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나라
Platinum Jubilee를 맞이해서 생각해 본 여왕의 강점
영국은 지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70주년 Platinum Jubilee 분위기가 한창이다. Primary Year 1의 아이는 학교에서 배웠다는 “Here’s to the Queen” 노래를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린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2년 즉위하여 올해로 재임 70주년이 되었다. 그리고 96세가 된 지금까지 여전히 많은 영국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1세기에 세습제로 유지되는 왕권이라니,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스템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화에서 자란 나의 배경에서는 아직도 왕이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고, 그리고 유명한 왕들 중 특히 여왕이 많다는 것도 참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뽑힌 적이 있었지만 그 리더십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곳 영국은 어디에서나 ‘왕’보다 ‘여왕’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건축물이든 지역 이름이든 식물이든 시대이든 가장 좋고 훌륭한 것에는 대체로 ‘빅토리아’ 혹은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역사책에도 중요한 결정적인 시기가 여왕들의 통치 시기였고 책과 영화, 시리즈물 등 갖가지 콘텐츠들도 여왕, 혹은 여왕 통치 시기의 이야기를 많이 다룬다.
실제 영국 국민들의 인식도 그런 것 같다. 10년 전 Diamond Jubilee 때 발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 국민들의 역대 군주에 대한 인기도 조사에 따르면 1위 엘리자베스 2세 여왕(35%), 2위 빅토리아 여왕(24%), 3위 엘리자베스 1세 여왕(15%)으로 여왕들의 순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4위 헨리 8세(3%), 5위 헨리 5세(1%)의 순이었지만 앞선 세 여왕에 비해 존재감이 매우 미미하다.
(참고로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가톨릭을 버리고 영국 성공회까지 세웠지만 결국 그녀를 포함해 2명의 전 부인을 참수하고 총 8명의 왕비를 갈아치운 왕이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아버지다. 또한 헨리 5세는 “Band of brothers”라는 문구가 포함된 명 연설로 프랑스와의 아쟁쿠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셰익스피어가 그 이름을 딴 작품을 남겼을 만큼 유명한 왕이다.)
이것이 특이한 것은, 사실 중세부터 1200년 간 영국(잉글랜드 및 브리튼)의 군주 총 61명 중 여왕은 (재위 기간이 며칠뿐이었거나 실권이 있었는지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대체로 널리 인정되는 방식으로) 6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왕가에서 딸은 첫째로 태어나더라도 남동생이 생긴다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었다. 남동생이 없거나, 있더라도 후사 없이 요절한 경우에만 가능성이 있었다. 심지어 남성 방계보다도 여성 직계가 더 순위가 밀려, 생존한 삼촌이 있다면 선왕의 친딸은 여왕이 될 수 없었다.
(참고로 2015년 영국 왕실의 왕위계승법이 바뀌어 성별과 관계없이 출생 순서에 따라 정해지며, 방계보다는 직계를 우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전부터 왕실 규정에 있어서 남녀평등의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별 변화가 없다가 2015년에야 바뀐 것은, 아마도 그 해 새로 태어난 공주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윌리엄 왕자의 둘째 샬럿 공주가 태어난 것이 2015년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샬럿 공주에 대한 선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긴 뭐, 왕위 계승 순위 1위인 찰스 공도 73세에 아직 왕관을 못 물려받고 있는 상황에, 아빠는 물론 위로 오빠까지 있는 샬럿에게 돌아갈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이렇듯, 체감상 영국은 상당 기간 ‘여왕의 나라’였을 것만 같지만 사실 따져보면 여왕의 즉위는 흔한 케이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적은 기회에 비해 비교적 성공률이 높은 편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페인의 무적함대 그라나다를 물리치고 유럽의 해상 통제권을 장악한 엘리자베스 1세 시기(16세기, 통치기간 44년), 그리고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던 빅토리아 여왕 시기(19세기, 통치 기간 63년)이다. 그래서인지 영국 사람들에게는 “여왕이 통치할 때 이 나라가 부강해진다.”라는 전통적인 믿음, 혹은 징크스가 있다.
어떻게 영국은 여왕 시기에 이렇게 성공적일 수 있었는지, 어쩌다 특출난 개인이 왕위에 올랐는데 하필 여자였던 것인지 혹은 시대적으로 누구라도 성공하기 쉽게 무르익은 순간 운 좋게 그녀들이 얻어걸린 것인지, 혹은 무언가 여왕이어서 성공할 수 있었던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물론 딱 떨어지는 한 가지 이유로 설명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여러 가지 상황이 얽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련 시대를 다룬 여러 콘텐츠를 보고 관련된 내용을 접하다 보니, 여왕의 통치 시기가 특히 효율적으로,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어떤 필연적인 이유 또한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영국의 시스템은 실무를 수행하는 총리(Prime Minister)와, 정무에는 관여할 수 없지만 최종 의사결정 혹은 총리의 임명과 해임, 의회 해산 등의 권한을 가진 왕이 구분되어 있다. 여기에서부터 절대왕정, 혹은 대통령제와 비교되는 특징이 생겨난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어떤 통치자가 재위 기간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한두 가지 영역만 잘해서는 안 된다.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성공적으로 뛰어넘으면서도 정치/경제/군사/외교/사회안정 등 주요한 많은 영역들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한 개인이 ‘전 영역에서 실패하지 않기’란 얼마다 힘든 것이던가? 우리는 한두 과목에서 100점을 맞는 것이 모든 과목에서 90점 이상 받기보다 더 쉽다는 것을 안다. 결혼 상대자를 찾을 때도 한두 가지 조건에서 A+인 사람은 흔하지만 모든 조건에서 두루 무난한, 성격과 외모와 연봉과 집안과 학벌이 모두 B+ 이상인 사람을 찾기는 아주 힘들다는 것을 안다.
