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파서 밥 조차 먹을 수 없었다. 눈으로 봐도 이상할 만큼 윗배가 부풀어 올랐다. 미련하게 참고 또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찾아간 응급실에서 최악의 상황과 마주했다.
"CT 판독 결과 암세포가 복부 림프절, 간, 폐로 전이되었습니다. 추가적으로 뼈스캔과 머리 MRI 촬영을 통해 전이가 더 있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응급실에 실려오기 몇 달 전 고환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에도 복부 림프절에 암세포로 보이는 것들이 있어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는데 항암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엔 항암을 하면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환 적출 수술 후 병원을 찾지 않았다.
당연히 수술을 집도한 담당의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몇 달 후 응급실에서 다시 만난 의사는 나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지금이라도 항암치료를 할지 아니면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지... 그리고 나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항암치료를 선택했다. 항암치료를 하기 위해 입원한 2018년 5월 8일 밤은 지금도 생생하다. 통증과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그 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암 환자는 암세포 때문에 죽기 전에 먼저 굶어 죽는다. 물론 일반화해서는 안될 말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한 달쯤 제대로 먹지를 못한 까닭에 병원에 입원할 당시 20kg 가까이 몸무게가 빠진 상태였다. 이 상태론 체력이 받쳐주질 못해 항암도 할 수 없었다.
간에 퍼진 암세포로 간이 부풀어 오르며 위를 압박해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간이 부어서 배 밖으로 나온다는 게 은유적 표현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영양제를 링거로 맞아가며 항암을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체력부터 만들어야 했다. 영양제와 마약성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간댕이가 부은 놈 그게 바로 나였다
항암제의 원리는 간단히 말해 '빠르게 증식하는 세포를 죽이는 것'이다. 물론 암세포만 골라서 죽이는 표적항암제(2세대) 면역항암제(3세대)도 있다. 하지만 고환암은 아직도 1세대 항암제를 사용한다. 1세대 항암제란 화학 항암제 또는 세포독성 항암제라고도 하는데, 빠르게 증식하는 세포를 죽이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빠르게 증식하는 세포에는 암세포를 포함한 면역세포, 생식세포(정자), 머리카락, 손톱, 발톱, 피부 세포 등을 의미한다. 사실 약보다는 독약에 가깝다.
전쟁을 한번 치르면 나라의 기간시설은 물론 자연환경까지 모조리 파괴된다. 그렇다고 적군에게 나라를 내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파괴를 무릅쓰고 싸워야 한다. 암도 마찬가지다. 암세포에게 내 몸을 내어 줄 수 없기에 독약을 써서라도 몰아내야 한다. 복구는 그다음이다.
흔히 링거라고 알려진 정맥주사의 형태로 항암제를 투여하면 정맥이 망가진다. 약이 독해서 정맥이 망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항암제는 독성을 버틸 수 있는 중심정맥에 투여한다. 보통은 쇄골 밑에 있는 쇄골하 정맥을 이용한다. 쇄골하 정맥에 약을 투여하려면 그냥은 안된다. 케모포트를 삽입해야 한다. 쉽게 생각하면 약을 투여하기 위해 빨대를 꽂는 건데... 빨대 치고는 많이 굵다. 500원짜리 동전 굵기 정도?
케모포트를 삽입하기 위해 수술대에 누웠을 때, 항암을 시작한다는 실감이 났다. 마취를 시작한다는 소리와 함께 스르륵 눈이 감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른쪽 쇄골 아래쪽에 케모포트가 달려 있었다.
앞으로 이곳을 통해 항암제를 투여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