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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Jun 15. 2024

아리조나 유괴사건

코엔 형제 감독의 1987년작. 미국의 범죄영화

영화박물관에 가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가기로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입구의 문을 열 때까지.

문을 열고나서 보이는 영화 관련 책들과 거장들이 그려진 포스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다.

영화전시관을 둘러보다가 오늘 내가 볼 영화를 고른다.

마음에 드는 포스터를 찾았다.

코엔 형제가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한 한글 자막이 있는 [아리조나 유괴사건]

1987년작이므로 굉장히 젊은 니콜라스 케이지를 만날 수 있는 영화이다.

날이 더워지면 진지하기보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보고 싶다.

피식 웃고 싶은 나의 마음을 채워줄 것만 같았다.


하이는 교도소가 편한 사람이었다.

사고를 치고 잡혀오고, 교도소에서 형을 살다가 풀려나면 또 사고를 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익숙하게 머그샷을 찍던 중 사진을 찍어주던 여자 경찰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머그샷을 찍을 때만 만날 수 있는 그녀를 생각하면서 편하기만 했던 교도소 생활이 조금씩 길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어느 날 울고 있는 여자 경찰, 에디를 보게 된다.

약혼자에게 대차게 차인 에디는 너무 울어 얼굴이 퉁퉁 부었다.

하이는 화가 났다.

그녀 대신에 화를 내고, 교도소 안에서 복수를 계획한다.

가석방 심사시간에 새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된 하이는 새사람으로서 새 인생을 살 것인지, 그녀를 대신해 복수를 할 것인지 잠깐 고민하다가 바로 실행해 버린다.

그리고 머그샷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그녀에게 반지를 내밀고 프러포즈를 한다.

에디는 그의 마음을 받아주었고 둘은 그렇게 결혼까지 하게 된다.

교도소 출소 후 경찰인 에디와 결혼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일한다.

예전처럼 범죄와 가까워지려는 마음을 멀리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누리던 중에 한 가지 고민이 생긴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병원에서 에디의 불임소식을 듣게 된다.

둘은 포기하지 않고 입양을 고려하기도 하지만, 전과자인 하이로 인해 결격사유가 생긴다.

에디는 의욕을 잃는다.

경찰인 직장마저 그만두고 푹 퍼진 삶을 산다.

짝지가 힘이 없으니 하이도 직장생활이 즐겁지 않다.

그러던 와중에 둘이 같이 뉴스를 보게 된다.

가구회사 사장 아리조나에게 5 쌍둥이 아기들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삶이 불공평할 수가 없다.

누구는 하나도 없는데, 누군가는 5명이나 생기고 말이다.

에디와 하이는 눈을 맞추고 서로의 생각을 확인한다.

사다리를 차에 싣고 아기를 데리러 아리조나 집으로 향하게 된다.

범죄자인 하이가 능숙하게 아기를 데려온다.

천사 같은 아기의 웃는 모습에 두 사람은 지금이 마치 꿈만 같다.

자연스러운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하이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부부를 초대한다.

입양이 힘들었을 텐데, 묻는 사장에게 하이는 의뭉스러운 대답을 한다.

역시 거짓말을 못한다.

모종의 사고가 발생해 사장이 크게 다쳐서 하이와 에디의 집에서 나간다.

그리고 그날밤 교도소에서 탈옥사건이 벌어지는데, 두 탈옥수가 하이의 집으로 간다.

교도소 동기였던 탈옥수 두 명은 하이에게는 환대받지만, 에디에게는 환영받지 못한다.

에디는 탈옥수들에게 매몰차게 나가라고 하지만, 하이를 위해서 이틀의 시간을 준다.

그렇게 유괴범과 탈옥수가 한 집에 머물게 되면서 사건이 겉잡을 수없이 커지게 된다.


아리조나는 지역이름이기도 하지만, 납치되었던 아기 아빠의 성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 씨 유괴사건 정도?

교도소가 편한 사람이라니.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는 환경이 중요하다.

불우한 가정, 황폐한 주변인들, 당장 오늘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빈곤한 지갑상태.

그렇게 보면 교도소라는 장소는 옷을 수고, 밥을 주고, 잠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준다.

학교에 매일매일 등교하며 사귀는 친구와 같이, 교도소에서 오래 본 사람이 친구고 동료다.

주인공에게 교도소가 편할 충분한 환경적 요소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사가 있었다.

직장생활은 교도소와 같다.

유일하게 다른 것은 직장에 있는 동안 일해서 받은 돈으로 에디와 아기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 사람들을 위해 행복을 구매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대사였다.

유머를 담고 있지만, 그 안에 더 큰 의미가 담겨있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

어디서 태어나는가 하는 수저의 재질문제.

다산가정과 불임가정의 문제

그런 불평등한 문제를 개인이 임의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결국 법치국가에서 허용되지 않는,

상도덕이 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다섯 쌍둥이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가 하나를 기르기도 힘든데, 다섯이면 다섯 배로 힘 듣까?

각자 가정의 문제다. 인이 풀어낼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래도 아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기 곁에 있어서 유괴사건이 유쾌하게 보였다.

아기를 돈으로 보지 않고,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줄다리기였다.

나쁜 사람은 유괴를 한 사람이지만, 더 나쁜 사람이 출연하면서 그들을 향한 문제의식이 감가상각되었다.

이런 연출이 영화를 만들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사람의 역량인 것 같다.

절대 유쾌할 수 없는 주제를 이용해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 내었다.

대폭소는 아니었지만, 잔잔히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였다.

보다 젊은 니콜라스 케이지는 생기 있고 맑아 보였다.

에디로 출연한 홀리헌터와 6살보다 어렸지만, 둘의 연기 합이 참 좋았다.

철이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하이와,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피력하는 에디는 참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아리조나 유괴사건의 한 장면

주인공인 하이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비록 비루한 삶이지만, 그 속에서 사랑을 찾고 그녀를 위해 내 삶의 방식을 고치고 책임지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물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스스로 노력하려는 의지는 절대 꺾이지 않았다.

에디 또한 잘못된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사람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그 속에 반성이 있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최선에 감독은 유머를 넣고, 보다 좋은 결말을 그려놓은 것이 아닐까.

아무리 자식이 많아도 포기하지 않는 다둥이 부모의 마음.

돈 때문에 데려온 아이지만, 다시 길을 돌려 아기를 데려오는 납치범의 마음.

내 눈에도 예쁜데, 직접 낳아 기르는 부모의 눈에 아기는 얼마나 예쁠까. 결국 아기를 보내는 유괴범의 마음.

자식 없는 불임 부부의 마음을 이해해 준 다둥이 부모의 마음.

따뜻한 결말을 만날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 그다음의 여운이 없는 영화지만, 결말까지 완벽히 만든 영화라 군더더기가 없었다.

가족, 친구, 애인과 보기에 재밌고 유쾌한 영화다.

당신을 피식 웃게 만들 영화 한 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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