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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정률 Jan 17. 2024

조리원에 던져졌다

내가 없어지고 결국은 내가 되었다


엄마가 되었다, 조리원에 던져졌다


출산 이후의 상태를 표현하자면, '내던져졌다'는 것이 좋겠다. 익숙해질 시간도 없이 누군가의 엄마라는 어색한 호명들 속에서 매순간 낯선 상황 속에 놓여진다. 정말 말그대로 던져진다. 아는 것도 없이, 번번이 새로운 미션들을, 상당히 다른 나와, 무조건 해내야 한다. 가끔은 표류하는 기분이고 어떤 날은 생존자가 된 심정이다. 더러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고, 대개는 '나는 이렇게 해야했었는데..'라는 상념이 쌓인다.


무엇보다 '나'로 인식하고 있던 특징들은 '엄마'라는 수행어에 압도된다. 커피를 좋아하는 A는 수유를 위해 카페인을 통제해야하는 엄마로, 밤의 고요에 침참하던 B는 아이의 울음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상시 대기조로 변경되어 간다. 당연한 모성애가 우리들을 버틸 수 있도록 지켜주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되묻고 싶다. 당신의 인생의 어떤 변화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적이 있느냐고. 어색하고 뻑뻑하기 짝이 없는, 사실은 온갖 내적 비명을 지른 후에야 겨우 흉내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느냐고. (적어도 - 혹은 안타깝게도 - 나는 그런 인간이다. )


마음 속에 버퍼링이 잔뜩 걸려있는데에도, 몇몇의 순간들은 "Alt+Tap"같은 간단한 단축어처럼 순식간에 다가오기도 한다. 첫번째 순간은 "마지막 천국"이라고도 불리는 조리원이었다.


내가 부품이 되도록 만드는 과정


조리원의 일상은 아침 여섯시 반쯤 울리는 첫번째 수유콜에서 시작된다. 대충 눈꼽을 떼어내고 신생아실 문 앞에 있는 개수대에서 손을 씻어낸다. 그리고는 댕그랑 거리는 스테인리스 통을 열어 솜을 두개씩 꺼내어 유두를 닦아 낸다. 1번, 2번을 해야 끝이난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스프레이를 몸에 뿌리면 입장 준비가 끝난다. 문을 두드려 내 이름을 말하면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내 이름에 처음으로 2명분의 사람이 호출된다.


칠이 벗겨진 나무 발판위에 두꺼운 양말을 신은 발을 올리고 좀 더 땡땡한 가슴을 열어둔 채 수유쿠션을 몸에 끼운다. 팔뚝만한 크기의 인간이 나의 가슴 방향에 입을 맞추고 눕혀진다. 초심자에게는 가장 막막한, 경험자에게는 꽤나 지루한 싸움의 시작이다. 울면서 나오거나 눈을 감고 나오거나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 된 아가들은 당연히 먹는 법을 모르고 쉬이 잠이 든다. '무조건 먹여야 한다, 그래야 나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라는 압박 속에서 아기의 발을 주무르고 가슴을 흔들며 씨름을 한다. 권고하는 모유수유는 가슴당 15분씩, 먹이고 트름까지 시켜야 한다. 최소 40분, 길게는 한시반 반 시간 동안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굽혀 짜낸다.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종아리까지 힘을 줘서 가끔 쥐가 나기도 했다. 분유를 먹여도 비슷하다. 아이들이 단숨히 잘 먹는 기적은 쉬이 일어나지 않고 거의는 실패한다. 아이들은 미숙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수유콜은 밤잠을 위해 새벽 수유콜을 받지 않고 마사지 때문에 한두개 넘겨버리더라도 하루에 3-4번이다. 그 외의 시간은 3번의 식사와 2번의 간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개인의 선택에 따라 예약된 마사지를 받거나 안마의자에 누워있게 된다. 내가 머문 조리원은 한방 조리원이었는데, 아침을 먹고 나서는 한의원에 가서 붓기를 빼준다는 한약 한포를 들고 한의사와 상담을 했다. 그날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뜸이나 침을 뜬다. 조리원 퇴소 후를 위한 목욕이나 아기 관리 교육도 필수다. 직장을 다닐 때보다 더 자주 알람이 울린다.


