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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 Jun 17. 2022

여행 (풍경)

가볍게 가운을 걸쳐 체온을 유지하고 나서야 침대밖을 나선다.

그렇게 창문을 열며 힘껏 숨을 들이쉰다.

뒤 베란다는 뾰족하게 솟은 동산이 햇빛을 받아 꽤나 웅장해 보인다.

기개와 위엄을 품을 장군처럼 기지개를 편다.

포트에 스위치를 켜고 앞쪽 베란다로 향한다.

바다를 한 가득 품고 있는 창문을 열지 않을 수 없다.

멀리 배 한척이 가까이 다가 온다. 마치 아침이 시작하는 속도 같다.

가로수 아래 몇 사람은 무리를 지어 조깅을 하고 새 2-3마리도 무리를 지어 하늘을 누빈다.


여행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다른 풍경이지만

마음가짐은 늘 평화를 향해 손을 휘이 젓는다.


차가운 공기는 깨끗하다.

공기가 차가울수록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고 난 믿어왔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아 폐 구석구석에 청량감을 흩뿌려주고

미세한 먼지까지도 깨끗하게 닦아주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잠에서 깬지 얼마되지 않은터라, 찬 기운이 부담스러웠지만,

바람을 맞으면 하루를 시작하는 삶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추위는 모를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창문 너머의 아침 풍경이었다.
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지, 아니면 이 곳에 남아 계속해서 일을 진행할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50% 확률도 99% 확률도 결정의 순간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풍경이 내 결정을 움직 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 날의 혼란은 아침의 풍경과는 다르게 흘러갔기에 낭만으로 마음을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끓여 놓은 물은 알맞게 뜨거웠다. 머그잔에 가득 물을 채우고, 티 백을 하나 넣어주면 그만이었지만, 그 날따라 티백에서 우러 나오는 루이보스를 한 참이나 처다 보았다.


컵을 들고 다시금 창문 너머를 바라 보았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에 그만 나는 결정을 했다고 착각했다. 우려진 티백처럼 잠시나마 물과 하나라고 착각했다. 분명 나는 공간과 분리되어 있었는데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잠시 현실의 선택을 잊고 싶었다.

좀 처럼 결정할 수 없는 혼란에도 시원한 바람과 파도는 여전했다.



복잡했던 시간들을 지나고 나면 한 문장이 남고 한 컷의 이미지가 남는다.
많은 가지 치기를 통해 알짜가 남는다. 기억이 더 간결해진다.

간결하다고해서 정확하진 않다. 몇 인분을 주문했는지 몇 시에 밥을 먹었는지,

박물관 전시관에 입장료는 얼마였는지 기억은 흐려지기도 한다.
남아 있는 기억이 얄궃게도 내가 원했던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기억은 계속 단순해진다.


시간이 지나 치열했던 흔적을 남겨둔 그때의 여행을 계속 그리워 했다.

그 뒤로 틈만 나면 그 숙소를 다시 찾았다.

나를 비춰 줄 수 없는 바다는 그대로였지만 나의 기대 나의 흔적만이 그때를 어렴풋이 기억했다.

그러나 그 날의 여행은 그 날로 족했다.


다시 돌아와도 그 때의 내가 아니였음을 이제는 내가 변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바다가 유난히 파아랗다. 나의 심정의 변화를 아는지 파아란 바다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끝 없는 만족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착각은 쉽다. 지속적인 기쁨이나 행복따위가 끊임없이 밀려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나 가능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없듯이

여전한 바다가 난 될 수 없었다.


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 모금 티를 넘기고서야 쓴 맛을 제대로 느꼈다.

다시 티백을 우린 탓에 티의 깨끗함이 희석됐다.


결정은 결정 자체의 어려움보다 결정 한 후에 일어 날 일에 대한 걱정이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은 우리 곁에 생각보다 많다.

걱정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앞을 향해 걷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여행을 떠나는 날은 다시 돌아와야 하는 날과 같은 지점에 있다. 다시 돌아오는 것이 여행의 여정이 된다. 돌아오는 장소가 같으니 착각도 가능하다.  


모로코 사막  가운데,  하늘에 별을 보며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을   단위로 생각하는 직장인은  몸으로 낮밤을 막아섰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비행기 시간은 정해졌고, 한국에 도착하는 시간도 예정되어 있지만, 그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온전히 모든 것을 잊고 현실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이상적인 일이다.
인간이 가진 스위치는 현실과 이상을 뛰어 넘을 만큼 정교하지 않다.

여행 중에도 일상으로의 복귀를 문득문득 생각하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며 보낸 지난시간을 다시  올리는 .
그것은 사막의  만큼이나 강렬해서 종종 그가 모로코 사막 모래가 얼마나 고운지를  올리면서도  걸음 떼기 힘들었던 마지막 날 밤의 묵직함을 동시에 간직하는 이유다.


푹푹 꺼지는 발걸음을 고뇌하던 지난 날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이제 그것은 전부 그의 일부가 되었다.


선택은 가치있는 것을 향해야 한다.
정답에 가까울 수록 재미 없는 이야기는 펼쳐질 가능성은 크다.
정해진 길을 걷는 것 만큼이나 안전하고 지루한 일은 없다.
예측 가능한 일은 불확실성이 커질때 그 재미도 같이 차오른다.


그는 이미 그가 안전하게 고국으로 돌아가 책상 앞에 앉아 일상에 복귀하여 살아 가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것이다. 완전한 여백을 만들  있는 용기 !  문장을 품어  것이 그에게 가장  수확이었으리라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기대는  순수하다. 이전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시간을 사는 것도 아닐텐데 떠날때마다 새로운 마음가짐, 기대감으로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의 마음을 순수하다는 단어 이외에 무엇으로 설명   있을까?

함께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석처럼 달라 붙다가도 같은 극이 되어 붙지 못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5명이었던 그룹에서 나는 혼자 게 되었다.  그렇게 취소하지 못한 비행기 티켓을 갖고 도쿄로 향했다.  마다의 이유로 여행이 불발되었지만  끝까지 여행티켓을 움켜 쥐었다. 강제성 없는 홀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All one = Alone alone은 두 단어였다. all one 본질적으로 온전히 혼자인 것, 홀로 지낸다는 것을 난 알게 되었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는 바로 혼자가 된다는 것이다.


 고독의 바른 길을 여행은 몸소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혼자서 하는 여행에서 타인을 향한 배려는 없다. 타인에게 묻지 않는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무엇을 보고 싶은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니, 사소한 감정소모는 줄어들었고, 에너지는 비축되었다.


난 그래서 어떤 여행지가 좋냐고 묻는 사람에게 혼자서 떠난 여행이라는 우문현답을 내 놓았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 깨달았다.


잡다한 골칫거리에서 벗어나 깊이 사색할  있는 곳에서 외로움이 아닌 고독을 실천해 보는것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여행의 풍경속에서  자꾸 스스로를 성찰하게 된다.그래서 여행이  깊어진다. 새로운 풍경이 나를 성장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난 여행을 내려 놓지 못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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