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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elo May 19. 2020

상하이는 좋아도 상해 남자는 싫어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나에게 무례한 그들과의 에피소드

photo by njelo


중국 화동지역에서 살기 시작한 이상 상하이 친구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생길 거라는 착각. 그러나 일하는 곳이 상하이도 아니고, 매주 주말마다 상하이에 놀러가도 진정한 '상해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5년을 이 곳에 살다보니 몇몇 레알 상하이니즈를 알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솔직히 별로다... 물론 좋은 친구로 남아있는 몇몇 상하이인도 있지만 그들의 단점까지 내가 모두 커버할만큼의 관용적인 마인드를 갖는 건 나에게 조금 어려운 일이지 싶다.



가장 처음 알게 된 상하이 남자는 네오소울 밴드의 리더. 또우반(豆瓣)이라는 한국의 Mule처럼 밴드 멤버를 찾을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었다. 그가 직접 작곡한 곡도 굉장히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색소폰과 DJ까지 함께하는 독특한 밴드 구성이라 그 밴드에서 내가 건반을 치게 되면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을 거 같았다. 그는 합주 이전에 악보를 먼저 보내왔고 연습을 해오라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첫 합주에 참여했는데, 시작부터 '나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야. 너는 내가 시키는대로 치면 돼' 라고 말하더니 험상궂은 인상으로 나를 뚫어져라 지켜보면서 같이 합주하고 있는 드러머와 색소포니스트는 그저 나를 트레이닝하기 위한 들러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대충 연습해가서 합주 때 끼워맞추기 식 연주를 해오던 나는 새로운 밴드 환경에 엄청난 압박감이 들었고, 즐기려고 갔더니 죽자고 달려드니 왠지 발을 잘못 담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서너번의 합주를 하면서 베이시스트도 바뀌고, 새로운 보컬도 왔다가고 결국 두 달만에 그가 육아에 힘쓰느라 합주를 못하겠다는 통보와 함께 이 밴드는 해산하게 됐다.

참 이상했다. 음감도 없고 악기도 다룰 줄 모르는 그가 쓴 곡은 너무나도 고퀄이었고, 실력있는 다른 연주자들이 모두 그의 말을 따랐다. 상해지하철공사에서 일하는 그는 다방면으로 아는 것도 많고, 항상 모든 대화를 주도해나갔다. 한국에서 온 외국 여자 사람에 대한 친절함 따위는 1도 없었다. 다른 중국인들과는 너무 달랐다. 마치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사는 듯했다. 모두가 그를 존중하고, 그는 아무도 존중하지 않았다. 물론 그를 통해 많은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중국에서 음악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응원해준 친구가 되었지만 처음 만난 상하이 남자의 차갑고 냉소적인 이미지는 그로부터 각인되었다.




'상해 남자'를 논할 때, 1년 넘게 같이 함께 살아온 룸메이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같이 팀을 이뤄 앨범도 발매했고, 좋은 친구로 남아있지만 조금 더 늦게 알게 된 다른 친구들보다 왠지 모를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 30대 후반의 그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일단 번듯한 외모로 쉽게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든다. 그리고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은 매번 동시에 이루어진다. 여자친구가 있어도 항상 전 여자친구나 새로운 여자와의 만남을 갈구한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여자친구에게 얼마나 잘하는지를 항상 내게 어필하며 '상해 남자'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려 노력했다. 그는 정확하게 맺고 끊는 것이 없다. 전 여자친구와 술 한잔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으며, 지금 여자친구와 헤어져도 그는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내가 봐온 그는 정말로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함께할 사람을 찾지만 사랑을 찾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기브 앤 테이크인데 주지는 않고 받으려고만 한다. 상해 여자는 또 싫다고 한다. 그렇게 상처를 준 타지 중국 여자들이 대체 몇인지. 그의 연애관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을 듯하다. 그리고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할 때 감정선과 관련된 이야기는 일체 꺼낸 적이 없다. 매번 새로운 여자친구의 돈과 비즈니스에 대해 내게 자랑한다. 그리고 여자들을 꼬시기 위해 항상 본인이 하고 있는 음악과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마치 자랑하듯이 늘어놓는다. 어차피 결혼을 목적으로 만난 것도 아닌데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지. 결국은 본인의 부족함을 여자 친구를 통해 채우려는 것일테지만, 곧 마흔이 될 이 친구 결혼은 할 수 있을런지 정말 걱정이다.