게다가 이 공간에서 나의 가슴은 - 정확하게는 유방은 - 나의 신체로서 숨겨질 권리를 갖지 못한다. 아이를 위해 씻겨지고 관리되고 사용되고 유지된다. 병원에서부터 조리원까지 만나는 여러 사람들은 내 가슴의 안부를 묻는다. “양은 얼마나 나와요?” “상태는 어때요?” 그리고 그중에 절반은 내 가슴을 열어 유륜이라던가 가슴 밑부분까지 꼼꼼히 만져 체크한다. 아이가 목적지를 찾지 못해 헤매일때도 낯선 손에 잡혀 납작해진다. 놀라운 것은 이런 상태에 생각보다 빠르게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먹고 먹이고 넣고 빼고. 순식간에 하루는 촘촘히 채워져 사라져간다. 산후조리원이라는 장소는 나를 위한 것 같지만, 실상은 작은 인간을 먹이기 위한 생산 기계가 되기 위해 유지 보수 받는 곳이 아닐까, 내가 부붐으로 바뀌는 공장일지도 모른다. 수유라는 씨름에 지면 질수록 유튜브로 온통 영상을 보고 시도하고 방법들을 검색하고 실패하며 마음까지도 매몰된다.


흔들리는 이들의 느슨한 연대와 실패


조리원의 한 축이 회복과 다소 혼동이 되는 모유 생산 활동이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사회 활동이다. 요즘에는 조리원 동기가 평생 친구가 된다고들 한다. 전례없는 전염병의 시대에 식당에는 칸막이가 쳐 있고, 대개의 교육 프로그램이 중단이 되어도, 심지어는 각자의 방에서 식사와 간식을 먹게 해도, 친구가 될 사람들은 친구가 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인사를 나눌 수 있고 가장 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 또한 수유실이다. 아이들의 수유텀은 대개 비슷한 경우가 많고 산모들은 더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간절하고 즉각적인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이유가 없다. 비록 옷은 헐벗고 손은 분주해도 말이다. 분유와 기저귀는 어떤 제품을 쓸 것인지, 모유의 양은 어떻고 단유는 언제 할 것인지, 집으로 돌아간 후 육아 전쟁은 누구의 도움을 받을 것인지 - 앞으로 닥친 고민들과 갈래길들에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고민의 파트너들이 옆자리에 있다.


저마다의 고달픔, 불확실성, 희망, 귀여움, 노하우, 공동 양육자의 태도, 쇼핑 구매 목록, 장바구니에 담긴 물품까지. 다르지만 또 같다. 조리원 밖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같은 시기에 같은 조리원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거대한 교집합을 가진다. 게다가 아이가 중심이기 쉬운 남은 인생의 주요한 순간들마저 비슷할 예정이니 쉬이 끊어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느 관계에서도 그렇듯, 낯선 이들과 말문을 트고 인사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하는데 까지는 숨막히는 침묵을 지나야 한다. 갈 곳 잃은 눈과 열려있지만 반응하지 못하는 귀와 오물거리는 입들의 어색한 부딪힘을 견디어야 한다. 그것을 깨고 연결되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쉽고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나는 후자였다.


내가 아니고 또 나일 수 밖에 없는


조리원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를 지웠고 동시에 지워질 수 없는 나를 보이게 했다. 누군가의 엄마라는 건, 처음으로 내가 하는 일에 '나'라는 속성이 지워지는 일이었다. 나는 잠시 '엄마'라는 기능인으로만 불려졌다. 아이와 연관된 사소한 어려움들 앞에서 내가 스스로 나를 뒤로 미룰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했다. 동시에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나의 모양새에 대해서도 깨달았다. 나는 순간의 공통점으로는 사람을 사귈 수 없는 사람이자 애매한 내향인이었다. 나는 어색함을 먼저 깨는 사람이 아니다. 그건 내가 '엄마'라는 이름으로도 그랬던 것이다.


조리원 밖의 일상은 더 숨가빴다. 아이는 규칙적으로 먹고 자지 않고 목욕도 배변도 땀띠도 트름도 쉽게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매일 다른 검색어를 넣고 어설픈 선택을 하고 마음을 졸였다. '나'라는 정체성에 집착할 수 있는 고민도 조리원 동기를 못 사귀는 내향인의 소심한 칩거도 그로 인해 꽤나 고요했던 혼자만의 시간도 사라졌다. '마지막 천국'이라는 건 달콤함보다는 슬픔의 표현에 가깝다. 그 안의 것들은 온통 낯설고 갑작스러웠으나 그 밖에 만날 것들에 비해서는 길게 편집된 예고편에 같았다. 더 많은 것들이 비명을 지르게 했고 작은 것들에 크게 웃게 되었다.


변화들 앞에서, 낯선 곳에 던져질 땐 그렇다. 자연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다. 뻑뻑하고 속으로는 비명을 지른다. 속절없이 쓸려가서 내가 아닌 것 같아지기도 하고, 내가 될 수도 없게 무엇이어야만 하는 상황에 체할 것 같다. 근데도 이상하게 자꾸 내가 된다. 내가 없어지는 감각들이 오히려 내가 될 수 밖에 없는 항상성을 만든다. 그렇게 박자가 어긋난 체로 엄마라는 이름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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