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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un 30. 2022

삼계유심三界唯心


일체의 현상은 실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산물이다.


삼계유심

三界唯心


원효의 '금강삼매경론'(해제)에 나오는 말입니다. 먼저 삼계(三界)에 대해 살펴보면, 삼계는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으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말합니다. 욕계(欲界)는 탐욕이 만연한 것을 말하고, 색계(色界)는 탐욕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형상에 얽매인 상태를 말합니다. 마지막 무색계(無色界)는 형상의 속박마저 완전히 벗어난 순수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삼계유심(三界唯心)은 인간이 가지는 탐욕, 형상에 얽매임, 또는 벗어남에 대한 경계 자체가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라는 말입니다. 원효의 '금강삼매경론'(해제)의 삼계유심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 원효가 겪었던 일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데서 나올 수 있었던 말입니다.



잠시 원효의 전반기의 삶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원효는 성이 설(薛) 씨로 아버지 담내는 신라 17신분 가운데 11급인 나마였습니다. 원효가 출가하기 전까지의 청년기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원효는 진덕여왕 4년(650년)에 34세의 나이로 평생지기인 도반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유학길을 떠났습니다. 당시 당나라의 불교문화를 배우기 위해서였는데 처음 유학길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와야 했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난 다음 문무왕 원년(661년)에 다시 당나라 유학길에 오릅니다. 역시 도반 의상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고 두 사람은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어두운 밤, 목이 말라 주변을 더듬다 발견한 물. 원효는 정말 시원하게 벌컥벌컥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주변을 살펴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그가 간밤에 마셨던 물은 다름 아닌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원효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토해내고 한순간 깨달음을 얻습니다. 어제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던 물이 오늘은 한낱 썩은 물이라는 사실. 이 둘이 다른 것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바라보게 되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심멸즉감분불((心滅則龕墳不二)

삼계유심만법유식(三界唯心萬法唯識)

심외부법호용별구(心外無法胡用別求)


마음이 생겨나므로 온갖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여러 가지 법도 역시 사라진다.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은 오직 인식에 불과할 뿐이구나.

마음 밖에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따로 무엇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바로 원효가 깨달았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후로 원효는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신라로 돌아왔고,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은 후 승복을 벗어버립니다. 아무래도 원효는 삼계유심, 일체유심조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민중과 섞여사는 삶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행하는 데에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며 삶을 살아간 것 아닐까요?


우리의 삶 역시 삼계유심(三界唯心)의 깨우침이 필요한 순간이 많습니다. 어떤 일을 행할 때 마지못해 행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일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성으로 하는 사람이 있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사람이 있고 두 귀를 쫑긋 세우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당한 결과적 격차가 생기는 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보이는 것 외에도 보이지 않는 인간적인 성숙과 자신감, 자부심이 시너지 효과를 내어 더 많은 성과를 보여줄 것입니다.


유리컵에 물이 반쯤 차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 물 잔을 보고 "물이 반밖에 없네"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물이 반이나 들었네'라고 말합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긍정적인 마음, 다른 한 사람은 부정적인 마음을 담아 말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종종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는 보이는 현상에 대해 내 마음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부정적'이 될 수도 있고 '긍정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먹구름이 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먹구름을 거둘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자신입니다. 그러니 모든 상황을 잠시 멈추고 '긍정'의 마음을 가지도록 한다면 본인 자신도, 상대방도 모두가 맑고 화창한 '매우 맑음'의 마음 날씨를 맞을 수 있습니다.


매일 블로그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 그 글을 창작하는 블로거들 역시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힘들고 지칠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겠다는 마음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저 즐겁게 취미로 활동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반복되는 일상에 손을 조금씩 놓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견디고 이겨내고 계시는지요? 이미 답을 던진 질문이지만 매 순간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분들이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일에 대해, 상황에 대해, 현상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보는 것, 듣는 것, 두려움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좀 더 빨리 그 무게에서 해방되도록 삼계유심의 깨달음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삼계유심

三界唯心

일체의 현상은 실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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