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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정신적 헤게모니와 우크라이나

제국의 붕괴는 정신문화관념적 헤게모니의 붕괴로부터 시작된다.

by 박세환

거대 제국의 지배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그 위상에 걸맞은 정신문화관념적 헤게모니가 필요하다. 중화제국의 유교, 아랍제국의 이슬람, 근대 유럽 제국들의 근대정신 등등. 이런 어떤 정신문화관념적 헤게모니, 속칭 '뽕'이 없이 오직 물리물질실질만으로 통치하려 했던 제국들은 반드시 한계에 봉착했다. 오직 폭력의 힘에 의존했던 유목민 '야만족' 제국들은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뿔뿔이 흩어져 '그들이 무력으로 복속시켰던' 문명민족의 정신적 헤게모니에 흡수/통폐합되고 그렇게 소멸해 갔다.


사실 '물리물질실질'만으로 꽤 오랫동안 버텼던 최고의 사례는 로마제국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로마인들은 물리물질실질적인 것만 중시하는 전형적인 유물론자들이어서 정신문화관념적 가치를 하찮게 여겼다. 하지만 '그' 로마제국 역시 2세기의 리즈시절을 넘어 3세기의 엄청난 혼란을 겪은 뒤엔 제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문화관념적 헤게모니'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결국 '기독교'라는 정신문화관념적 헤게모니를 수용하게 되지만 불행히도 그 시점은 너무 늦었다. 제국의 절반(서로마)이 붕괴되는 건 막을 수 없었고, 그나마 남은 절반(동로마)을 건져 이후 천년을 더 버티게 된다.




냉전을 승리로 이끈 '서방제국'에게도, 차후 전 세계를 어우를 정신문화관념적 헤게모니가 필요했다. 사실 그래서 나온 게 우리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페미피씨'였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 거기에는 결함이 너무나 많았다.

20C 후반부터 서방세계의 엘리트들은 '페미피씨'라는 정신문화관념적 헤게모니를 급조해 일반민중들에게 하향식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뿌려댔지만 결국 이는 세계 민중들의 심장 속까지 파고드는데 실패해 소수 귀족들의 도덕적 허영심, 정신적 자위놀음에 머물고 말았다.

(서구 자유주의 질서의 최외각에 있는 이 한국의 멍청한 지도자 대감놈들은 이 망한 페미피씨 헤게모니를 좋다고 받아 처먹느라 여념들이 없었다. 이제 먹은 거 다 토해낼 시간이다.)


세계를 어우르는 거대 제국질서가 그 위상에 걸맞은 정신문화관념적 헤게모니를 뿌리내리는데 실패했을 때, 그 물리적 위상까지 같이 흔들리는 건 동서고금의 법칙이다. 서구 자유주의 질서체제가 실패했다는 회의감이 전 세계적으로 팽배해져 갔고, 서구의 '근대정신' 자체를 회의하고 부정하는 현상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중동지역에선 이슬람 원리주의 정서가 더욱 강력해졌고, 러시아나 중국식 권위주의 체제를 대안질서로 진지하게 여기는 이들도 많아졌다. 서구 자유주의 체제는 각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도전들에 직면했고,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는 다시 암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서구 자유주의 질서의 최외각 끝자락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던 우크라이나에 먼저 불똥이 튀었고, 다들 알다시피 그들의 내일은 무척 어두울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끝자락에 있는 건 바로 대만과 폴란드, 그리고 한국. 서구 자유주의질서가 지금처럼 외각에서부터 차츰차츰 붕괴해 간다면 그다음 불똥을 받는 건 바로 우리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우크라이나의 불행을 지구 반대편에서 터지는 흥미로운 불장난 즘으로 여기며 여유롭게 구경할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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