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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유익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이나 연설의 오프닝으로 사용되었던 “Every morning in Africa...”로 시작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초원이 새벽빛으로 밝아올 때, 가젤 한 마리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가젤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잡아 먹히게 될 것을 알기에 긴장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초원의 다른 곳에서 사자 한 마리도 잠에서 깨어납니다. 사자 역시 가장 느린 가젤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주리게 될 것을 알기에 오늘도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당신은 가젤인가요? 사자인가요? 가젤이든 사자이든 상관없이, 확실한 것은 경쟁자보다 빠르게 달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현대 사회의 경쟁과 속도전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씁쓸했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생존 경쟁은 필연적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을 발달시켰습니다. 불안은 현대 사회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단순히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발전시켜 온 적응적 반응입니다. 불안은 파수꾼과 같아서 위험을 감지했고, 빠르게 싸우거나 도망가는 행동을 취하도록 도왔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집단 내에서 배척당하면 생존 확률이 낮아지게 됨으로 타인의 평가나 사회적 지위에 대해 신경 쓰는 것은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했습니다. 우리는 불안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감정을 캐릭터화하여,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조화를 재미있고 통찰력 있게 그려낸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 있습니다. 2015년에 개봉한 첫 번째 영화가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다섯 가지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2024년에 나온 ‘인사이드 아웃 2’는 사춘기에 발현되기 시작하는 복잡한 감정을 보다 세밀하게 탐구합니다. 이 시기에 ‘불안’은 가장 강력하게 부각되는 감정입니다.


라일리가 13살이 되어 새로운 친구들, 스포츠팀,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 불안은 그녀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 새롭게 등장합니다. 기존의 감정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그녀를 조율하려 하지만, 불안은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날지도 몰라”라며 하며 끊임없이 미래를 예상하고, 가능성을 분석하며, 라일리에게 더 잘해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라일리의 내면에서 “I am good enough”와 “I am not good enough”라는 두 개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그녀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불안은 “나는 충분하지 않아”라는 생각을 부추기고,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합니다. 결국 폭주하는 불안은 라일리의 조절 기능을 과부하 상태로 몰아넣어 정상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이 없다면 라일리는 자신을 성장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동력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불안은 라일리가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단단한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결국, 성장의 과정에서 불안은 피할 수 없는 동반자인 듯합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 작동 동력은 불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뒤처질까 두려워 학습을 앞당깁니다. 초등학생도 영어 유치원과 수학 학원을 전전하고, 중학생들은 고등학교 과정까지 선행 학습을 마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불안해하며 준비해도 불안은 결코 해소되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나가도, 누군가는 두 발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속도 경쟁은 결코 끝나지 않으며, 결국 많은 사람들이 무기력과 번아웃을 경험합니다. 한국사회의 불안은 우리를 전 세계적으로 개발도상국 중 유일하게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라는 영광을 안겨준 강력한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아픔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인류의 정치경제와 사회문화 시스템의 작동 원리가 경쟁에 기반하고 있기에 남보다 빠르다는 것은 분명한 강점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미래를 불안해하며 남들보다 서두르고 미리 준비한 덕분에 얻는 유익이 큰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교훈에, 어떤 이는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새에 잡아 먹힌다고 응수하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빠른 자가 기회를 더 많이 얻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빨리빨리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을 염려해서 ‘더 빠르게’ 살기를 포기한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옛 속담을 교훈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아프리카 초원으로 돌아가 보죠. 사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달리기만 할까요? 사자는 하루 중 거의 20시간 이상을 느릿느릿 움직이거나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합니다. 가젤 역시 무리와 함께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사자이든 가젤이든 전속력으로 달리는 시간은 아주 적은 순간일 뿐입니다. 초원의 삶은 결코 쉴 새 없이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긴 호흡을 가지며, 삶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느림'이 대부분입니다. 한 순간의 빠르기를 위해서는 열 순간의 느림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느림이 진정한 빠름을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방향에 있습니다.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빠름은 오히려 독이 됩니다.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결국 엉뚱한 곳에 도착했다면,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닐 것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시속 200km로 달려도, 잘못된 길 위에 있다면 그 속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반면, 목적지를 알고 차분히 걷는 이는 결국 먼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속도는 결국 방향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은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도달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이 어디인지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향해 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방향과 속도를 정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세상이 요구하는 방향과 속도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건강한 나무는 기름진 토양에서 자라듯이, 진정한 빠름은 느림의 자양분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느림의 역설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빠르기 위한 느림 말고, 느림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가치는 무엇일까요?


