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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May 23. 2024

단편으로 연작을 끌어가는 힘이란

나츠메 형사 시리즈 4번째 형사의 분노

이번에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책들이 어렵다.

[천로역정]과 [다산 정약용 평전].

참 좋은 내용들이지만, 쉬이 읽히지는 않는다.

역시 공부는 힘든 것이고 재미는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있는 책을 두고 전자도서관을 뒤적거리다가 저번에 재밌게 본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쓴 작가가 쓴 다른 미스터리물 [형사의 분노]를 보게 되었다.

제목만 보아도 이야기가 그려졌다.

포악한 범죄자와 정의롭지 않은 결과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범죄와 가장 밀접한 자의 이야기.

흥미가 동했다.


[형사의 분노]는 단편집으로 나츠메 형사가 이끄는 미스터리 추리물 중 4번째 이야기였다.

황혼 제물 이방인 형사의 분노 총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혼은 해가 질 무렵 어두워질 무렵을 말한다.

한 사람의 자수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체를 가방 안에 넣어두고 있다는 범인의 전화 한 통.

그렇게 급습한 집 안에 들어가 보니 시체가 들어간 가방이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옷장 안에 두어도 될 것을 굳이 침대 위에 두고 있다니.

심지어 부검결과 죽은 지 약 3년은 지난 시체였다.

노인 연금을 노린 살인인가, 시체유기인가.

피의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모녀관계였다.

수사관의 질문에 그저 긍정의 대답만 할 뿐 자세한 이야기를 스스로 하지 않는 피의자에게 의뭉스러움을 느낀 나츠메 형사는 그녀를 알아기 보기 시작한다.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그녀는 갑자기 이사를 한다.

이사를 하는데 어머니가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것을 부동산 직원이 알 정도로 어머니는 불편해했다.

그리고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가 사망했고, 그녀는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왜 3년이 지난 시점에 자진신고를 하게 된 것일까.

그녀가 다닌 직장을 확인해 보니, 이사하기 전 동네에도 지점이 있는 회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다니기 위해 이사를 했다고 말한 것이다.

그녀에게는 이사를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와 이혼했던 상대방을 찾아가 대화를 나눠보니 그녀에게는 애착적 성향이 있었다고 했다.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헤어졌음에도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혼 후 어머니에게 의지하고 기대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정정한 모습으로 하이쿠(시 짓기) 학원을 계속 다녔다.

거기서 어머니는 마음이 맞는 동료를 만났고 서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다.

혹여 어머니마저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웠던 딸은 억지로 어머니를 모시고 이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어머니는 PC방에 가서 메일을 보낼 정도로 정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노화는 서서히 어머니를 잠식하기에 이른다.

곁에서 꺼져가는 어머니의 기운을 바라보며 딸은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현실에서의 안녕을 마주한다.

미련은 어머니의 사랑을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을 피어나게 한다.

이사를 갔어도 어머니는 PC방에 가서 시를 지어 보낼 정도로 시를 사랑했다.

그 시를 그녀가 대신 이어서 보내는 것이 어머니의 벗에게 하는 어머니의 생존신고였다.

여기까지 알게 된 나츠메 형사는 어머니의 벗을 찾아가게 된다.


미스터리 추리극이라기에는 사랑이야기가 넘치는 단편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이 잘 맞는 벗을 만난다면 생기가 넘친다는 것.

그래도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갖는 모정이었다는 것.

딸과 어머니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방식은 달랐다.

이해는 달라도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형사시리즈의 주인공인 나츠메 형사는 애초에 형사가 아니었다.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조사원으로 일했던 나츠메 형사는 아이들이 어째서 그러한 행동을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관해 찾아가는 세심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어린 딸이 망치에 맞고 식물인간이 되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형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보다 사건의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을 하면서 범인의 의도, 범행의 원인을 분석해 가는 방법이 다른 형사들보다는 순수하고, 기민하기도 하다.

시리즈물이지만, 단편적인 사건의 모음으로 지루함 없이 독자들이 글을 쫓아갈 수 있게 해 준다.

살인사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이지만, 따뜻함으로 마무리되는 황혼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몸은 떨어졌어도 시로 생존신고를 했던 어머니는, 그 시로써 자신이 사랑했던 딸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노쇠해진다.

약하디 약한 어머니만을 의지하는 딸에게 어머니는 그만 의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킬 뿐이다.

존재만으로 의지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기쁘지만, 나로 인해 그 사람이 한 공간에 갇힌 삶을 살게 되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

뒤늦게 깨달은 자에게 남은 것은 미련과 후회뿐이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어머니가 남긴 소중한 선물이 남아있어서 참 다행이다.

어머니가 자신을 생각하며 쓴 시들을 보면서 다시 일어설 것이다.