그에게는 갓 스무살이 된 어린 이복 동생이 있다. 본인이 새 이불을 바꾸거나 큰 짐을 옮겨야 할 때 항상 동생을 불러내곤 했다. 작년 추석 때 회사에서 받은 식용유와 쌀을 내가 그 친구 집으로 보내주려고 했다. 기름은 택배로 부칠 수 없어서 일단 집 거실에 두고 나중에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라고 했다. 한달이 지나도 거실의 식용유는 계속 그자리에 있었고, 또 다른 룸메이트가 말하기를 '아마 이걸 들고 지하철 타기에는 모양이 빠져서 안가져 가는 것 아닐까' 라고 말했다. 이제 나는 그 식용유를 내 눈 앞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어 쓰레기장에 갖다버렸다. 그리고 2주 정도 지났을까, 동생이 집으로 왔다. 친구는 나에게 그 식용유의 행방을 물었고 나는 네가 필요 없는 것 같아서 이미 갖다버렸다고 했다. 굉장히 어색한 상황이 되었지만, 그걸 가지고 가라고 기어코 동생을 부른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는 네 동생은 진짜 착한 것 같다고 어떻게 한거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는 동생이 형에게 '당연히' 해야 할 도리라고 말했다. 성이 다른 두 형제, 같이 자라오지도 않은 그 둘 사이에 그들만의 형제 간의 우애가 있겠지만 1년을 넘게 함께 살면서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버리거나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앞으로도 그 동생은 형을 위해 조금 더 수고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바로 지난 주 업무상으로 알게 된 상해 남자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매년 그 대단한 모 브랜드의 오더를 받기 위해 바이어가 지정한 써드 파티 (3rd party)의 오딧을 진행하게 된다. 이 Audit은 일반적인 회계 감사가 아니라, 노동과 환경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는 연례 감찰 시스템으로 통과하지 못할 경우에는 오더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벤더 회사에게 굉장히 중요한 업무다.

애초 2월에 진행하기로 했던 일이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졌고, 구정 연휴 이후 한국 주재원들의 중국 복귀 뿐만 아니라 현지 직원들의 출근까지 중국 정부에서 금지시킨 터였다. 모두가 처음 겪는 사태라 타임라인을 계획하기도 어렵고 매일 현지 직원을 통해 정부 측의 통지를 확인하고 예정된 오딧을 어느 시점으로 연기해야하는지 계속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위챗으로 그 오디터와 연락이 닿아 매일같이 회사의 상황을 '보고'할 수 밖에 없었고, 슈퍼 을 乙인 나는 비록 전화 울렁증이 있지만 메시지만 보냈다하면 바로 전화를 걸어오는 그 오디터의 전화를 거의 매일같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마침 한국에서 중국 우한에 마스크를 지원해준 찰나여서 다행히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메시지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중국인과 업무적 소통시에는 90%의 잡담을 곁들여 줘야만 내가 얻는 10%의 답을 얻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후 내가 중국에 돌아와 28일간의 호텔 및 자가 격리를 끝내고 출근한 이후 오딧 일정을 다시 확정했고, 잠시 그와 연락하지 않을 수 있어 기뻤다.

