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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r 03. 2024

고려거란전쟁 - 최질을 위한 변명

정말 그렇게 악당이었을까?

지난 토요일 고려거란전쟁 방영분(29화)에서 '역적 최질' 일당은 현종의 계책에 의해 무너진다. 하지만 현종은 연회로 불러 모은 최질정권(?) 당사자 19명 만을 처단했을 뿐 그 밖의 인사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고 넘어가주는 비교적 후한 모습을 보인다. 


사실 이 부분이 좀 의아하기는 하다. 드라마에서 표현된 최질 일당의 패악질은 '역적 3족 몰살 멸문지화'라는 전근대시대의 미덕(???)을 고스란히 적용함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현종은 당사자들만 처단하고 그 이외에 대해선 어떠한 죄도 묻지 않는 너그러운 처분으로 이 사태를 종결지으려 했을까? 단지 큰 전쟁을 앞두고 대규모숙청을 진행하는 정치적으로 부담 때문에?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실재 역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드라마가 최질을 너무 비하했다.




최질 일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무관 영업전 회수 정책 백지화, 차별받던 무관의 고위직 진출 가능, 무관중심의 행정부 개편등의 정책을 추진했던 건 맞다. 하지만 거기까지였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여타 패악질들(ex : 정전에서 왕을 노골적으로 모독, 신하들 겁박, 궁녀 추행, etc..)은 실재 역사와 무관한 작가의 창작으로 보인다. 


'친조'라는 명분으로 왕을 적국에 팔아넘기려 한 적도 없다. 현종이 서경으로 행진한 건 거란으로 팔려가는 게 아니라 그저 북방의 군사들을 독려하러 가는 다소 의례적인 행사였다. 마치 젤렌스키가 군사들의 사기를 독려하기 위해 종종 동남부 전선을 방문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국가원수가 전선 근방 지역을 방문하여 민관군의 사기를 독려하는 건 전시국가에서 흔한 이벤트인 거고 그래서 최질일당도 다른 의도를 전혀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쿠데타 이후 폭주하는 최질의 모습에서 회의감을 느끼고 정신을 차려 다시 충신으로 돌아오는 걸로 묘사되는 김훈. 당연히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는 설정이다. 실제 기록에 의하면 김훈은 쿠데타 시작부터 마지막 가는 길까지 아무런 이견 없이 최질과 함께했다.  


최질일당이 벌인 일이 쿠데타가 맞다 한들, 이는 일전에 일어났던 강조의 난에 비하면 훨씬 온건한 이벤트였다. 


강조는 전방 정예병력을 동원해 수도로 난입, 수도의 수비병과 고관대작들을 마구잡이로 참살했으며(물론 김치양과 유행간에게 붙어먹었던 탐관오리들이긴 했다..) 태후를 귀양 보내고 심지어 왕까지 죽여버렸다. 추가로 총동원령을 내려 30만이나 되는 고려 남성들을 끌고 전방으로 나갔다가 한 타 싸움에 싹 다 말아먹고 그 자신도 저승여행을 떠난다.(고려는 이때 아예 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훈 최질의 난에서는 이렇게 많은 피가 흘려졌다는 내용이 없다. 그저 자신들의 땅을 빼앗아 문관 고관대작들의 급여로 충당하려 했던 장연우와 황보유의를 두들겨 팬 후 귀양을 보낸 게 전부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드라마에선 30만 명 말아먹고 고려를 망할뻔하게 만든 강조에 대해서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남은 충심으로 고뇌하는 우직한 무장으로 묘사하면서도(물론 거란의 회유를 끝까지 거부하다 죽임을 당한 건 사실이다.) 최질은 용서가 안 되는 개baby로 만들어 놓았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현종) 편이라고 사람 좋게만 나오는 장연우와 황보유의도 역사적인 평가는 조금 다르다. 애초에 군인 한 명 한 명의 충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전시 국가에서 고관대작들 급여가 부족하답시고 군인들 땅을 빼앗아 활용하려 했다는 거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고, 그런 짓을 혜안인 것 마냥 추진했던 두 사람의 정신상태를 의심하는 수준이다. 사실 정변 당시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다 해도 할 말이 없었고 물론 이를 이견없이 묵인해 준 현종의 처신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수없이 많은 전쟁에 휘말리면서도 문관중심 국가였던 고려에서 무관들에 대한 처우는 박했다. 무관들은 박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이를 감내한 체 기꺼이 전선에서 목숨을 내 던졌고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속되는 전란으로 국고가 고갈될 위기에 처한다면, 당연히 그간 무인들의 희생으로 호의호식해 온 고관대작들의 처우를 잠시 낮추어서라도 군인들을 먼저 챙겨주는 게 옳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장연우와 황보유의는 정 반대로 대응하려 했고 그렇게 화를 자초했다.


(참고로 장연우는 구타의 상흔 때문인지 귀양에서 돌아오자마자 죽었지만 황보유의는 계속 고관대작으로 호의호식하다가 수십 년을 더 살고 죽는다.) 


드라마에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이러한 배경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종도 딱 19명만 처단, 더 이상의 누구에게도 죄를 묻지 않은 채 상황을 넘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질정권이 무너진 뒤 그가 추진했던 일부 정책들이 무효화되긴 했지만 무관들의 처우는 달리 낮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 부분에서는 더욱 상향되었다고 한다. 고려 조정에서도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인데 이렇게 놓고 보면 오히려 총대 맺다가 처단을 당한 19명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드라마에서는 현종이 연회장에서까지 최질에게 모욕을 당하는 걸로 나오지만 실재 역사에서 현종은 모든 걸 이자림에게 일임하고서 정작 자신은 연회장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꽐라가 된 김훈, 최질이 "근대 폐하는 대체 은제오시는 거?"이러다가 이자림한테 전부 척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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