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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elo Jun 12. 2020

밴드 활동을 하면서 만난 중국인들

음악은 거들 뿐, 마음 맞는 사람 찾기 참 어렵다

중학교 때 엄마의 권유로 드럼을 처음 배우면서 고등학교 때 꼭 밴드부에 들어가리라 다짐했다. 그때부터 나는 꾸준히 밴드 활동을 해왔고, 지금 내 지인의 70%는 아마도 밴드 활동을 통해 알게된 사람들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함께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전에 함께 연습하고 공연했던 순간들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밴드 활동을 계속 하는 것이 꿈이다. (나름 소박해보이지만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싸이월드에서 줍줍한 고등학교 밴드부 연습실 사진


1. 별장에서 합주를

2015년 9월 나는 중국 가흥에 왔고, 노잼인 이 작은 도시를 떠나 매주 주말마다 상하이에서 밴드 활동을 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렇게 만난 한 밴드. 우유와 요구르트를 만드는 작지 않은 기업의 임원이자 7살 딸을 가진 리더의 별장은 홍차오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칭푸(青浦)에 위치했다. 매주 일요일 10시에 BMW를 몰고 다니는 홍콩 출신의 베이시스트가 나를 태워 함께 그의 별장에 도착하면 지하에 있는 합주실로 가서 함께 곡을 만들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리더의 와이프나 어머니께서 모든 멤버들의 밥을 챙겨주셨다. 아무튼 그렇게 몇 달 함께 했지만, 쉬는 시간마다 피워대는 담배 연기와 매주 주말 하루의 반나절을 상해 외곽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나와 맞지 않아 그들과 작별했다.

그 때 그들의 꿈은 노래방에서 밴드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밴드 이름으로 된 녹음실을 갖는 것 크게 두가지였다. 2018년. 그들은 이 꿈을 모두 이뤘고, 영화 ost 삽입곡도 한 곡 작업했다. 물론 충분한 자본의 힘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겠지만 그 때 말한 모든 꿈을 완성했다.


2. 자유 영혼 기타리스트

산동 출신의 기타리스트는 평소 기타 레슨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며 상하이에서 Blues 잘 치기로 나름 이름난 인물이었다. 봄에 밴드를 막 결성했기 때문에 합주할 때마다 여름이 다가오면 피서를 가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2016년 상해 여느때처럼 뜨거운 여름이 왔고, 그는 더위를 피해 쿤밍 리장(丽江)으로 갔다. 그리고 한 달이 넘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약도 없이 그는 그 곳에서 여자 친구도 만들고 1년을 넘게 지냈다. 사실 음악적인 성향이 맞지 않았기도 하고 마침(?) 이 한 멤버의 부재로 공백이 생겨서 나는 자연스럽게 탈퇴하게 되었다. 이후 남은 멤버들은 웹디자이너인 드러머 친구와 은행에 다니는 기타리스트 친구를 영입해 90년생 멤버들로 이뤄진 중국풍의 포스트락 밴드 From here to nowhere (无栖) 를 결성하였고, 지하에 합주실이 딸린 집을 구해 함께 모여살았다. 이 중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는 작년에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3. 네오소울, 새롭다

또우반(豆瓣)에서 밴드 멤버를 구하는 글을 눈 씻고 찾아봐도 괜찮은 팀이 없다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Neosoul 밴드 멤버를 구한다는 글이 눈에 띄어 올려놓은 데모를 들어봤다. 예전부터 힙합/소울밴드를 하고 싶었지만 실력도 안되거니와 같이 할 사람들을 찾을 수 없어 기회 조차 없었는데 데모 굉장히 신선했다. 이전에 접해본 적 없는 스타일의 음악에 신선한 밴드 멤버 구성이 무엇보다 끌렸다. 팀 리더는 먼저 나에게 악보를 먼저 보내주며 연습해오라고 했고, 합주를 할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알고보니 그는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고 샘플링과 미디로만 곡을 작업하는 베드룸 뮤지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하 스페셜리스트인 색소포니스트와 상하이 유명 호텔에서 일하는 재즈 싱어 모두가 그의 잔소리에 귀기울였다. 한국에서 대충 준비해서 합주를 하러가도 연주할 수 있는 카피밴드만 해오던 나에게 요구되는 디테일한 터치와 크리에이티브한 연주법은 조금 스트레스였지만 나름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 와중에 팀 리더의 요구사항에 맞는 베이시스트를 찾지 못해 한 두달을 계속 허비하다가 결국 그가 갓 태어난 아들 육아에 전격 돌입하면서 팀은 해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는 계속 집에서 혼자 실험적인 음악을 계속 작업을 해서 들려주기도 하고, 상하이에서 음악하는 많은 친구들을 소개시켜주면서 마치 사이버친구가 되었다. 올해는 이 친구와 같이 작업한 곡이 하나 정도는 나올 것 같은데 조금 기대 된다.


4. 피치일루젼, 인연은 이렇게 시작

항저우에 슈따웨이(舒大卫)라는 남자 Citypop 싱어송라이터가 있다. 음악업계에 종사하는 친구가 한동안 그에게 푹 빠져있어서 들어봤는데 나름 달달하고 좋았다. 그러다 그의 상하이 공연 소식을 듣게 되었고 당시 공연장에서 일하던 그 친구가 그를 보러 오라고 초대했다. 그 날 나는 피치일루젼(桃子假象)의 보컬인 췐췐(圈圈)을 만나게 되었고, 당시에는 그냥 나는 HFigures라는 프로듀서 그룹에서 재즈힙합 앨범을 만든 적이 있고 드럼도 칠 줄 안다고 몇 마디 나눈게 다였다. 그리고 약 반년이 흐르고, 췐췐이 나에게 드러머가 되어줄 것을 제안했다. 밴드 활동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나는 또 다시 밴드를 하게 되었다. 이미 정규 앨범 발매를 위한 10곡을 다 써놓은 상태라 편곡 작업만 같이 하게 되었다. 직접 창작 밴드를 해보거나 레코딩 경험이 없는 나는 이렇게 2019년 8월 Peach Illusion의 정규앨범《100%》으로 중국에서 첫 스튜디오 레코딩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들을 수 있다!

중국에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사실 이외에도 밴드를 하고 싶어서 연락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외딴 나라에 떨어졌으니 발버둥 치는 수 밖에). Math Rock이라는 장르를 할 사람을 찾는다는 밴드도 있었고, Brandon Boyd와 목소리가 너무나도 비슷한 외국인 보컬이 있는 팀에게도 연락했었지만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느니 곧 귀국을 하는데 몇달만 활동해도 괜찮냐느니 등등 갖가지 이유로 인연이 닿지 않았다. 실력은 둘째치고 음악 취향이나 상황이 맞아야 밴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은 한국과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이래저래 흘러흘러 지금 피치일루젼의 드러머가 되었고, 사실 후발주자로 뒤늦게 영입된 케이스라 밴드의 방향성이나 앨범의 디자인 컨셉 등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들기는 어려운 법이다. 다만 한국과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무언가 함께 만들어 간다는 데 의의를 두고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 글쎄, 내가 중국에 있는 동안은 계속 이 밴드를 할 것 같긴한데 앞으로 얼마나 더 재미있는 일들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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