드디어 5월 중순, 몇 시에 도착하는지 몇 번을 물어도 그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지금 산동성에서 다른 업체 오딧 업무로 바쁘다며 뜬금없이 점심 때 먹은 한국 음식 사진을 찍어보내오는(??) 그는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지 확인도 못한채 디데이가 되었다... 당일 아침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보안 직원이 대략 3XL 사이즈의 언더아머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출근 시간 8시가 되기 훨씬 전에 이미 도착해 회사 구석구석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마치 최첨단 구글 글라스라도 낀 사람 마냥 작고 큰 문제들을 다 찾아내 우리를 위협했다. 물론 찾아낸 문제들이 진짜 문제인 것도 사실이고, 그의 논리도 디테일하고 정확하니 반박하기 어려웠지만 모 브랜드를 생산하는 중국 내 백 몇십 공장 중에 그 정도의 문제 하나 없는 공장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점심시간에 중국인들끼리 먹고 오겠다고 식당을 예약해줬는데 1시간이 훌쩍 넘어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뒤늦게 들어와서 계속 레드 카드를 날릴 것만 같은 위협적인 발언을 하며 오후 내내 쫄깃한 하루를 보냈고, 조금 서둘러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그 빅사이즈의 몸은 역시 술로 빚어진 것이 맞았다. 알고보니 점심 때도 이미 황주와 맥주를 여러 병 클리어 하고 오느라 늦었던 것. 술쓰레기인 나에게 바이주를 들이밀며 '한국인이 어떻게 술을 못 마실 수 있냐'고 계속 마실 것을 권유했다. 나를 케어해주는 우리 회사 직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미니미니한 바이주잔 서너잔을 마셨다. 그리고 도와주러 온 '마스터키' 같은 우리 회사의 전 직원이 술에 취해 그에게 2차를 권유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또 따라가게 되었다. 역시나 그 직원은 2차에서 헤롱거리고 이 3XL 진상은 내가 호텔에 바래다줘야 하는 상황. 이미 시간은 12시가 되었는데 재수가 옴붙은 하루답게 호텔에서 예약 확인도 안돼서 그가 본인의 카드로 예약을 시도했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하는데 자기가 신분증이 하나 더 있으니 그냥 예약하고 같이 묵자는 거였다. 나는 집이 있는데 왜 호텔에 묵어야 되며, 왜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본인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진짜 슈퍼 갑질에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카운터에서는 그가 광저우에 다녀온 기록이 있어 호텔에 묵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바로 하루 전부터 건강코드와 휴대폰 이동 기록을 확인해서 화동 지역을 벗어나면 체크인을 할 수 없도록 새로운 통지가 나왔다는 것이다. 정말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나에게 이런 시련을. 바로 길 건너에 있는 호텔에 연락해 방 하나 예약 가능한 것을 확인해서 알려줬는데도 이 진상은 굳이 본인이 직접 예약을 하겠다고 벅벅 우겨 15분을 더 낭비했다. 날씨도 좋으니 차를 타지 않겠다고 굳이 또 자전거를 타고 호텔까지 이동했다. 호텔 입구까지 바래다줬더니 너도 자고 가라는 어이없는 농담을 치는데 진짜 무례하구나라는 생각과 한국이었으면 너 이 xx 고소했다... 그러면서 내게 상하이에 매주 가면서 어떻게 남자친구가 없냐, 섹스 파트너도 왜 만들지 않느냐는 무례한 발언들을 서슴없이 계속 뱉었다. 내가 보수적이라 그렇다고 했더니 '이렇게 보수적인 한국 여자는 처음봤다'는 되도 않는 말을 또 지껄여댔다. 어이가 없었지만 나 하나때문에 회사 매출 절반을 날려버릴 수도 없으니 그냥 나는 특수한 한국인이라며 되도 않는 드립으로 웃으며 마무리 하고 집에 갔다. 이 모든 게 내가 가흥이라는 작은 도시에 이 나이 먹도록 지내면서 연애도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딱지가 나서 잠도 오지 않는 밤이었다. 그리고 서울 말고는 다 시골 아니냐는 한국 비하 발언에 진짜 다시 한번 '상해우월주의'를 느꼈다.




이전에 한 영국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상해 사람들은 Where are you from? 이라고 물었을 때 I'm from China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I'm from Shanghai, I'm Shanghainese" 라고 말한다고.

그래 너희 잘났다. 结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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