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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림 Jun 13. 2024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 왜 개정되어야 하나?

일반주주의 이익에 대해 회사의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진: UnsplashNadine Shaabana


저는 대형로펌에서 내부거래 부당지원 사익편취 사건,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 사건을 가장 많이 담당했던 변호사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계열사간 합병이나 주식교환 건에서는 기관과 개인 투자자를 위해 일했었고, 공매도 문제에 대한 사건도 맡았었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상장회사들의 극단적 저평가 문제

사실 이 문제들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해묵은 것입니다.


20년 전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은 취약한 지배구조(즉 거버넌스)와 부족한 주주환원이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하나 더 있었는데 회계 투명성이었습니다. 20년 후인 지금은, 이제 회계 문제는 많이 해결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취약한 기업 거버넌스와 주주환원 부족 문제는 해결되기는 커녕 더 악화되었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과 일본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뚫고 있습니다. 한국만 세계 자본시장에서 디커플링되고 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 드리면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 법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 그 핵심 원인인 취약한 기업 거버넌스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실상 실패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악화시켰습니다.


계열회사간 거래를 통해 개인 지배주주의 경제적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공정거래법으로 막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면죄부만 주어졌습니다.


핵심은 거래 조건이 어떤 회사에게 더 유리하냐 불리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은 회사, 지배주주의 개인회사로 일반주주들의 부가 이전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었는데 법이 일종의 허수아비 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법원에서 계속 무죄가 나왔습니다. 


공정거래법이 뒤늦게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은 회사와의 거래를 규제하려 했습니다. 이것을 사익편취규제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지분율만 낮추면 간단히 우회할 수 있었고, 그나마 주주간 이해충돌이 아니라 가격과 거래조건을 문제삼는 잘못된 논리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계속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내부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이 거래 조건이 너무 유리하면 불법이라고 하니 회사들은 가격을 너무 유리하지 않게 적당히 맞추고 대신 규모를 늘렸습니다.


규모가 큰 것도 ‘유리한’ 것인가에 대한 웃지 못할 논란이 계속되다가, 규모가 너무 커도 유리한 것이 맞다, 즉 불법이 맞다는 대법원 판결이 재작년에 비로소 나왔습니다. 


소위 미스터피자의 ‘치즈 통행세’ 판결입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과 현행 회사법으로 이런 상식적인 결론을 내기까지 무려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주주가 아닌 회사의 손해와 거래의 조건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생긴 해프닝입니다.


올해 자사주를 활용한 인적분할 후 지주회사 전환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시행됩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이 나오기까지 20년이 걸렸고, 이미 180개 넘는 지주회사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주주의 관점으로 보았다면 처음부터 이런 일은 일어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모두 주주들 사이의 이해충돌, 더 쉽게 말하면 회사가 어떤 결정을 할 때 어떤 주주는 이익이고 어떤 주주는 손해인지 살펴보도록 하는 기초적인 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기본적인 원칙이 없으니, 새로운 문제가 지적되면 그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법이 급하게 생겼습니다. 그 법이 만들어지고 법원 판결이 나오는 오랜 시간 동안, 정보가 빨라서 따라할 사람들은 빨리 따라하고, 대부분의 피해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또 새로운 방법이 나오는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개발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법에서는 회사만 이익이면 지배주주가 이익이고 일반주주가 손해라도 OK 싸인이 나갑니다. 물론 일반적인 경영 상황에서는 이런 일 - 주주 사이에 이익과 손해가 엇갈리는 일 - 이 없겠죠. 회사가 잘되고 주가가 오르면 주주도 다같이 잘되는 겁니다. 


하지만 가끔 일부 주주는 이익이고 다른 주주는 손해일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회사가 아니라 주주들 사이의 거래인 경우입니다. 


많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런 것을 ‘자본거래’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계열회사 사이의 합병과 물적분할 후 재상장 문제입니다. 