하물며 국가를 통치하는 것 같은 방대한 영역은 한 개인이 모두 아우를 수 있을 만한 범위가 아닐 것이다. 굉장히 예외적으로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뒷받침된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또한 아무리 초인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적절히 옆에서 견제와 조언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결과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그 기간 또한 너무 길다면 그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거나, 변화와 발전이 없을 것이다. 근세 이전의 절대왕정이나 아프리카 혹은 공산권 독재국가들, 근세 이전의 아시아 왕정들이 그랬듯이.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그 권력이 4~5년마다 선거를 통해 바뀐다면, 단기간 내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 하므로 무리하게 변화를 추진하거나 방향이 너무 급하게 바뀔 수 있고, 오랜 시일이 걸리는 근본적인 처방은 웬만해선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임기가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프로젝트는 너무 쉽게 폐기 처분되고 의미 있는 유산조차 쓸려 나갈 것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정해진 임기가 있는 자들은 ‘대리인 문제’를 일으킨다. 그 자리를 영원히 지킬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그 자신’과 ‘단체(이 경우에는 국가)’를 구분하고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한 여러 가지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영국에서 왕권은 일찌감치 다양한 견제를 받으며 단련되었다. 13세기 마그나 카르타를 통과시켜 왕권도 헌법에 의해서만 누릴 수 있게 했으며, 비슷한 시기 벌써 의회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17세기에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을 통해 내각책임제가 확립되었고 18세기부터는 왕(군림) – 총리(통치) 구도가 자리 잡았다.
(이렇게 두 명이 권력을 나누어 갖는 구조는 민주주의와 대통령제가 당연한 것 같은 우리나라나 미국식 정치 환경에서는 상당히 어색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익숙한 구조이기도 하다. 현대적인 주식회사에서 대주주와 전문경영인 체제가 왕-총리 구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재벌 오너가의 영향력이 센 한국에서, 우리는 매일 직장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왕과 총리를 경험한다.)
이런 왕 – 총리 간 권력 구도에서 그 성별 구성이 Male – Male이라면 상황은 자연스럽게 수컷 간 서열 다툼 본능을 자극할 것이다. 물론 가장 세련되고 세속적이며 정치적인 수컷들 사이의 자존심 싸움은 드러날 정도로 유치하지도 않을 것이고, 둘 사이의 권력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대체로 겉보기에는 안정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 다툼의 미묘한 긴장관계는 매우 빈번하면서도 포괄적인 범위에서 나타날 것이고, 이 긴장을 풀기 위한 부가적인 액션과 대화, 제스처가 매우 많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분명 정신 에너지의 낭비이다.)
또 이들은 세습된 권력을 물려받은 자와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물론 총리 정도 되려면 가문의 배경 등 후광을 업고 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왕권에 비해서는 그래도) 간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권력이나 부를 물려받은 사람이, 재능 있는 자에게 갖는 열등감과 시기심은 엄청나게 파괴적일 수 있다(고 한다. 물려받은 것이 없는 사람으로서 공감하려면 아주 노력을 많이 해야 하지만…).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아무 노력 없이 누리는 사람들을 경멸할 것이다. 남성 – 남성 구도에서는 이것이 너무 동등한 기준에서 비교가 되므로 그 갈등 또한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왕 – 총리 간 관계가 Female – Male의 상황이라면 약간 다르다. 생물학적인 서열 다툼이나 편 가르기 본능에서 안전하게 비껴간다. 열등감, 시기심, 경멸감 등도 양상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남녀에게 기대되는 훌륭한 자질은, 물론 비슷한 지점도 있지만 대체로는 거의 달라서 일대 일의 비교나 경쟁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출신 배경의 차이보다는 남녀 간 차이가 더 부각될 것이고, 동일한 성별 구성일 때보다 갈등이나 충돌이 훨씬 적게 나타날 것이다.
게다가 평균적으로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으로부터 인정 욕구를 채우고 싶어 한다. (글을 쓰면서 ‘남자는…’ 혹은 ‘여자는…’이라는 표현을 쓰기 매우 조심스럽다. 당연히 모든 남자들이 그렇지는 않고, 남자들만 그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수컷들이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분투해 온 진화생물학적 역사를 고려할 때, 남자들이 대체로 더 그런 경향성이 있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여왕과 남성 총리는 이 생물학적 본능을 활용하기에 최상의 구조이다. 실제로 빅토리아 여왕은 치세 기간 중 훌륭한 총리들을 여럿 두었는데, 이들의 인정 욕구를 활용해서 최상의 성과를 뽑아내는 심리전을 꽤나 활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아직 동시대인으로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기록을 보면 이성 총리였던 대부분의 시기와 달리 동성인 마거릿 대처 시기에 출신 성분이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좀 더 날카로운 갈등이 표출되었던 것 같다.
물론 특정한 여왕들의 개인적인 특성과 시대적 배경 등 다른 요인들도 많겠지만, 이런 생물학적 본능과 그에 따른 시너지도 영국이 ‘여왕 치세에 번성한다’는 믿음이 생기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그나저나, 이제 96세 여왕님의 치세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70주년 주빌리를 영국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이 축제에는 즐거운 감정 못지않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슬픈 감정과 찰스 왕세자 혹은 윌리엄 왕자로 이어질 왕가에 대한 불안, 체제 변화의 필요성 여러 가지가 뒤섞인 영국인들의 감정이 전해진다.
이 나라는 과연 언제까지 왕가를 유지할까? 한국으로 돌아간 후 언젠가 영국의 정치체제 변화에 대한 뉴스를 듣게 된다면 2022년 6월 영국에서의 플래티넘 주빌리가 기억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