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함과 위트는 고도로 발전한 영상미를 이긴다
드디어 그날이 도래했다.
[지구를 지켜라]가 다른 나라, 실험적인 도전을 즐기는 사람에 의해 재창조되는 날.
2003년 작품을 2025년에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영화의 개봉일이다.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 볼 생각에 설렌다.
[부고니아]는 개봉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호평이 일색이라는 말에 더욱 기대가 된다.
그 덕에 다시 [지구를 지켜라]를 한 번 더 보았다.
얼마나 잘 만들었길래, 이렇게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부디 내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부고니아의 뜻은 고대 지중해에서 소의 시체에서 꿀벌이 생겨난다고 믿었던 의식으로, 잘못된 믿음이 만들어낸 광기로 무언가를 구원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믿음. 의심과 신뢰를 가르는 단 하나의 감정이 누군가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게 만든다.
조금은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청년(돈)에게 믿을 사람은 사촌형(테디) 단 한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이유를 들어 설명해 준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형이, 세상의 전부이며 오롯이 자신의 편인 사람이다.
이번에 집으로 데려온 사람은 잘 나가는 회사의 사장이다. 형은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려고 한다.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외계의 수신호를 약하게 하기 위해 온몸에 크림을 발라둔다.
형의 말을 온전히 믿지만, 이번에 데려온 외계존재는 그냥 여자사람 같기도 하고, 아무튼 말을 정말 잘한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형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저 외계생물체가 싫어지기도 하고 형이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자신은 형을 믿는다.
외계의 존재와 대화자리를 만들어 열심히 이야기할 때. 대화의 방향이 생각처럼 유연하게 흐르지 않는다. 외계생명체로 추정되는 사람의 말소리가 커지자 형이 화를 냈고, 반격에 반격을 거듭한 순간 외계존재가 쓰러졌다. 그리고 우연처럼 경찰이 집으로 찾아왔다.
경찰을 보내기 위해 형이 올라가고 외계존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돈은 깨달음을 얻는다. 형을 완전하게 믿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가 인간인지, 외계존재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결국 수긍해 버렸다. 그리고 결심한다. 마음의 스위치를 켜듯, 트리거를 당기고 만다.
뛰어난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다. 가히 2025년도의 작품이라고 기억될만한 미장센이 여지없이 등장한다. 원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다분히 대중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부족하다.
이미 [지구를 지켜라]를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왜 자기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을 잡아왔는지, 외계인이라는 증거가 무엇인지, 엄마와 테디와의 유대관계, 그리고 사촌형과 돈과의 관계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다.
개연성이 다분히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좋게 평가하는 부분이 바로 뛰어난 영상미다.
보기 꺼려하는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한다. 눈살이 찌푸려지던 원작의 장면들이 없어서, 원작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관객에게 다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예술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영화인가.
나의 답은 아니요.
분명히 원작 존재하는 리메이크 작품이므로 처음보다 잘 만든 영화는 분명 아니다.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지도 않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간의 유대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말로만 전달하려는 부분이 굉장히 미흡해 보였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강렬히 만들어 관객을 착각하게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보였다.
다만 실망했을 뿐.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지구를 지켜라]를 보고 싶은 마음밖에 남지 않았다.
살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시련이 특별하고, 남들보다 아프고 괴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있다.
지구가 없어지면 이 괴로움이 사라질까.
이런 생각을 역으로 반전시켜 외계인의 괴롭힘이라 생각한 감독의 창의력이 지금에까지 이어진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외계인들의 비인간적인 실험으로 괴롭힘 당하는 사람들을 지켜내는 것. 지구를 지키기 위해 그가 벌인 행동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당연한 것인가.
지금 바라보면 연쇄살인범, 혹은 조현병 또는 정신병 환자가 벌인 범죄의 현장을 우리는 다분히 가해자의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범인만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부고니아. 잘못된 믿음이 만들어내는 광기.
미친 자는 우리 곁에 존재하고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광기를 발산해 낸다.
아름다운 작품을 보았지만, 나는 [부고니아]보다는 [지구를 지켜라]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