조금 생소하실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 합병과 분할은 순수한 주주간의 거래입니다. 거래로 인한 회사의 이익과 손해 자체를 판단할 수 없는 거래입니다. 흔히 얘기되는 합병이나 분할 이후의 ‘시너지’와 같은 이익은 법적 개념이 아닙니다.


정말 큰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 법이 이렇게 회사의 이익과 손해를 판단할 수 없는 주주들 사이의 거래에서도 어떤 주주의 이익과 손해인지 살펴보지 않고 그냥 OK를 줄 수 있게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주주평등원칙이 있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주주평등원칙을 위반했을 때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지나요? 우리 법은 이 점에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해석으로 가능하다고 보시는 교수님들이 계시지만, 법원은 분명 그렇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대법원도 에버랜드 전환사채 건에서 그랬고, 최근 다른 건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이 점을 명확히 하는 판결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


이런 구멍 하에서, 지배주주가 이익이 되도록 설계된 합병, 분할 같은 자본거래가 계속되고 일반주주들은 지속적으로 손해를 입어 왔습니다.


그런 결정에 불만이 있는 일반주주는 주식을 팔고 다른 주식을 사면 되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입니다. 

외국인들, 아니 이제 한국인들도 그런 한국 주식을 사지 않고 미국 주식을 사고 일본 주식을 사고 대만 주식을 삽니다. 한국 주식은 점점 인기가 없고 가격이 내려갑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시장에서 주식 가격을 결정하는 일반주주에 대한 법적 보호가 있어야 합니다.


상장을 해서 일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면, 상장회사의 누군가는 일반 대중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이사회에 부과하는 것이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일본은 이미 2015년에 인정한 주주에 대한 이사회의 수탁자책임입니다.



독일과 같이 지배주주에게 직접 책임을 부담시키는 법제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상관 없습니다.


일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규정하면 주주들이 이사에 대해 배임죄로 고소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 또는 반대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충실의무나 배임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보입니다.


배임죄는 일을 맡기고 맡는 관계, 즉 위임 관계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직접 일을 맡기고 맡는 관계 (위임)가 있어야 충실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주는 회사라는 법인의 대표자로 이사를 뽑습니다. 그리고 법인인 회사가 이사에게 일을 맡깁니다. 이렇게 이사에게 직접 일을 맡긴 사람은 회사이지만, 뽑은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으로 구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논리입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와 같은 원칙적 선언이 아니라 기존의 회사기회유용금지와 같은 구체적 조문을 보완해서 '보다 현실적인 대책'이 되게 하자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일선에서 내부거래, 사익편취, 경영권 방어 등 사건을 많이 담당했던 변호사로서의 경험을 돌아보면, 저는 이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1)  우선 현재 문제가 되는 유형만으로도 합병, 분할, 내부거래 등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기회유용금지 강화 등 몇 개의 입법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2)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방법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새로운 방법이 나옵니다. 기존에 문제가 되었던 구체적 방법만 규제하고 일반적인 원칙을 선언하지 않으면 미래에 대한 대책이 되지 못합니다. 심지어 미래에 나올 새로운 방식에 대한 규제 포기라는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3)  기회유용금지 조항은 결국 이사 2/3 이상 찬성으로 통과시키는 형태인데, 현실적으로 소수인 지배주주가 사실상 이사 전체를 선임함으로써 이사회가 주주 지분율과 전혀 맞지 않게 구성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수관계인 거래에 대한 이사회 찬성률은 100%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사회에게 주주간 이해충돌 문제를 전적으로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즉 이사가 주주 전체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를 명시하는 것은 끝이 아닙니다. 시작하는 첫 단추일 뿐입니다. 선진국이 된 한국이 세계 자본시장에서 갈라파고스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바탕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려야 빈 곳이 없는 것처럼, 그런 바탕색의 역할을 하는 원칙일 뿐입니다.


민법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한 줄에서 수백개의 조문이 나오듯, 자본시장에서는 주주 전체에 대한 충실의무가 그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 6. 12. 자본시장연구원 주최 세미나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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