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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한끼 Sep 22. 2024

이혼을 후회하세요?

아니오 가끔은 네


회식날이었다.


공교롭게도 동장님과 팀장님들과 함께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사실 나는 그분들이 어렵지(?) 않다.

동장님은 셋째 언니랑 동갑,  팀장님들은 동생과 동갑이라...

오히려 그분들이 나를 어려워할까 봐 되도록 피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다들 비슷한 또래의 자녀가 있었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티 내지 않고 아이들 이야기로 풀어나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혼을 안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혼을 안 했더라면...

더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

배려 속에서 파생되는 불편함(?)도 없었을 텐데..


그 생각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이어져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꼭 서류를 정리했어야만 했을까

이혼하지 않고 무기한 별거했더라면 어땠을까?


서류만이라도 남겨두었더라면

아이들과 나의 사회생활에 좀 더 순탄했을 텐데,

사회적 편견을 피해 갈 수 있었을 텐데...




난 왜 전남편의 실체를 모두 파악하려고 들었을까?

진실을 위해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갈 생각이었을까?



진실을 덮고 두 번, 세 번 모른척했더라면..

지금 더 나은 일상을 살고 있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날 끝까지 밀어붙이게 했을까?


당장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기에도 불안했고

덮고 못 본 척 지나치기에도 미래를 알 수 없어 불안했다.



불안은 눈덩이처럼 커져서 나를 짓눌렀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모든 사실을 파헤쳐고 진실을 마주해야 불안이 멈출 것만 같았다.




결과가 어떤 것이든,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미래를 그릴 수만 있다면..

불안의 고통에서 벗어나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모르면 모를까..

모든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모른 척 덮고 지낼 순 없었다.

철저히 부정당하고 무시당했던 자신의 상황을 눈감고 덮어버리면 그 뒤에 연달아 생겨나는 감정들.(비굴함. 무기력감, 자책감 등)에 짓눌러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질 것이다.


겁도 많고 소심한 스스로를 이혼할 밖에 없는 상황으로  점점 더 내몰았다.




20여 년 전, 신혼시절 배우자의 외도로 큰 상처를 받은 분이 있다.


그녀는 줄곧 사랑으로 보상해 달라고.. 배우자에게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배우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유의 지대로 살아간다. 지치고 힘들어 아이들에게.. 지인에게.. 주변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호소한다.


그분은 여전히 과거의 고통 속에 머물러 있고 배우자는 여전히 즐기며 산다.  겉으로는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완전체 가족의 모습이지만 그녀의 삶은 불행해 보인다.


얼마 전, 이혼한 나에게 그녀는 질문을 던졌다.


"이혼한 걸 후회하세요? 힘들지 않으세요?"



그녀의 속마음은


"이혼을 후회하시죠?"

"제가 참아온 게 맞는 거 같죠?"

"당신이 불행해야 제 선택이 옳은 거니까.. 당신이 후회한다고 힘들다고 말해주면 좋겠어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후회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즐겁고 행복할 땐 이혼 잘했다 싶고 힘들 땐 후회할 때도 있어요.!"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던지 그녀는 실망한 듯

결국 이도저도 아니면 안 하는 게 맞는 거 같다고 대답한다.




나는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녀가 조금은 더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회식하고 돌아온 날 그녀의 질문을 받았더라면

후회가 된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오늘 같은 보통의 날엔 후회가 없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어쩌면 매일 상황에 따라 답이 다를 수도 있겠다.



지금 당장 후회하냐 안 하냐가 중요할까?

그 답은 천천히 찾아갈 생각이다.


30년쯤 뒤에.. 이혼해서 얻게 된 것과 잃은 것들을 되짚어보고 결과적으로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알 수 있을 듯하다.


이혼 자체가 꽃길이 아니다.

꽃길은 내가 만들어나가야 하는 거지 백마 탄 왕자가 마법처럼 짠 하고 등장해 데려다주지 않는다.


비어있는 도화지에 내가 벌어 구입한 붓으로 내가 원하는 색을 입혀 그림을 그리는 거지 다 완성된 그림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말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비상근무 서느라 허리통증이 다시 도졌다.

동료들과 비옷 입고 순회하며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배우자 경제력에 기대어하지 않았을 공부 그리고 직업.

이번 주말은 일 하나만 보더라도 이혼이 후회 되지 않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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