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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May 30. 2024

무증거범죄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중국 미스터리 연작 소설 그 첫 번째 이야기

온갖 영상매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절이다.

누군가가 궁금하면 유튜브 브이로그를 찾아보면 되고, 사이다 결말의 드라마를 보고 싶다면 OTT를 통해 검증된 이야기를 쉽게 보기 좋은 세상이다.

도파민이 저절로 넘치는 환경에도 중요한 사실이 있다.

글이 주는 잔잔한 힘을 스스로 소화해 내는 것.

자발적으로 발견해 내는 기특함을 주기 위해 도서관엘 갔다.

내 주위사람에게 추천할 도서를 찾기 위해 자리에 가방을 놓고 바로 책을 골랐다.

5분도 되기 전에 벌써 5권이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나의 선택에 확신을 주기 위해 먼저 목차와 첫 단락을 간단히 읽어보았다.

[반의 반의 반],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아주 오래된 농담], [무증거 범죄],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

욕심이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한 권, 한 권 빠짐없이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렇게 맛본 것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했다.

가방은 무거웠지만, 온전히 소화해 내기 위한 내 마음은 이 책들이 자리할 공간을 부지런히 만들고 있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고, 덥고, 진땀이 났지만 그것조차 좋았다.


그리고 손에 잡은 첫 번째 책은 바로 [무증거 범죄]

추리소설의 시작은 살인이다.

증거 없는 살인으로 경찰은 골머리를 앓는다.

그것이 연쇄살인이라면 더 그러하다.

심지어 이 범죄자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데, 살인사건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의도적으로 하나씩 증거를 남긴다.

특정 담배를 피해자의 입에 물린다던지, 한 사람의 지문만 계속 나온다던지, 반드시 잡아보라는 문구가 적힌 A4용지를 범죄현장에 남긴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그렇게 5건의 살인사건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3가지 단서와 마지막 사건에서 피해자가 쓴 것으로 추정된 현지인이라는 글자를 제외하면 증거와 증인과 진술이 없는 사건으로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

또다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은 독자에게 친절하게 처음부터 알려준다.

국수가게 사장의 동생과 단골이 살인 사건을 우발적으로 벌인 것이다.

동네 양아치가 국수가게 동생에게 수작 부리는 걸 단골이 보게 된다.

평소 단골은 동생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수줍음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 고백은 못하고 국숫집에 매일 가는 것밖에 하는 것이 없다.

밤늦은 시간 가게에 와서 배달주문을 하는 양아치에게 동생은 주문을 받고 싶어 하지 않지만 절음발이인 오빠사장은 굽신거리며 그냥 해주라고 한다.

이제껏 외상으로 음식을 먹었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돈을 내면서 계란볶음밥 하나를 공원에 가져다 달라고 한다. 이 모습을 단골도 보게 된다.

밤늦은 시간에 공원으로 가져오라는 말에 불안함을 느낀 동생은 과도를 챙겨가고, 그 뒤를 단골이 몰래 뒤쫓는다. 공원에 도착하니 양아치는 술을 먹으며 동생에게 강제로 스킨십을 하려고 했고 동생은 피했다.

몸싸움하던 도중 손에 들고 있던 과도를 휘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당황한 동생 뒤에서 단골이 주변에 있던 돌을 들고 양아치를 향해 힘껏 던지고 그 돌을 양아치가 맞게 된다.

눈 깜짝할 새에 성추행 사건이 살인사건으로 변모한 순간이다.

당황할 새도 없이 제삼자가 사건현장에 들어오게 된다.

처음부터 목격한 듯한 제삼자는 의도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꼬이게 생긴 젊은이들을 가엾게 여기고 사건을 처리해 줄 테니 경찰에게 거짓말 자신이 있냐고 묻는다.

당황했지만, 너무 놀란 동생과 단골은 단호한 제삼자에게 그러마 약속을 한다.

제삼자는 이 두 사람의 성정을 파악한 국수가게의 또 다른 단골손님이었다.