범죄행위에 이유가 선하다면 결과가 바뀌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악하기만 한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선의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황혼의 모습

형사의 분노

식물인간인 환우가 의식이 깨어나 병원이 아닌 자가치료 중에 사망하는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똑같이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딸이 있는 나츠메 형사에겐 이 사건이 다른 형사들보다 본능적으로 끌리게 된다.

의식은 있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사망사건에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용의자로 보이게 마련이다. 보험금을 받고, 본인이 일을 해도 돈은 부족하기만 하다.

혼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엄마를 의심하는 와중에 딸의 문병을 간다.

사건 관련 해서 의사에게 조언을 구하던 중 딸을 돌보던 간호사에게 질문을 받는다.

자신의 남자친구도 교통사고 후에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병원에서 갑자기 돌연사 한 사건이었다.

같은 병원에서 식물인간인 환자가 2주 간격으로 사망한 사건.

몸의 경기를 줄여주는 약물이 적게 들어가면서 산소를 공급하는 호스가 뽑혀서 사망한 똑같은 경우였다.

다만 장소만 다를 뿐.

그들을 돌보던 가족은 헌신적이었고, 그들만이 삶의 희망인 듯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곁에는 가족과 의료진이 있었다.

자택치료 중이던 환우의 집에 드나들던 사람 중에 젊은 남성 물리치료사가 나츠메의 눈에 들어왔다.

물리치료사는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의 행적이 수상하다.

경찰서에 임의동행하여 취조를 하니 자신이 환자의 자살을 도왔다는 자백을 하는 것이다.

그의 눈빛에서 다른 의도가 엿보였다.

물리치료사가 사망을 도운 친구의 주변을 조사하다 보니, 두 사람의 관계가 이상했다.

친구보다는 주종관계에 가까웠다는 주변 친구들의 증언.

물리치료사와의 취조에서 결국 나츠메는 분노하기에 이른다.


인생은 신묘하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로 인하여 놀라운 결과를 맞이하기도 한다.

다양한 우연이 만나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보고 싶다는 연인의 한 마디에 가족들 눈을 피해 오토바이로 달려가다가 마주하는 차와 부딪히는.

보고 싶다고 말한 연인은 죄인이 되고, 그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잠자는 아이가 되어 침대에서 일어설 가망이 없다.

그렇게 그가 일어서기를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가 기적적으로 움직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 그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의료진의 실수는 아닐까. 어떻게 나를 두고 먼저 갈 수 있었을까.

모두를 원망하고 싶지만, 진짜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죄'라는 것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저지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호의가 상대방에게 질투와 시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내가 상대방에게 미운 감정을 가지고 얕게 했던 행동들을 상대방이 그대로 느껴서 같은 미움을 키웠을 수도 있다.

모든 종교에서 이르기를 질투와 시기하는 마음이 자신을 병들게 하고 지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내편이란 나의 슬픔에 함께 슬퍼해주는 것보다, 나의 기쁨에 같이 웃어주는 것이다.

나는 나, 너는 너. 내 마음의 집이 견고하다면 당신의 불행도, 기쁨도 함께 할 수가 있다.

과연 나는 내 주변이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마주할 것인가.

생각이 깊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모든 죄에 대하여 형법으로 형량을 정한다.

범죄인의 형량을 정하는 데에는 우발적 범죄인지, 의도적 범죄인지의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사건이 벌어졌다면 개선의 여지나, 반성의 기회를 주지만, 시작부터 나쁜 마음을 먹고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일으켰다면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위험한 세상 속에서 평화로운 척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사건들이 뉴스에서, 영화에서, 유튜브에서 발생하는 걸 보면 아마 내가 안전하게 생활하는 일조차 기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세상이 요란하다. 이렇게 뉴스가 흥미로울 수 있을까.

오늘 아침에도 조폭출신의 가수가 음주를 하고 뺑소니를 저지른 후 콘서트를 강행하는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접했다.

한 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버닝썬 사태에 대한 영상을 BBC 유튜브로 시청까지 했다.

한국의 언론에서 보도하기 힘든 내용을 다른 나라 방송을 통해 보게 되는 부끄러움과 뚫기 힘든 그들만의 견고한 벽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법 앞에 모든 이는 평등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돈이 최고라고 가르치는 작금의 세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부디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분명 현실에도 나츠메 형사와 같은 혜안으로 범죄자와 피해자를 동시에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상상에서보다 현실에서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다.

언제 누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책 한 권 다 읽기도 바쁜 세상이다.

도파민은 적어도 안되고 많아도 안 좋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보다 내가 나 자신을 더 많이 아는 게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알고리즘을 경계하고 나에 대한 사색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형사는 분노했지만 나는 더 냉철해졌다.

언젠가는 당신의 추천도서를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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