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배추를 셀 때만 쓰는 단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질문이다.
가장 쉽게 포기하는 것.
너무 답이 쉽게 나와 며칠을 고민했다.
그게 진짜일까. 정답일까.
너무 바보 같은 답이 아닐까.
하지만 이게 내 최선인걸.
고민과 번뇌가 잠식할 때가 종종 있다.
하다못해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당장 일어날 것인지, 밥을 포기하고 더 누워있을 것인지부터가 고민이다.
그럴 때면 으레 하는 선택이 있다.
바로 나를 포기하는 것이다.
모든 고민에서 '나'가 배제되는 순간 나는 자유로워진다.
더 누워있는다고 나아지는 것이 있나?
잠깐의 달콤함보다 나아갈 힘을 얻는 것.
쉽게 결론이 지어진다.
명령어를 입력하자마자 몸이 일어선다.
정신은 깨어나지 않았지만, 우걱우걱 음식을 씹어대다 보면 어느새 다음을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항상 처음이 힘들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 예측불가능한 다음.
그래서 언제나 낯선 상황에 놓일 때면 나를 놓곤 한다.
다른 사람이 궁금하기보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나'가 낯설어서.
언제나 한발 늦게 움직이고, 지금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나의 속도를 바라보는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그들의 눈에 나는 타인을 위한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다.
먼저 선택하지 않고, 끝까지 자리하는 사람.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듣고 호응하는 사람.
단체로 움직이는 차 안에서 가장 먼저 탑승해 가장 불편한 뒷자리를 선점하는 배려.
사실 혼자 앉기 위한 이기적 행동이다.
먼저 말하는 사람의 말을 끊지 않고 계속 듣는 것은 말끔하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온전한 나의 속도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도착해 제일 늦게 일어나는 나에게 일에 대한 열정을 읽었다고 했지만, 사실 지각하는 것을 싫어하고 모든 상황을 이해해야 마음이 놓이는 나를 위한 행위였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느린 나의 행동은 누군가의 눈에 배려로 비쳤지만, 사실은 온전히 나를 위한 행동이었다.
나의 개입을 멈춘 사람의 행동은 때론 느리고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잠시일 뿐이다.
금세 적응하고 나를 위한 다음 스텝을 밟아갈 뿐이다.
쉽게 내려놓는 것은 '나 자신'이지만, 내게 영원한 포기란 없다.
다음을 준비하기 위한 '쉼'과도 같은 것이다.
잠시 멈춤. 혹은 발돋움하기 위한 숨 고르기.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하는 것.
나는 나를 멈출 수 있지만, 나를 강제로, 다른 이의 뜻대로 하게 두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나는 온전히 '나'로 존재하기를 희망한다.
돈, 사랑, 명예, 희망, 행복 등등.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고 매우 흥미롭다.
나의 가치관은 과연 무엇일까.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익숙함의 소중함을 아는 것.
포기란 잠깐의 멈춤이라는 것.
나는 나를 위해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뿐이다.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있지만, 절대 '나'를 놓지 않는 사람이다.
<다음 질문>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순간 중에서 가장 '나다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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