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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Oct 28. 2024

차갑고 뜨거운 사랑의 온도

드라마 각본집을 처음 읽어보았다

쉽게 읽는 책이 읽고 싶어 졌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책장 앞을 기웃거리다가 익숙하게 만화책을 손에 들었다.

글보다 그림이 선명하게 잔상에 남는다.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책을 읽어나간다.

2권을 순식간에 다 읽고 만다.

글로만 이루어진 책도 쉽게 읽고 싶었다.

바로 한 칸 앞의 책장을 보니, 이곳은 영화, 드라마 각본집이 있었다.

유명한 영화, 내가 봤던 익숙한 드라마의 각본집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 내 손에 잡힌 책은 바로 [사랑의 온도]

내용보다 연기자들의 연기가 참 좋았던 드라마였다.

익숙한 사랑이야기겠지.

드라마의 내용보다 연기자를 보고 선택한 드라마.

담백하고 진중한 연기를 보여주는 서현진 배우님의 연기력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던 드라마였다.

갑자기 드라마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사랑의 온도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인물에 대한 설명이 먼저였다.

사랑을 믿지 못하는 한 여자 현수가 있다.

부모님 두 분 다 공직생활을 하고, 질투심 많은 여동생을 둔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다.

대기업에 합격해 누가보아도 평탄한 길을 걷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갑작스레 직장을 그만두고 작가가 되기 위해 현직 드라마 작가를 보조하는 보조작가로 글쓰기 작업을 시작한다.

현실이 막막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는 부모님을 보아도 사랑에 대한 감정에 회의적이다.


차갑지만 뜨거운 남자 온정선이 있다.

의사아버지에 순종적인 어머니와 불안한 가정 안에 있었다.

아버지의 폭력에 어머니의 실수가 더해져 이혼가정이 되어버렸다.

단단한 아버지보다는 약한 어머니를 택했지만, 그런 엄마는 계속 누군가에 의지해 살려고만 한다.

정선은 스스로 단단해져야만 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음식에 사랑을 느꼈던 정선은 요리사를 직업으로 정하고 무작정 돌진한다.

온 마음으로 요리를 한다.

요리하듯이 정확하고 선명하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려고 노력한다.


첫 만남부터 인상적이었던 두 남녀의 만남.

러닝동호회에서 지인 소개로 만나 야밤에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러다 길을 잃은 현수는 당황하지 않고 그 상황을 즐긴다.

처음 만나는 길에서 만난 꽃이 씩씩하게만 보인다.

제시간에 오지 않은 현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그녀를 찾아다녔던 정선은 태연히 길가의 꽃을 바라보고 있는 현수에게 화가 난다.

강렬한 인상과 솔직한 대화가 냉정하기만 했던 정선의 마음을 사르르 녹이고 바로 현수에게 직진 고백을 해버린다.

사랑에 회의적이었던 현수는 단박에 거절하지만, 그다음의 만남이 즐거웠다.

서로 같이 사랑이 시작되었지만, 그 온도는 달랐다.


힘든 일과를 마무리할 때 따뜻한 식사가 몸을 데우고 마음을 녹인다.

국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평소에 잘 만들지 않던 국물요리를 만들게 되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온도가 비슷해질 무렵, 현실은 저 멀리 가버린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았다.

나중에 말해줘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전화통화는 연결되지 않는 전화로 바뀌어버렸다.

믿었던 친구로부터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떠난 이를 찾아 그의 발자취를 쫓았지만, 결국 그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현수와 정선은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목표를 향해가는 와중에 시련은 어디든지 등장하기 마련이다.

드라마작가로 데뷔했던 현수는 감독과의 대화가 쉽지 않다.

첫 작품이기에 잘 해내고 싶지만, 자꾸 대본을 바꾸는 감독의 행태가 용납할 수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술까지 마시고 찾아간 촬영장에서 옛사랑 정선을 만나는 것을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정선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촬영장은 놀란 감독을 비롯해 배우들의 귀가, 스텝들의 쑥덕임으로 그날의 촬영은 강제종료되었다.

