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유묵
안중근 의사의 유묵으로 1901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뤼순 형무소에 투옥됐을 때 옥중에서 쓴 한문 붓글씨이다. 2003년 4월 14일 가치를 인정받아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당시 안중근 의사를 취조한 일본인 검찰관과 간수 등에게 써 준 묵서는 총 200여 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는 그 가운데 57점만을 인정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상을 개탄하며 의와 인과 충, 효에 대해 글을 남겼고 이 모든 유묵을 일본인에게 남겼다. 그 가운데 26점이 반환되거나 양도되어 [보불 569호 안중근 의사 유묵]으로 지정되었다. 그 가운데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 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은 뤼순 감옥 일본인 경찰에게 써 준 것으로 그의 손자 야기마사즈미가 보관해오다가 안중근 의사 숭모회에 2002년 10월에 기증했다. [보불 569 -26호 지정]
안중근 의사는 모든 유묵에 大韓國人 安重根 書(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서명을 넣었으며 무명지 한마디가 없는 왼손바닥을 먹물에 찍어 낙관으로 삼았다. 마찬가지로 안중근 의사의 유묵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 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에도 글의 왼쪽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글자와 함께 손바닥 낙관이 찍혔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젊은 기개와 힘을 느낄 수 있다. 비록 향년 30세의 젊은 나이로 1910년 3월 26일 순국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의 마음과 민족을 사랑하는 애족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의 요소를 더해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은 우리나라 근대사를 통틀어 가장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연 그 가치를 값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가끔은 우리나라를 지켰던 수많은 분들을 떠올려본다. 어떻게 지킨 나라였던가. 얼마나 많은 희생으로 지켜낸 나라였던가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만약 강제로 나라를 빼앗겼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고민해 본다. 그리고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고 평화를 누리고 있는 이 나라가 다시는 약해지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옥중에서 써 내려간 안중근 의사의 유묵.. 한 획을 그을 때마다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또 어떤 비장함이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후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새기며 그 정신을 이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뤼순 감옥에서의 한정된 시간 속에 마치 유서를 쓰듯 우리 민족에게 남긴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마땅히 우리가 기려야 할 민족정신이 깃들어 있다.
비록 아무 영향력 없는 일 개인이지만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 '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오랑캐 나라에서도 도를 실행할 수 있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보려 한다. 말은 곧 나의 정신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언행에 있어 신중하고 신의가 있다면 제아무리 적이라 할지라도 존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본다.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
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
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오랑캐 나라에서도 도를 실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