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는 일은 외향적인 사람이든 내향적인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매우 소극적이고도 안전한 방법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방법은 놀랍도록 효과적이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관심을 확 사로잡는 멋진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만히 경청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상대방의 호감을 얻을 수 있고 친구를 만들 수 있다. 경청은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강력한 도구이며,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첫걸음이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 원칙 일곱 번째는 “Be a good listener. Encourage others to talk about themselves.”이다. 대화할 때는 자기 말을 하기보다는 먼저 좋은 경청자가 되고, 더 나아가 상대방이 편하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반응하라는 이 원칙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서 타인의 관점과 감정에 집중하라는 교훈이다. 우리는 대개 인간관계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에 집중하지만, 카네기의 조언은 시야를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로 옮길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중요한 이유는 타인으로부터 이해받고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우리의 근본적인 욕구에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는 존재
점심시간 수다 속에서도, 소셜미디어의 끝없는 피드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이야기한다. 오늘 겪은 사소한 일부터, 깊은 고민과 감정까지,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다이애나 타미르(Diana Tamir)와 제이슨 미첼(Jason Mitchell)은 사람들이 왜 대화와 온라인 소통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를 뇌 과학적으로 탐구하였다. 그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우리에게 보상을 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할 때, 측좌핵(NAcc)과 복측피개영역(VTA)-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돈을 받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반응하는 바로 그 영역-이 활발히 작동했다. 이는 곧 ‘나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쾌감을 준다’는 의미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실험 참가자들이 단순히 돈을 받을 기회보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마치 “너의 이야기를 할래, 아니면 돈을 받을래?”라는 선택지를 받았을 때,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택한다는 말과 같다. 자기를 공개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심리적 욕구 중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쁜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친구에게 말하고 싶고, 슬픈 일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진다. 우리의 뇌가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우리는 직장 또는 일상생활 모임에서 돈을 지불하는 사람에게 발언권을 준다.
적극적 경청이란 무엇인가
친구를 사귀는 일에는 화려한 언변보다 차분한 경청이 힘이 센 이유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화려한 언변을 구사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의미 있는 순간은 온전히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을 때 찾아온다. 적극적 경청이란 단순히 말을 듣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말속에 담긴 감정과 맥락을 이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며, 지금 여기에 온전히 함께하는 것이다. 귀 기울여 들으면, 상대방은 자신의 생각을 더욱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고, 더 깊은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적극적 경청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상대방의 말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의 감정을 존중하며, 그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태도다. 이것이야말로 인간관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요소다.
경청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기의 움직임을 멈추고 상대방을 바라본다. 그는 대화를 나눌 때 오롯이 상대에게 집중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으며, 상대의 말과 표정을 바라보면서 경청한다. 그의 몸짓과 태도는 ‘당신의 말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경청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말을 마치기 전까지 서두르지 않는다. 의견을 덧붙이거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말이 끝난 후에도 잠시 기다리며 상대방이 더 말할 것이 있는지 살핀다. 이 과정에서 상대는 자신의 이야기가 가벼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다.
경청하는 사람은 상대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자기의 공감을 표현하여 알려준다.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목소리의 떨림, 표정의 변화, 말끝의 주저함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그랬구나’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많이 힘들었겠다’와 같이 상대의 감정을 반영하는 말을 건넨다. 이러한 차분하면서도 적극적인 표현은 상대에게 깊은 위로가 된다.
경청하는 사람은 질문을 통해 대화를 확장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듣기에 자연스레 질문이 생긴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확인하기 위한 닫힌 질문보다는, 상대가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생각을 확정할 수 있도록 돕는 열린 질문을 더 많이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라고 묻기도 하고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라고 물으며 상대가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더 깊이 성찰하도록 돕는다.
경청에서 시작되는 비즈니스 혁신
비즈니스의 혁신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거창한 기술 개발이나 대담한 마케팅 전략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출발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듣는 것’이다. 경청은 단순한 대화 기술이 아니라, 기업이 소비자와 직원의 마음을 이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한때 단순한 온라인 서점에 불과했던 아마존은 어떻게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했을까? CEO 제프 베조스는 단순한 판매 전략을 고민한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원하고 불편해하는 것을 깊이 듣는 것에서 출발했다. 베조스는 "사업을 확장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내가 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확장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고객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찾고 역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것. 아마존은 고객부터 시작해서 역방향으로 혁신한다."라고 말하며 아마존의 리더십 첫 번째 원칙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의 의미를 강조한다.
넷플릭스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초창기 DVD 대여 서비스였던 넷플릭스는 사람들이 연체료를 싫어한다는 불만을 듣고 정액제 모델을 도입했다. 이후 사용자의 시청 패턴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개인화된 추천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로 인해 오늘날의 글로벌 스트리밍 강자로 자리 잡았다. 만약 넷플릭스가 단순히 ‘우리가 좋은 영화를 추천하겠다’는 태도로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했다면, 오늘날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데이터를 통해, 그리고 직접 사용자의 반응을 듣고 변화했다.
과거의 마케팅은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성공하는 브랜드는 소비자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만든다. 경청하는 브랜드는 소비자를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동반자로 만든다.
에어비앤비는 여행을 ‘숙소 제공’의 개념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경험을 나누는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고객 리뷰 시스템을 강화하고, 사람들이 머문 곳에서 겪은 특별한 경험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도록 유도했다. 덕분에 에어비앤비는 단순한 숙박 서비스가 아니라, ‘나만의 여행 이야기’를 만드는 브랜드가 되었다.
먼저 듣기로 결심하기
시인 정현종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라고 노래했다.
오늘도 우리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지만, 내가 더욱 그러한 것처럼, 그들의 마음을 조금 헤아려서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귀를 내어주는 한 호흡의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오늘 하루, 당신이 듣는 이야기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