최근에 캄보디아 씨엠립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동남아는 1월이면 건기인지라 한국의 화창한 여름날처럼 햇살 아래서는 덥지만 그늘은 시원한 그런 쾌적한 날씨였습니다. 동료 중의 한 사람이 낯선 도시를 알려면 자전거를 이용해야 한다고 하여, 호텔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나섰습니다. 골목골목을 구경하다가, 하천 옆의 근사한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마을 시장의 노점상 아주머니로부터 열대과일 잭프루트를 사서 맛있게 먹기도 하였습니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느린 삶은 우리의 인지 기능과 정서적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뇌는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할 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지속적인 자극에 노출되면 피로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천천히 사고하고 행동할 때, 우리의 뇌는 보다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입니다. DMN은 우리가 멍하니 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네트워크로, 자아 성찰, 창의적 사고, 기억 통합 등에 기여합니다. 빠르게 움직이며 바쁘게 지낼 때는 이 네트워크가 활성화될 시간이 부족하지만, 천천히 사색하고 휴식을 취할 때는 이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며 보다 깊은 감동과 통찰을 선사합니다. 캄보디아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행복해지는 것은 뇌과학적으로도 당연합니다.


느림이란 단순한 지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조화를 찾는 과정입니다.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정교하게 만들어가며, 더 단단한 의미를 찾는 시간입니다. 느림 속에서야 비로소 본질이 보이고, 깊은 깨달음이 탄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매일매일 멈추어 호흡을 고르고, 조용히 보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서, 하늘과 바람과 움직이는 풍경을 천천히 느끼면 좋겠습니다. 분주한 일상에서 단 10분이라도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먼 곳을 응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재정비될 시간을 갖습니다.


마음챙김 명상은 삶의 속도를 늦추는 쉽고도 좋은 방법입니다. 지금 손에 잡은 물건의 감촉을 느끼고, 걸음의 무게를 의식하며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현재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일상의 작은 동작에도 의식을 기울이면, 사소한 순간들이 의미 있게 살아납니다.


스마트폰은 우리를 세상과 연결되게 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인지 기능을 방해할 때가 많습니다. 하루 중 몇 시간은 전자기기를 내려놓고 책 한 권을 펼쳐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손끝에서 전해지는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문장 사이사이를 천천히 음미하며 작가와 대화를 하며 책을 읽는 시간은 온전한 몰입을 연습하게 합니다.


직접 요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차가운 물에 채소를 씻어 다듬고, 칼질할 때 도마에서 나는 경쾌한 소리를 즐기고, 지글거리는 맛있는 소리와 향을 들으며 간을 맞추는 시간은 세상의 번잡함을 잊게 합니다. 확실히 요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정성스러운 한 끼를 만들어가는 동안, 마음에도 작은 평온이 찾아옵니다.


도덕경 11장에서 노자는 “바큇살이 서른 개라도 바퀴 가운데 비어있어야 수레가 굴러갈 수 있고, 방을 지을 때 벽을 세우지만 공간이 비어있어야 방으로 쓸 수 있다. 비어있음(無)이 유용함(有)의 쓰임을 만든다."라고 하였습니다. 실체가 있는 것(유, 有)만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실상은 비어있는 것이 더 큰 가치를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컵이 비어있어야 물을 담을 수 있듯, 마음이 비어있어야 새로운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경쟁적 세상에서 나만의 방향과 속도를 찾고 유지하는 일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느림을 가까이하여 불안을 적으로 삼지 말고 친구로 삼아 지내는 지혜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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