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용서가 안되던 두 가지
일전 정의당을 탈당하러 당사에 갔을 때, 관계자 한 분이 "그래도 여까지 오신 분이니 사유를 좀 들어보고 싶다." 하더라. 그냥 탈당계 서류만 적고 갈라다가 어째 어째 입이 트여 말을 꺼내게 되었는데, 크게 두 가지를 말했다.
1. 나는 피씨주의 싫어하지만 이 당의 정체성이 그러하다면 어쩌겠나. 하지만 그럼에도 진짜 이건 선 넘었다 생각했던 일화가, 일전 모 노동운동 하던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이다.
노동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고 한다. 거친 삶을 살던 분들이 그런 거친 상황에 처하다 보니 당연히 이런저런 거친 언사들이 튀어나오는 건 필연이지 않겠나. 근데 그때 '노동자들과 연대하겠'답시고 여기 당의정에서 나왔다는 몇 놈인지 년인지 아무튼 그것들이 노동자들 구호에 태클 걸면서
"방금 막 사용하신 그런 표현은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표현이니 정정하십시오!"
"그런 언피씨 발언은 쓰지 마십시오!"
이런 검열질을 처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얘들은 정말 선을 넘는구나, 이 동네는 그냥 정신이 나갔구나, 미쳤구나, 좀 망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더랬다.
2. 아마 지금까지도 이 당은 '국가보안법 폐지'가 공식 입장일 것이다. 나도 알고 님도 알겠지만 원래 진보는 오랜 시간 동안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침해받지 않는 시민 문화 영역의 자유를 추구해 왔다. 국가보안법 반대도 다 그런 맥락에서 나왔던 것이고
그런데 왜 '여성인권'이라는 테마만 나오면, 소위 '진보'라는 작자들은 공권력의 영역을 더 확대 강화시키지 못해서 지랄 염병들을 하시냐. 그러려면 국보법폐지 당론을 비롯, 과거 우익진영에서 '좋은 것'을 위해 국가공권력을 확대하겠다 했을 때마다 반대표 날려왔던 '진보적' 행보들부터 다 철회하시던가.
사람이 이 쪽을 지지할 수도, 저 쪽을 지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 용서가 안 되는 건, 필요와 효용에 따라 이 쪽 논리에 붙었다 저 쪽 논리에 붙었다 하는 그런 박쥐짓인 것이다. 땅짐승이나 조류 중 어느 편이 선이고 어디가 악인지를 규정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필요에 따라 양쪽 입장을 끝없이 왔다 갔다 했던 박쥐짓은 이미 그 자체로 '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일의 자라 바겐크네히트를 보라. 이 사람은 반미 친러 좌파인데 즈가 생각해도, 암만 생각해도, 푸틴 편들면서 또 한편으로 페미니즘 피씨주의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래서 반미친러를 고수하는 대신 페미니즘 피씨주의는 내려놓겠다고 했다. 그러고서 독일 총선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반미주의를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논리적 정합성이라는 측면에서 얼마나 깔끔한 행보인가!
관계자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거의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반성해야죠." "안타깝게도 그간 일부의 입장이 너무 과대표 되었던 것 같습니다."라는 말만 내어 놓았을 뿐이다.
차피 입을 열게 된 이상, 당의정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도 좀 들어보고 싶었으나 그것까진 과욕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