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Jul 17. 2024

조조와 멩스크 - 스타2 천박한 서사 수준

회사 인적풀의 전반적인 질적 하락

삼국지에서 '여백사 일가 학살'조조라고 하는 대표적 빌런의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너무나 중요한 장면인데, 이 장면이 사람들 뇌리에 특별히 깊게 남는 건 단순히 조조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다. 사건이 특히 충격적인 건 조조가 아무런 원한관계도 없이 자신에게 순수한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들을 함부로 죽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가정을 해 보자. 여백사 일가가 착한 척 하지만 사실 과거 조조의 아버지에게 친구인 척 다가가 많은 피해를 끼쳤던 적이 있었다면? 그래서 어린 시절 조조가 이에 앙심을 품었었으며, 조조가 일으킨 학살은 사실 그 어린 시절 원한에 대한 의도된 복수였다면 사람들은 이 학살사건을 어떻게 여기게 될까?


만약 그리되었다면, 여백사 사건은 지금처럼 큰 임팩트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필자는 장담한다.

전술한 바 있듯, 여백사 사건이 특별히 충격인 건 정상적인(?) 양심을 보유한 다수의 사람들 입장에서 정서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살을 주도한, 그리고 주도하고 나서도 별 다른 반성이 없는 조조의 이미지는 정상인이 아닌 사이코패스 빌런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원한'이라는 설정이 부여될 경우 조조의 행위는 '약간이나마 납득해 볼 만한 정서적 명분'을 갖추게 되며, 이로써 사건의 충격강도와 조조의 빌런성은 삭감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백사 사건은 삼국지를 통틀어 흔하게 이어지는 흔해터진 살해극 중 하나로 전락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빌런 멩스크의 캐릭터를 플레이어들에게 확고히 각인시키는 사건은 바로 '케리건 유기' 사건이다. 스타1 테란 미션 9 뉴게티즈버그에서 멩스크는 저그의 침공 속에 놓인 자기 부하 케리건을 그냥 버려두고 철군해 버린다.


사실 이 전에 레이너가 케리건에게 우리가 알던 멩스크가 아니니 우리 그냥 도망치자며 제법 간곡하게 설득하지만 케리건은 "우리 멩스크님께선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라는 반응으로 대깨멩의 면모를 과시한다. 케리건은 저그에게 잡혀 알고치 속에 갇히고 나서조차 꿈 텔레파시를 통해 멩스크에게 간곡한 구원요청을 계속 보내는데 이러한 상황들을 보면서 플레이어들은 가슴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절실하게 '자신의 군주'를 믿고 따랐던 케리건을 매정하게 내다 버린 멩스크의 사이코패스 빌런 캐릭터성은 더욱 확실하게 각인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사실 케리건은 과거 멩스크의 가족을 학살했던 테란연합의 요원이었으며, 케리건을 유기한 건 멩스크의 오랜 구원에서 비롯된 복수였던 것."이라는 설정이 추가된다면 어떨까? 결국 '멩스크의 케리건 유기사건'은 납득할 만한 정서적 맥락을 갖추게 되고, 필연적으로 사건의 충격강도와 멩스크의 사이코패스 캐릭터성은 감소된다. 멩스크의 빌런성이 약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스타크래프트2로 넘어오면서 그 설정이 실제로 추가된 것이다! 아예 케리건을 유기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멩스크가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썩쏘를 짓는 장면이 정성어린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추가되면서 이제 이 설정은 돌이킬 수 없는 공식 설정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이 설정은 단순한 유치함을 넘어 개연성 측면에서도 너무 쓰레기인 게, 케리건은 멩스크의 포로였고 또 부하였다. 멩스크 입장에서 맘만 먹으면 케리건을 튀겨먹고 데처 먹고 삶아 먹고 지져먹고 볶아먹고 쪄먹고 구워먹고 그냥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오랜 시간 동안 '부하' 케리건을 자기 손으로 어쩌지 못해 끙끙 앓기만 하다가 결국 자신의 손이 아닌 저그의 손을 빌려 이를 처리하려 했다? 멩스크라는 캐릭터를 완전 찐따새끼로 만들어 버리는 거지ㅇㅇ


문학작품들을 봐 온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복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손으로'이다.


"스승님의 원수! 네놈만큼은 반드시 내 손으로 처치해 주마!"
"XX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손으로 죽인다. 만약 나보다 먼저 XX에게 손을 대는 놈이 있다면, 나는 그놈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케리건 유기사건'은 이러한 오랜 복수서사의 클리셰조차 지키지 못한 것이다.




나는 스타크래프트2가 나오고 블리자드 노스팀이 해체되는 과정 속에 블리자드에서 대대적인 인적 교체가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수준이 더 떨어졌다고 강력하게 느껴왔는데 그 증거(?)중 하나가 바로 위에 언급된 저런 스토리상의 변화이다. 스타크래프트 특유의 비극서사 특성을 바로 이해하는 인간이라면, 절대 저런 유치뽕짝 아침막장드라마적인 설정을 추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저 하나가 아니라 해도, 스타크래프트2의 세계는 1의 세계보다 전반적으로 밝고 명랑하다. 스토리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권선징악 "사랑과 우정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하지 않겠어! 웨딩~피~치~"로 가득 차있다. 심지어 유닛 디자인조차 그러할진대 당장 전투순양함이나 우주모함 정도만 놓고 보아도 스타2의 그것은 무언가 더 곡선과 잡장식이 많아졌고 반짝반짝 빛나는 형상이라 무언가 더 정이 안 간다. 마치 여성의 액세서리가 우주공간에 둥둥 떠 돌아다니는 느낌인데 결과적으로 스타크래프트 세계관 특유의 어둡고 저주받은 냉혹하고 차갑기만 한 기계적인 그런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냥 간단하게, 스타2가 나올 시점부터 해서 블리자드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특유의 그 어두운 정서, 꿈도 희망도 없는 어둡고 저주받은 우울한 특성을 상실해갔다. 무언가 더 밝고 명랑하고 둥글둥글하고 파릇파릇한 신좌파 정서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그들이 창조해 낸 마지막 세계관이자 막판에 '그나마' 성공적이었던 기획 '오버워치' 세계관에서 극대화된다. 이 외에, 과거로부터 이어진 어두운 세계관 작품들은 전부 그 느낌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차가운 평가 속에서 과거의 영광을 상실하고 흥행부진에 시달리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iDCNMJQHDM


 



 

 



작가의 이전글 우리의 젠더갈등은 지금 어디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