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 봄, 인생을 도둑맞다.(2)

by 다크포니

인생을 살아가면서 굳이 몰라도 되는 것들이 있다. 내겐 케모포트가 그렇다. 네이버 사전에서 케모포트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명사 : Chemoport 케모포트((항암치료제를 중심 정맥에 투여하는 데 사용되는 중심정맥관의 일종))



흔히 링거라고 알려진 정맥주사의 형태로 세포독성 항암제를 맞게 되면 정맥을 못 쓰게 된다. 약이 독해서 정맥이 망가진단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정맥(쇄골하 정맥)에 케모포트를 삽입해서 항암제를 투여한다.


케모포트를 삽입하기 위해 수술대에 누웠을 때, 비로소 항암을 하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마취로 인해 수술대의 누운 후 기억은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른쪽 쇄골 아래 동그란 무언가가 삽입되어 있었다.


"앞으로 이곳을 통해 항암제를 투여하는구나....."

chuttersnap-cGXdjyP6-NU-unsplash.jpg


암의 종류에 따라 항암에 사용되는 약제와 투여기간이 달라진다. 나의 항암 일정은 3주 1사이클, 총 4사이클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4사이클 후 CT를 찍고 암세포의 잔존 유무에 따라 추가 항암을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한다.


3주간의 일정은 이렇다. 1주 차에 5일을 연속으로 항암제를 맞는다. 그리고 2,3주 차에는 일주일에 한 번 항암제를 맞는다. 그래서 보통은 1주 차는 입원을 하고 2,3주 차는 외래로 내원해 항암제를 맞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당장 항암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엉망이었던 까닭에 외래 내원은 꿈같은 일이었고 결과적으로 40일 동안 입원생활을 했다.



세포독성 항암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반 링거를 맞을 때와는 항암제를 취급하는 간호사는 반드시 폴리 글러브를 착용했고, 몇 번씩이나 이름과 환자 번호 그리고 항암제를 확인했다.

케모포트로 항암제가 들어가기 때문에 항암제를 맞는 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혈관을 타고 독약이 흐른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나 자신에게, 아내에게 그리고 부모님께 미안했다.

zygimantas-dukauskas-9m8hapLngiw-unsplash.jpg


항암치료가 달갑지 않은 이유는 어마어마한 부작용 때문일 것인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에는 탈모가 있다. 나에게도 탈모가 왔고, 탈모를 처음 인식했을 때는 사뭇 충격적이었다.


첫 항암을 마치고 바로 머리가 빠지진 않았다. 몇 번째부터 머리가 빠졌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베개에 까만 것들이 묻어있었는데, 곧 그게 머리카락인 것을 알게 되었다. 손으로 머리를 스윽 문지르기만 해도 손에 머리카락이 묻어 나왔다.


사실 머리카락이 빠질 줄은 알고 있었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차원에서 이미 12mm로 머리를 깎은 터였다. 그러나 항암 부작용 앞에선 12mm의 머리카락도 사치였고 이내 깨달았다. "아... 삭발을 해야 되는구나" 그리곤 면도기로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몽땅 밀어버렸다. 거울 속에는 35년 동안 볼 수 없었던, 낯선 이 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