제삼자는 증거를 조작할 재정적 여유와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편 경찰 쪽에서는 6번째 살인이 이전에 벌어졌던 5번의 살인 사건과 성향이 다르지만, 증거목록에 수집된 지문이 5번의 사건과 같으므로 동일인물이 벌인 사건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고착화된 수사상황에 고민하던 수사간부가 경찰 조직을 떠났지만 뛰어난 수사력을 가진 교수를 찾아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예전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말 뛰어났던 동료 이야기가 나왔다.

법의학자로서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부인과 딸의 실종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경찰을 그만두고 사기업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기심을 가지게 된 교수가 수사에 참여하게 되면서 사건에 진척이 보이기 시작한다.

교수는 수리를 전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1차, 2차, 3차 그 이상으로 가면 고차원으로 넘어간다.

때론 풀이과정보다는 답을 정해놓고 풀이를 하는 방법이 정답으로 가는 방법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동료와의 대화에서 교수는 답을 정해서 풀어나가는 고차원적 해결방법을 시도해 본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는 답을 정해놓고 용의자를 특정하면 편향된 수사로 사건이 조작되기 쉽다고 강의했지만, 이번 사건처럼 범죄자가 뛰어난 사람이라면 때론 역행해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도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독자는 양아치가 사망한 사건에서 등장하는 제삼자와 경찰조직에 종사했던 법의학자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증거 범죄는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 것인가.


쉬지 않고 다음 글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흡입력 있는 소설이다.

아주 오랜만에 중국 소설을 읽었다.

보기 전에 검색해서 찾아보니 [용의자 X의 헌신]이 생각나는 지점이 있었다.

내가 죽이려고 마음먹은 사람을 쫓다가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의 그 심정.

그 사람들이 전혀 악의가 없었던 앞길 창창한 젊은이들이었다면 나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이미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을 찾기 위해 잔인한 악행을 저지른다.

다만 무고한 사람을 희생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활용한다.

제도적 형량을 존중하지만, 분명 죽어 마땅한 나쁜 이들이 존재할 수 있다.

모든 범죄를 저지름에 있어서 범죄인은 부끄러움이 있어야만 한다.

현대의 한국에서 무증거 범죄는 상상할 수가 없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치안을 위한 CCTV, 가게 보안을 위한 CCTV, 블랙박스. 사방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지금은 뺑소니도 100% 다 잡힌다고 할 정도이니까.

나의 자유를 내어주고 안전을 취하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땅 덩어리도 크고 사람도 비대하게 많다.

살인사건이 흔하기 때문에 경찰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특정 증거를 만들어 놓고 심지어 나를 잡아보라는 문구까지 남기는 범인의 철저성.

그만큼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다는 것일까. 혹은 집착일까.

내 일에 대해서는 최고라고 자부했지만, 정작 자신이 피해자가 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억울함인가.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많은 부를 취하였지만, 정작 본인은 관심이 없었다.

다만 범죄에 이용하기 위해 좋은 차를 구매한 것.

범죄자들은 좋은 차를 몰고 다니지 않을 것이라는 경찰의 편견을 이용한 이전 경찰간부의 추측.

경찰은 그의 입맛에 충분히 놀아났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사건은 해결되지만, 그는 경찰만 추측했지 일반 사람은 생각해내지 못했다.

추리소설에 해피엔딩은 없다.

악인의 죽음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고소함을 줄 수 있지만, 그의 가족들에게는 막연한 억울함이 존재할 수 있다.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준비는 완벽하지만, 관련자들의 가족들 모두를 포섭할 수는 없었다.

충분한 설득 없이는 완벽한 사건 해결은 없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결말이었지만, 작가의 놀라운 필력에 책을 덮는 순간까지 쉴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계처럼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도, 사람은 사람이다.

감정은 때론 머리보다 마음을 먼저 움직이게 한다.

피가 낭자하는 사건현장에서도 사람냄새가 나는 추리물이었다.

또 재밌는 글을 읽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하루다.

책 한 권을 온전히 다 읽은 하루는 어제보다 값지게 느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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