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부터 영드까지 이어지는 스토리 경쟁력
2002년, BBC에서 영국의 위인 2000여 명 중 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조사를 한 적이 있다.
1위는 두 차례 총리직을 역임하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이었다.
100위권까지 확장해 보면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넬슨 제독, 크롬웰 등 정치인이나 군인의 비중이 가장 높고 그다음으로 다윈, 뉴턴 등 근대 과학의 발전을 이루어낸 자연과학자 및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을 이루어 낸 엔지니어와 탐험가들의 비중이 높다. 그다음으로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턴 등 작가들이 있고 마지막으로 비틀스 등 대중음악가와 축구선수와 같은 20세기 이후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리스트를 보면 영국이 인류 사회에 공헌한 가장 빛나는 성취가 어느 영역에 있는지 명확해진다. 첫째는 개인의 자유와 의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만들어내고 지켜냈다는 것, 둘째는 자연과학과 공학으로 인간의 지적 한계와 능력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반면 예전에 ‘영국인들이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미술, 건축, 음악, 무용 등 예술 분야는 이 나라 국민들이 썩 재능을 가진 영역은 아니다. 딱 한 영역, 문학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문학사에 있어 영국인이 공헌한 바는 꽤나 오랜 역사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할 만큼 영국인들에게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는 셰익스피어부터, 우리 시대의 전설과 같은 J.K. 롤링까지 포함된다. 극, 시, 소설 등 분야도 다양하다.
그런데 오늘 스토리와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전통적인 ‘문학’ 영역에 더해 오늘날의 가장 표준적인 이야기의 소비 형태인 영화/드라마 등 ‘콘텐츠’ 영역을 포함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과거의 서사시, 극, 소설의 역할이 20세기 이후 오늘날에는 거의 영상콘텐츠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의 영상콘텐츠 산업은 시각예술, 문학, 음악 등 예술의 다른 영역을 소수의 고급 니치 시장으로 쭈그러트리고 통합해버린(음악은 제외) 현대 예술의 종합 선물세트라 비유할 수 있다. 또한 현대 영상콘텐츠 산업의 규모는 소비자의 수와 인당 평균 소비시간, 벌어들이는 액수, 생산자의 규모와 투입되는 자본 등 모든 영역에서 과거 어떤 예술영역을 압도한다.
그런데, 각 국가의 콘텐츠 경쟁력을 수출입 무역수지로 판단해 볼 때 전 세계 많은 나라들 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곳이 바로 미국, 영국, 한국이다.
대부분 나라에서 콘텐츠 시장은 미국의 할리우드 문화에 점령된 지 오래니 미국의 영향력이 가장 클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사실 저 3개국 중에서도 미국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경제규모나 인구수를 고려할 때 영국과 한국의 콘텐츠 영향력은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콘텐츠 산업의 밸류체인은 드라마/영화의 제작 파트와 방송국/OTT/영화관 등 플랫폼 운영 파트로 이어지는데, 전통적으로는 수직계열화되어 있었으나 최근에는 제작과 유통이 분리되는 추세이다. (쉽게 말해, 예전에는 방송국에서 작가와 PD를 고용해 드라마를 다 찍었지만 요즈음엔 대부분 외주를 준다.) 또한 전체 산업 규모는 대체로 플랫폼의 규모에 의해 좌우되는 편이며, 이것은 대체로 국가별 인구수에 비례한다. 물론 GDP에 따라 객단가가 달라지는 영향도 있지만 Price x Quantity에서 Q의 영향이 크다.
유통을 제외하고 제작 시장만 따로 놓고 보더라도 국민 수가 많으면 내수시장만으로 워낙 큰 규모를 형성하게 되므로 인구수가 많으면 규모가 커진다.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 일본, 인도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 국민 입장에서는 국내 방송과 영화의 규모와 질이 워낙 탄탄하니 다른 나라들도 으레 그럴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자국 콘텐츠로 대부분의 방송시간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콘텐츠 제작 경쟁력을 갖춘 나라는 별로 없다. 위에서 언급한 중국, 인도, 일본 같은 나라는 인구도 많고 문화적 특색이 강해 로컬 콘텐츠가 강세를 보이긴 하나 이들 콘텐츠는 내수시장을 벗어나면 영향력이 별로 없다.
