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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한끼 Apr 04. 2024

기숙사로 떠난 딸

잘 가라 내 딸

기숙사로 떠나는 딸(2024.3.20.)


딸이 기숙사로 떠났다.


설렘 반, 기대 반 조금 상기되어 바알 간 얼굴을 하고선

"엄마 나 갈게." 하며 씩씩하게 떠났다.


잠은 잘 자고 잘 먹고 지낼 수 있을까?

룸메이트와 트러블 없이 지낼 수 있을까? 등등

(정리정돈 못하는 녀석이라..)

그런 걱정은 오로지 내 몫인 듯싶다.


처음 기숙사에 가겠다고 했을 때 내키지 않았다.

아이의 생각보다 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통학거리, 소요되는 시간, 아이의 체력, 공부시간 확보 등 여러모로 보나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 반친구들이 좋은 아이들이라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학교에 입소요청을 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날짜가 정해졌다.




일주일 전부터 침구류를 구입하고

욕실용품, 각종로션, 스탠드, 타월 등등 차곡차곡 챙겼다.

입소날에 차로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큰아이가 매일 조금씩 챙겨가더니

마지막 남은 침구를 캐리어에 넣고

그렇게 씩씩하게 떠났다.



매주 금요일이면 다시 오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묘했다.



.

.

.

.

.


결혼 초부터 아이를 그토록 원했지만 임신이 잘 되지 않았다.

1년이 지난 후 애들 아빠와 함께 불임클리닉에 방문해서 각종 검사를 했다.

인공수정 먼저 해보고도 안되면 시험관시술을 하자고 하셨다.


다행히 결과는 둘 모두 정상이라

1년만 더 기다려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때는 임산부만 봐도

유모차 타고 있는 아기들만 봐도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살짝 고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가 간절했다.


또 그렇게 1년이 흘렀을 무렵

전남편과 나는 시댁문제와 다른 문제 등으로 사이가 나빠져있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바라고

본인의 살아가는 방식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을 때였다.

서로 엇나가다 결국은

앞으로 함께 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무렵

큰 아이가 찾아왔다.


임신 사실을 확인과 동시에

부부 사이에 여러 문제들은

서로 배려하며 극복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큰 아이는 무척 예민한 아이였다.

돌 지나서까지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비위가 약해 잘 먹지 않아 더 자주 아팠다.

그런 첫 아이를 보물처럼 키웠다.

주위에서 뭐라 할 정도로 극진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예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는 엄마의 사랑도 받았지만

아빠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딸이 태어나던 날,

애들 아빠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딸이 한밤중에 먹고 싶은 걸 말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다녀오는 딸바보 아빠였다.


큰 애가 기억을 할지는 모르겠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지만

자신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키웠는지


언젠가 아이들에게

"너희들 사랑받고 큰 거 같아?"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큰 아이 왈..

"딱히 말하라고 하면 모르겠는데 느낌으로 알아."

그 말에 둘째도 고개를 끄덕였다.


큰아이는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친구들 사이에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기숙사로 떠나기 전,

본인은 사랑받는 걸 잘하는 거 같다고 말한다.


사랑을 많이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받을 줄도, 줄 줄도 안다.

나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도 같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그런 상황이 불편하거나

한없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 기대와 사랑이 사라질까 두려워 도망가버리거나

혹은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한다.


사랑을 주는 것 역시 서툴다.

통제하려 하거나 혹은 매달리기도 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히 나와 다르게 딸아이는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사람관계라는 것이 순탄하기만 할까?

딸의 인생에도 어려움이 닥치고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 절망도 하고

아프고 힘든 시간이 존재할 것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잘 이겨낼 거라 믿는다.


고작 기숙사를 보낸 거지만

앞으로 함께 할 날이 길지 않을 것 같아

만감이 교차하는 날이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딸이..

힘들고 지칠 때 쉬어갈 수 있는 쉼터,

그곳에는 엄마인 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열심히 살아야 할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큰아이가 떠나고 이제 아들과 둘이 지내게 되었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리라..


잘 가라 내 딸.

엄마는 널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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