정선은 뛰어나가는 현수를 붙잡기 위해 쫓아가지만, 달리기만큼은 자신 있었던 현수는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 가 버린다.

그동안 정선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자신의 진심이 담긴 요리를 좋아하는 투자자를 만나 [굿수프]라는 가게를 운영 중에 있다.

매출이 좋지는 않지만,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호평을 받고 있는 가게였다.

1년 동안 정선의 경영 결과로 그다음해 운영이 결정된다.

미슐랭 인증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중이다.

그러다 현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서로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만나고야 말았다.

차갑거나 뜨거운 온도는 맞부딪혀야 중화된다.

믿었던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들이 오해였고, 서로가 서로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의 온도가 드디어 서로에게 부드럽게 와닿았다.

정선에게는 지켜줘야만 할 것 같은 나약한 어머니가, 현수에게는 질투하고 독선적인 작가동생 홍아와 자신을 사랑해 주는 대표님이 자신들의 사랑의 방해자가 된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 사랑을 격려해 주고, 마음껏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이야기의 흡입력보다는 캐릭터의 성격이 돋보이는 드라마다.

서로에게 다정하고 사랑을 아낌없이 주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현수와 동생 현이.

뭐든 척척 해내는 언니를 향한 질투를 숨기지 않는 현이의 행동이 냉정하게 보여도 밉지는 않다.

부잣집 자식의 티를 팍팍 내는 홍아는 누구에게나 쉽게 호감을 사고 미움을 얻는다.

그래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톡톡 튀는 매력을 흩날리며 다닌다.

여유로운 성장배경에 재능과 당당함이 배어 있다.

그런 홍아의 질투를 한 몸에 받는 현수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사랑하는 동생에게 미움은 사치다.

함께 일하며 늘 지지해 주는 경이가 있어 하루가 즐겁고, 자신의 글을 좋아해 주는 대표님이 있어 든든하다.

늘 자신에게 의지하고, 남자에 기대는 엄마에게 늘 지친다.

하지만 자신의 요리를 좋아해 주고 응원하는 정우형이 있어 [굿수프]를 잘 운영해 나갈 수 있었다.

의대를 나와 자격증까지 있지만, 요리를 하는 원준과 하성, 민호. 직원 모두를 지켜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가까운 형과 사랑겨루기를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차갑게 식었다가도 금세 불타오르는 사랑을 놓칠 수 없다.

지켜내기 위해 솔직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돌아보는 정선과 처음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매일 최선의 사랑을 했던 현수의 직선적인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럽다.

상대방까지 지치게 만들기 싫어 자신을 숨겼던 아이 같은 정선과 사랑을 갈구하던 정선의 어머니까지도.

각자의 사랑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사랑의 표현은 모두가 다르다.

누군가는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는 곡해해서 받아들이기도 한다.

서로의 언어에 오해가 쌓이면 그 관계는 금세 파괴된다.

사랑이란 감정은 모든 상식을 뒤집어엎을 만큼의 강력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호기심이 관심으로 커지고, 관심이 사랑으로 바뀌는 것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이 감정에 인생이 휘몰아치는 경험을 살면서 한 두 번은 하지 않을까.

그렇게 넘칠 듯이 흐르던 사랑에 조그마한 틈이 생기고, 의심이라는 감정이 자라나기 시작하면 손바닥 뒤집듯이 사랑의 감정이 미움으로 용솟음칠 수도 있다.

사랑의 온도에서도 순식간에 바뀌는 서로의 체온을 경험한다.

그래도 서로 사랑하므로 한 발짝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물러나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의 온도를 맞추어 나간다.

모든 일이 그러하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삶을 살다가 만난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들으며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매일 먹던 음식도 함께하니 더 맛있어지고,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평범했던 하루가 충만한 하루가 되는 기적을 맛보게 된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하루는 사랑이다.

평범하고 특별한 오늘,

당신의 하루가 사랑스럽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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