따라서 국가별 콘텐츠의 영향력을 보려면 콘텐츠 수입과 수출의 상대적인 크기를 비교해야 한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수많은 나라 중에서 콘텐츠 수출입에서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한국 세 나라뿐이다.
물론 최근의 트렌드는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OTT의 영향력이 커지는 추세라 ‘수출입’이라는 예전 방식의 집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는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 극장 중심의 영화산업이 붕괴되다시피 하면서 OTT의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고, 글로벌 OTT들은 ‘오리지널 콘텐츠’라고 부르는 자체 제작 콘텐츠의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하기 때문에 요즈음엔 더더욱 콘텐츠의 국적을 논하기가 참 애매하다. (가령, 넷플릭스가 투자하고 판권을 가진 ‘오징어 게임’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을 ‘수출’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비즈니스 차원에서 콘텐츠 산업의 구조를 논하려는 게 아니고 국가별로 스토리의 생산능력을 생각해 보려는 것이므로, 누가 투자하는지 라이선스나 수익을 누가 가져가는지 같은 내용은 제외하고, 콘텐츠의 본원적 경쟁력을 결정하는 ‘연출, 작가, 배우’의 국적에 따라 콘텐츠의 국적을 생각하려고 한다.
문학과 현대 영상콘텐츠를 동일한 ‘스토리’로 엮어 이야기하려다 보니, 콘텐츠 시장에 대한 부연설명이 길어진 느낌이다. 한국의 콘텐츠 경쟁력 또한 매우 특이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오늘 말하려는 주제에서 너무 동떨어진 내용이므로 다른 기회가 있다면 따로 말해 보겠다.
다시 영국의 스토리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문학작품이나 콘텐츠의 경쟁력이라는 것은 대체로 언어 자체의 경쟁력과 스토리의 힘 두 가지가 어우러져 결정될 것이다. 그중 ‘언어’와 관련해서는 영어로 만들어지는 작품이 다른 그 어떤 언어로 쓰인 작품보다 경쟁 우위에 있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영어는 번역 없이 접근 가능한 독자/관객층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고, 또한 근현대사의 최강대국인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생활방식과 역사는 전 세계 사회의 표준적인 생활양식과 상식이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또한 사람들은 가장 발전된 곳을 동경하게 마련이므로, (도덕적 정당성은 논외로 하고) 문화 사대주의의 혜택도 간접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엄밀히 말하자면 언어 자체의 경쟁력이라기보다는 국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 자체적으로도 영어는 비슷한 다른 언어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어원이 같은 유럽의 여러 언어 중 영어만이 복잡한 관사나 동사 변형을 없애는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더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던 반면, 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 등은 외국인이 배우기 훨씬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영국 스토리의 힘을 국가의 힘과 영어의 영향력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영어를 아름답게 활용했다는 점 외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폭넓은 주제, 자연의 위대함,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다고 평가되며, 시대를 넘어 아직까지도 가장 많이 변주되고 있는 작품이다. 셜록 홈즈의 이야기, 피터 래빗의 이야기, 해리 포터의 이야기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당장 우리가 보는 외국 영화와 드라마들도 소수의 컬트 작품을 빼면 대부분 미드 아니면 영드이다. 또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림책과 영유아, 어린이용 콘텐츠도 많이 보게 되는데 놀랄 만큼 영국 그림책과 콘텐츠가 많다.
이렇게 영국인들은 ‘예술’이라 일컬을 만한 영역 중 말과 글로 이루어지는 문학 영역에서만은 좋은 성과를 내 왔고, 이것이 지금의 영상 콘텐츠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영국인들의 스토리 사랑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 글이 너무 길어지니 나누어서 다음 글에서 이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