 무턱대로 믿으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뢰 이동>, p.183
그렇다면 똑똑하고 현명하게 신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타인의 신뢰성을 얻기 위해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순간의 느낌과 같이 감정적으로 신뢰의 대상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보고싶은 정보만 찾아보며 정보편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믿고 싶은 대로만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잘못된 정보외골수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신뢰의 대상이 '능력(실력)있는 사람인지, 믿을만하고 정직한 사람인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스스로도 능력과 신뢰성, 정직함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며 의식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9월, 학원에서 새로운 분기가 시작되었다. 분기가 끝날 때마다 테스트 결과와 함께 한 분기 동안의 학생 성취도에 대해 상담을 한다. 보통 잘하고 있는 부분과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 틀이 너무 똑같고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이번 분기에는 비슷한 성향의 학생들도 좀 더 디테일하게 파악해보려고 한다. 모든 학생들의 맥락까지 같지는 않을 테니 부족한 부분을 개선시켜 나갈 방법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학생이 개선시켜야 하는 부분과 성취도를 올리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방법을 제시한다면 보다 의미 있는 상담이 될 것이고, 학부모가 학생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성도 이전보다 높아질 것이다. 학생과 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한 분기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씽큐베이션 #체인지그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